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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평선 Sep 10. 2020

네가 필요해

소금을 두고 화목하라.

  꼭 이맘때가 되면 엄마는 나를 데리고 읍내로 갔다. 이 계절에 먹어야 할 맛있는 음식을 사 주겠다는 엄마 손을 잡고 한 시간 동안 걸어가는 길도 일곱 살이었던 나에겐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리 더워도 이것만 먹으면 속까지 시원해진다는 엄마의 말에 두 눈을 끔벅이며 상상의 나래를 편다. 여름 더위를 식혀 줄 것이라면 달콤한 팥빙수가 제격인데 그 보다 더 맛나고 시원한 음식이 있다니 얼굴이며 등으로 흘러내리는 땀방울도 참을만하다.  

  

 읍내 장날은 축제의 날이다. 각종 푸른 채소와 여름 과일을 쌓아놓고 덤도 준다며 소리치는 아줌마들. 여자 속옷을 머리에 두른 것도 모자라 양손에 들고 음악에 맞춰 엉덩이를 흔드는 아저씨. 뻥튀기 기계 옆에서 귀를 틀어막고 둘러앉은 얼굴 까만 아이들까지 장날의 더위는 한층 무르익어 간다.  

  

 엄마와 함께 들어 간 식당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그거 두 개 달라는 엄마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음식이 나왔다. 큰 대접에는 우유처럼 뽀얀 국물에 하얀 국숫발이 똬리를 틀고 앉았다. 새색시처럼 얌전히 앉아있는 오이채 사이로 투명한 얼음조각이 더위를 삼켜버릴 듯 반짝인다. 반숙으로 잘 삶아진 계란이 하얀 국물에 반쯤 잠긴 채 배시시 웃는다. 모양새는 마음에 들었다. 국물을 저으니 고소한 향까지 침샘을 자극해 입안에 단내가 퍼진다. 오이와 국수를 적당히 섞어 하얀 국물에서 구출해 내듯 크게 한입 밀어 넣었다.

  “아유 맛없어. 이걸 무슨 맛으로 먹어.”

 도로 뱉어내는 나를 보며 엄마는 깜빡했다면서 단지 속의 소금을 넣고 휘휘 저어준다. 소금 넣는다고 맛이 달라질까. 먹기를 거부하는 내게 한 젓가락만 먹어보라고 사정한다. 장에서 본 분홍 샌들을 사준다는 말에 울며 겨자 먹기로 국수 한 가닥을 건져 혀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소금 조금 넣었을 뿐인데 고소함과 달콤함이 일곱 살 어린아이의 마음을 사로잡아 국물까지 싹 비우게 했다. 이때부터 콩국수는 즐겨 찾는 여름 음식의 하나가 되었다.

   

 오랜만에 고향 친구를 만나 서울 거리를 돌아보기로 했다. 우선 북촌 한옥마을로 갔다. 이른 시각이라 사람들도 많지 않아 꼼꼼하고 여유 있게 관람할 수 있었다. 기와가 맞닿을 듯이 빼곡하게 들어 선 한옥 거리는 친구와 함께 있어서 그런지 고향에 온 것처럼 평화롭다. 한복을 입은 외국인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어달라고 해서 기와의 곡선을 살려 한국의 아름다움을 여러 장 넣어주었다. 주민들의 사생활을 보장해 달라는 현수막을 보며 그들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안타까워 침묵관광을 했다.

  

 국립 민속박물관에서는 세계 소금 특별전을 하고 있었다. 경복궁의 넓은 뜰을 돌아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파서 그냥 지나치려다가 특별전이니 한번 보고 가자며 안으로 들어갔다.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소금의 역사, 만들어지는 과정과 특징, 소금 관련 그림과 채취할 때 쓰는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각 나라 소금을 시식해 보는 곳도 있었지만 내 눈길을 사로잡은 곳은 영상관이었다. 4년에 걸쳐 완성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최후의 만찬에 알려지지 않은 숨은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그림에는 예수를 중심으로 열두 제자가 긴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너희들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그림을 잘 살펴보면 예수를 판 유다의 손에는 돈 자루가 쥐어있고 그의 팔꿈치 옆에는 소금 그릇이 쓰러져 있다. 다빈치는 이 그림을 통해 신뢰가 파괴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당시 소금의 썩지 않는 성질은 문화적으로도 확대되어 오래 두어야 할 좋은 친구, 변하지 않아야 할 약속을 상징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시장 벽면에 잘 몰랐던 소금 관련 글들이 많다. 인도에서는 중요한 계약을 맺을 때 주전자에 소금을 넣어 한 잔씩 나누어 마시는 풍습이 있고, 폴란드에서는 결혼식 때 신랑 신부의 사랑이 영원히 깨지지 않기를 바라는 의미로 소금을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독일은 소금 한 단지 정도는 함께 먹어야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속담이 있다. 유다 팔꿈치 앞에 넘어진 소금 그릇은 변하지 않아야 할 우정과 신뢰가 깨졌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소금을 두고 화목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늘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의견이 맞지 않아 다투기도 하고 오해를 불러오기도 한다. 소량의 소금을 넣어 짠맛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음식의 풍미를 살리듯 내가 드러남이 아니라 '가 있음으로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지난겨울, 혹독한 어지러움과 싸웠다. 청룡열차에서 내린 듯 천장이며 방바닥이 뱅글뱅글 돌았다. 메니에르라는 원인도 알 수 없는 이 병은 특별한 처방 없이 저염식을 하라고 한다. 평소 음식을 짜게 먹지 않는데 염분량을 더 줄이라고 하니 그것이 스트레스였다. 병원에서 먹는 환자식은 음식이 아니라 치료식인 것이다. 약이라 생각하고 먹어야 했다.

  음식에 스트레스받지 않기 위해 오히려 소금을 적당히 넣어 맛있게 먹고 틈틈이 운동을 했다. 꼭 해야 할 일이 있어도 과로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렇게 나는 메니에르를 이겨고 친구의 만나자는 요청에 흔쾌히 동행할 수 있었다.

  누가 먼저 말한 것도 아닌데 친구와 나의 발걸음은 콩국수집으로 향했다.

  얼음이 동동 뜬 뽀얀 국물에 소금을 넣어 간을 맞추니 달콤하고 고소하게 입맛을 자극한다. 하얀 국숫발에 짭조름하게 절여진 오이지를 곁들이니 아삭한 식감이 더위조차 상큼하게 만든다.

“사실 나 요즘 갱년기가 와서 많이 우울했는데 네가 함께 있어줘서 정말 고마워. 오늘 점심은 내가 쏜다.”

한옥 마을에서 예쁜 컵 세트도 사 주더니 서둘러 계산대로 달려가는 친구의 뒷모습이 든든하다.

'네가 나를 불러 준 것처럼 나도 네가 필요하단다.'

친구 몰래 준비한 선물 꾸러미를 들고 뒤따르는  걸음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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