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평선 Sep 06. 2020

아기가 바뀌었어요

아들의 혈액형이 이상해요

                  

  곁에 누운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숨 고르기를 한다. 몇 번을 움찔움찔하던 아들은 다시 고요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십여 분이 흘렀을까. 아들의 손은 다시 착착착 자신의 뺨을 때리고 있다. 다시 곁에 가서 결박하듯 두 손을 잡아챈다. 이러기를 서너 차례….

  밤은 어느새 나와 경주하듯 저만치 앞서 달려 해를 부르려던 참이다. 조금만 더 눈 좀 붙일게. 조금만, 아주 조금만. 간절한 애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침 해는 빚 받으러 온 빚쟁이처럼 끈질기게 창문을 두드린다. 오늘도 눈부시게 다가오는 그를 반갑게 맞이하기는 틀렸다. 아침 해는 조금도 미안한 기색이 없다. 시끌벅적 관현악이라도 연주할 모양이다. 눈이 하얗게 뒤집어지도록 아침을 흘기며 이불을 걷어낸다. 오랜 세월 반복된 아침맞이지만 붉어진 아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엷은 미소를 지어본다.

  아들은 태어날 때부터 태열이 심했다. 빨간 얼굴에 머릿속은 온통 딱지로 모자를 쓴 듯했다. 첫째 딸은 달덩이처럼 뽀얗고 하얀 피부로 태어났기에 둘째의 쭈글쭈글하고 거친 피부는 나를 놀라게 했다.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더운 방 공기가 맞지 않아서인지 자주 칭얼거렸다. 아기를 위해 방 공기를 낮추고 자주 환기를 시켜주니 그나마 쪽잠을 자곤 했다. 아들 하나에 딸 넷을 낳은 시어머니는 첫딸을 낳았을 때는 백일에 처음 손녀를 보러 오더니 아들이라는 말에 열일 제쳐두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코며 이마, 태열 심한 것까지 에비를 꼭 닮았다고, 바라보고 또 바라보며 어느 구석이 또 닮았는지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듯 손주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기가 태어난 지 한 달쯤 지나 혈액형 이야기가 나왔다. 남편은 B형, 나는 O형, 딸도 B형인데 아들의 혈액형이 궁금했다. 보통 아기 사진에 태어난 시각과 몸무게, 혈액형이 쓰여 있는데 아들의 사진엔 A+가 쓰여 있는 것이다. 산부인과에 전화를 했더니 사진에 있는 것이 혈액형이라는 것이다. B형이나 O형이 나와야 정상인데 A형이라니? 순간 남편은 나를 쳐다보았고, 나 또한 멍한 상태로 그 시선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흔들어 댔다. 뭐가 잘못된 거지?

  우리 아기가 태어나던 날 그 산부인과에서는 또 다른 남자아이가 태어났다. 그 집도 위로 딸만 둘인데 아들이 태어났다고 꽃바구니가 몇 개씩 산모의 병실 앞에 놓였다. 그리고 병원에 있는 사람들에게 떡 돌리기를 하며 엄청 좋아했다. 병원에는 아기가 둘 밖에 없어서 바뀔 염려도 없었다. 남자라고는 남편밖에 모르고 지내온 나 아니었던가. 순결녀를 찾으라면 나를 따를 자 없다고 남편 귀에 못이 박히도록 떠들던 나였다. 그런데 사고가 일어난 걸까. 그 아기는 어디에 있지. 지금 내 품에서 새근새근 잠든 이 아기는 누구란 말인가. 그 아기의 누나들은 엄청 극성맞던데. 막 태어난 아기가 신기하고 귀엽다면서 씻지도 않은 손으로 볼을 찌르고 서로 안아보겠다며 떼를 쓰던데. 그래도 아빠는 돈을 잘 버나 봐. 잠깐 동안 내 머릿속은 드라마를 쓰고 있었다.

  남편이 갑자기 밖으로 뛰어 나갔다. 아무 잘못도 없는데 가슴은 쿵쾅쿵쾅 방망이질이다. 멘델의 유전의 법칙이 뭐였더라? 아빠를 닮아도 너무 많이 닮은 아기를 안고 이마, 귀, 눈, 코 등을 샅샅이 뒤지며 밝혀지지 않은 부분까지 찾아내려 애를 썼다. 만약 애가 바뀐 거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한 시간쯤 뒤 남편은 상기된 얼굴로 뛰어들어왔다. 그리고는 종이쪽지 한 장을 건네주었다. 어색한 미소 속에 담긴 표정을 읽으려고 애쓰는 내게 읽어보라는 것이다. 종이를 받아 들었지만 사형선고를 기록한 용지를 받은 듯 손이 너무 떨려 잘 읽을 수가 없었다. 애써 진정을 하고 보니 남편의 혈액검사 용지였다. 그런데 남편의 혈액형은 B형이 아닌 AB형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혈액형과 이름을 번갈아 확인하며 어떻게 된 일인지 되물었다.

  남편은 아기가 태어난 산부인과로 달려갔다. 그리곤 다짜고짜 아기의 탄생 기록을 보자고 했다. 그건 쉽게 보여줄 수 없다며 혹시 부모님 혈액형이 맞는 것이냐고 묻더란다. 군대에서 검사하고 알려 준 것이니까 맞을 거라고 했다. 산모인 나는 아기를 낳기 전에 미리 검사를 한 것이라 이상은 없었다. 병원에서는 아빠의 혈액 검사를 다시 해 보자고 권유를 했다고 한다. 혈액형이 어찌 바뀔 수 있겠냐고 투덜거리면서도 손가락을 내밀었다. 혈액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몇 분 동안 오만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지끈거렸다고 했다.

  검사 결과 B형이 아닌 AB형이라는 것을 알고 이럴 수도 있냐고 물었더니 의외로 혈액형을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단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함께 태어난 아기의 기록부를 보게 해 달라고 소란 피우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했다. 남편은 자신을 꼭 닮은 아기를 안고는 연신 뽀뽀를 해댔다. 잠깐의 의구심을 가졌던 잘못을 사죄라도 하는 듯 눈물까지 글썽이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떻게 순결한 나까지 의심했냐고 구박을 받으면서도 연신 싱글벙글했다.

  혈액형 소동은 몇 시간 만에 지나가 버렸다. 하지만 몇 년 뒤 온 국민의 가슴을 적신 드라마 <가을동화>는 또 한 번 혈액형 소동을 기억나게 했다. 병원에서 아기가 바뀌어 운명을 달리 살아야 했던 두 아이의 슬픈 삶이, 바뀐 줄 알고 키운 정과 낳은 정 사이에 갈등하는 어머니의 절절함이 전이되곤 했다.

 “그때 아기가 바뀐 거라면, 이제라도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엄마는 어떻게 하실 거예요?”

아들의 짓궂은 질문에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말라며 뒤돌아선다.

 “어떻게 하긴, 이렇게 착한 아들 절대 안 바꾸지. 아토피 아들을 내가 어떻게 키웠는데 절대로 못 바꿔.”  

 “저도 절대로 엄마 아빠 안 떠나요.”

  갑자기 등이 따뜻하다. 아들의 품에 안길 만큼 커버렸구나. 우리는 그대로 한참 동안 가슴으로 대화를 했다.


<독일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을 그리워하며~>

작가의 이전글 아픈 천사를 만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