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먹먹합니다. 그녀와 만난 두 시간 내내 울다, 웃다가를 반복했습니다. 그녀의 여린 눈동자가 '난 괜찮아'라고 말하지만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습니다.
그녀는 5년 전에 코암에 걸렸습니다. 원래 몸이 약했던 그녀지만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그녀의 몸은 기력이 다하고 말았습니다. 20대에 피아노 학원 원장이 되어 음악 지도하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며 살았는데 더 이상 원생들을 가르칠 수 없었습니다. 모아두었던 적금들은 수술비와 여러 차례 거듭되는 항암 치료비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암투병중에도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요양사 자격증도 땄습니다. 본인이 돌봄을 받아야 할 텐데 더 힘든 사람을 케어한다고 이를 악물고 자격증을 땄던 것입니다. "공부하는 2년 동안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 아픈 고백을 하는 그녀의 눈망울에 이슬이 맺힙니다. 공부하면서 코와 귀로 넘쳐흐르는 피고름을 견뎌야 했고, 입안이 헐어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답니다. 그녀의 자격증은 인간승리의 면류관인 것입니다.
160cm의 키에 몸무게 43kg의 여인은 아침에 겨우 일어나 도시락 두 개를 싸가지고 일터로 향합니다. 치매 때문에 같은 말을 되풀이하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어머니, 아버지라 부르며 극진히 보살핍니다.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운동시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그분들이 조금이라도 움직이게 하기 위하여 요양사 선생님은 열심히 운동 시범을 보입니다. 지금껏 운동을 그렇게 싫어했던 그녀가 말입니다. 건강한 말동무가 되어드리기 위해서 억지로라도 잘 먹고 잘 쉬어야 한답니다. 힘든 어르신들을 케어하는 동안 자신의 불행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오히려 어르신들과 함께 있는 동안 살도 찌고 건강해졌다며 그 일에 감사를 합니다.⁸
이대 나온 어르신 이야기를 하는 동안 아픔도 잊고 함께 웃었습니다. 어르신은 치매에 걸리셨지만 아직도 자신은 뭐든지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신답니다. 그래서 어느 누구의 도움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치매환자들은 인지 개발을 위해 색칠공부와 그리기, 만들기를 합니다. 이 어르신께 인지교육을 시도하던 요양사들이 모두 헛걸음할 때 그녀는 어렵지 않게 할머니에게서 작품을 받아냅니다. 그녀는 어르신을 가르치려 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는 것을 지켜보게 했답니다. 요양사가 뭔가 열심히 쓰는 것을 본 할머니는 조용히 묻습니다. "선생님은 뭐하시느라 그렇게 바빠요?" 그녀는 대답합니다. "보고서도 써야 하고 색칠도 해야 해서 이렇게 바빠요. 어머니가 좀 도와주실래요?" 누군가의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어르신은 흔쾌히 색칠 도구를 받습니다. 그리고 정성을 다해 색칠을 합니다. 그림이 완성되었을 때는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으며 행복해합니다. "어머니, 위에 어머니 이름도 써 주세요. 누가 도와줬는지 자랑하게요." 할머니는 이름도 반듯하게 씁니다. 정성을 다해 한 자 한 자 적어가는 필체가 남다릅니다. 그 옆에 사인까지 멋들어지게 합니다. 어르신은 요양사를 도와주었을 뿐이고 요양사는 남들이 해내지 못하는 과제를 힘들이지 않고 해냈습니다. "나는 오히려 그분들을 통해 위로받고 나의 아픔을 치료받아." 바짝 마른 얼굴은 주름지고 피곤에 지쳐 있지만 미소 짓는 그녀의 얼굴은 아기천사입니다. 하나님이 그녀를 세상에 더 있도록 허락하시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오늘도 내가 떠난 뒤 그녀는 피고름으로 가득 찬 콧속에 식염수를 넣고 한참 동안 소리 없이 고통스러워할 것입니다. 이젠 너무 헐어 무감각해질 법도 한데 온몸의 세포를 칼로 도려내 듯 고통스럽답니다. 한참을 그렇게 힘겨워하다가 겨우 잠이 듭니다. 알람이 울리면 어김없이 고통을 참으며 잠든 세포들을 깨웁니다. 그때의 고통 또한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을 가질 만큼 아픕니다. 하지만 그녀는 기다리고 있을 어르신들을 찾아 마스크로 아픔을 가리고 용감히 자동차에 시동을 켭니다. 꺼져가는 불씨 같지만 어르신들의 마음에 평안을 주고 미소 짓게 하는 그녀는 천사입니다. 아픈 천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