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아들은 중고등학교를 필리핀에 있는 국제학교에서 공부했다.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조기유학을 했던 것이다. 딸이 초등학교 4학년 때 우연한 계기로 무료로 영어를 가르치는 곳을 알게 되었다. 선생님은 성실하게 공부하는 딸을 보고 필리핀 유학을 권유했다. 우리 형편에 유학은 생각지도 못하는 데 딸은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유학을 떠나겠다고 했다. 외교관이 꿈인데 영어는 기본으로 잘해야 하지 않겠냐며 야무진 포부를 밝히면서.
아이들과 수학여행 외에 한 번도 떨어져 본 적이 없던 터라 외국으로 보내는 것을 망설이고 또 망설였다. 딸은 오히려 엄마를 위로하며 "수학여행 좀 길게 갔다고 생각해요."라는 말만 남기고 우여곡절 속에 긴 유학길을 떠났다. 연년생인 아들도 다음 해에 필리핀으로 향했다.
둘은 장학금을 받아서 미국으로 대학을 가겠다며 열심히 공부를 했다. 12학년을 마칠 즈음. 딸은 미국 대학으로부터 장학금도 꽤 많이 주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졸업까지 들어갈 비용을 계산해보니 도저히 우리 집 형편으로는 어림없는 일이었다. 졸업을 앞둔 딸에게 독일 유학 제의가 들어왔다. 독일 대학은 학비가 없고 영어로도 공부할 수 있다고 했다.
학교 선배들 중에 미국, 뉴질랜드, 캐나다 등으로 유학을 간 사람은 있지만 유럽 쪽엔 처음이라 도움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고 유학원과 학원도 알아보았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조사해 본 결과 영어로 가는 방법도 있지만 원하는 수업을 듣기 위해서는 독일어가 필수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학교에서는 영어로 수업했고, 제2 외국어는 중국어를 했는데 독일어를 준비해야 한다니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하지만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딸과 남편 그리고 나는 독일어를 공부할 수 있는 곳을 하나하나 방문하여 조사해 보았다. 그리고 세 군데로 압축을 했다.
첫째. 괴테 주한 독일문화원은 독일어로 수업을 하고 공신력도 있어 많은 자료도 얻을 수 있지만 수강료가 가장 비싸다는 점과 기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둘째. 강남의 김범식 독일어 학원. 이곳은 자신이 커리큘럼을 짤 수 있고 시간과 수강료를 비교했을 때 괜찮았다. 인터넷 평도 좋고 집에서 버스로 한 번에 갈 수 있는 곳이다.
셋째. 훔볼트 평생교육원. 이곳은 일정한 커리큘럼이 있고 처음에 들어가는 비용이 많지만 점차 줄어들어 평균으로 치면 다른 여타 학원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이곳도 인터넷 평이 좋고, 그룹스터디도 잘 이루어진 듯하여 우선순위를 두었다.
하지만 1년 동안의 언어 준비로 과연 독일 유학이 가능할까?
필리핀은 한국보다 졸업이 6개월 늦은 터라 친구들은 이미 대학에 다니고 있는데 이제 언어를 준비해서 간다는 것이 옳은 판단일까?
고민하고 또 고민하던 딸은 필리핀에서 6년 동안 있으면서 한국 문화에 서툴렀는데 한국에서의 1년은 한국문화를 접할 수도 있고 먼 곳으로 유학 가기 전 한국의 추억을 만들 수도 있으니 결코 버려지는 시간이 아닐 것이라고 했다.
외교관이 꿈이었던 딸은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며 독일어 배우기에 당차게 도전장을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