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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평선 Mar 30. 2020

저 고민 있어요.

리빙스턴 하우스 이야기

기숙사에 입사한 지 한 달 된 도희(가명)가 나를 애타게 기다린다.

늦은 밤까지 스텝회의를 하고 방으로 돌아오니 밤 10시다. 요즘 코로나 19로 매일 대책회의를 하느라 몸은 파김치가 되었고 눈가에 다크서클이 스멀스멀 내려왔다. 룸메이트들은 이미 씻고 취침 준비 중이다.
도희가 2층 침대에서 내려와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렁그렁한 눈빛으로 상담을 요청하는 도희를 물리칠 수 없어서 어두운 거실에 마주 보고 앉았다.
평소 생글거리며 잘 웃던 도희의 눈빛이 발갛게 충혈이 되어 있었다.

바짝 다가가서 도희의 손을 잡았다.
이때를 기다렸을까. 도희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한국에서는 친구가 많았었는데 여기서는 왜 친구 만들기가 어려워요."
도희 또래들에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친구 문제였다.
"우리 도희가 친구들이랑 언니, 오빠들과 잘 지내는 줄 알았는데 진정한 친구가 없어서 많이 외로웠구나."
도희는 격하게 머리를 끄덕이면서 눈물을 닦는다.

도희는 초등학교 6학년 esl학생이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녔다면 중학교 새내기이지만 필리핀에서는 새 학기 시작이 8월이라 아직  6학년인 셈이다.
이른 조기유학을 왔기에 또래 친구들은 단 세명뿐이다. 더구나 친하게 지내고 싶은 선영(가명)이는 레귤러 학생이다 보니 대화거리가 달라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도희가 원하는 건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고 외로움을 달래 줄 친구다.
이번에 새로 들어온 6학년 아이들은 세명인데 모두 개성이 강해서 융화되기가 쉽지 않다.

선영이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언니 오빠 사이에 태어난 늦둥이라 그런지 생각이 어른스럽고 언니 오빠들과 더 친하다. 겨울 캠프를 같이 했던 수아(가명)는 차분하고 조용한 편이어서 쉽게 다가가기가 어렵다. 예준(가명)이는 남자아이여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다.
유학생들은 또래 친구가 많던 한국 생활과 달리 소수 인원이다 보니 친구에 대해 목말라한다. 특히 나이가 어린 학년일수록 일찍 유학 오는 확률이 적기 때문에 친구가 없어 외로움이 더하다. 하지만 8학년, 9학년쯤 되면 유학 오는 학생들도 늘어 자연스레 친구도 많아지고 또래 그룹이 형성된다.  먼저 온 학생들은 기숙사에 이미 적응하였고 영어에 대한 자신감도 생겨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물을 마시러 나오던 진영(가명)이가 한마디 거든다. "나도 7학년 때 유학 왔는데 그때 친구들이 하나도 없었어. 그런데 참고 견디니까 친구들이 20명이나 되었지. 지금은 이해되지 않는 말이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현실에 충실하다 보면 나처럼 10학년이 되고 12학년 언니들처럼 곧 졸업을 기다리게 될 거야. 도희야 힘내자."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파이팅을 외쳐주는 언니의 말이 도희에게 큰 위로가 되었나 보다.

환하게 미소 지으며 함께 파이팅을 외친다.
늦은 밤. 어둠 속의 대화는 환한 미래를 꿈꾸게 한다.
나도 그들과 함께 꿈꾸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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