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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평선 Dec 14. 2020

비건 테이블

미디어로부터 자유롭기 위하여~

  남의눈을 피해 딴짓을 하고픈 심리가 슬그머니 마음을 흔든다. 머리로는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습관처럼 보고 말았다.
아뿔싸~ 비건 테이블~

오늘은 필리핀 선생님들이 미디어 프로그램을 점검하는 날이라 온라인 수업이 없다. 대신 선생님들이 준비해 놓은 module을 보며 자습을 하는 날이다. 수업이 끝나는 오후 4시부터 미디어를 쓸 수 있는데 아침부터 노트북을 받은 아이들의 표정은 사뭇 밝다. 월요병이니, 일찍 공부하는 게 적응이 안된다느니 투덜거리던 아이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눈빛이 초롱초롱하다.
"절대로 딴짓하지 말고 모듈 공부에 집중하세요."
"네~"
대답 소리는 늘 경쾌하다.

선생님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슬그머니 교실 문이 닫힌다. 열린 교실로 바람이 들어가니까 추워서 그러려니 했다. 며칠 전 비건 테이블을 경험한 아이들을 보며 '가장 무서운 벌'이라고 했던 아이들 아닌가.
공부시간에 미디어를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다가 걸리면 '비건 테이블'이라는 걸 모르는 아이들은 없으니까 당연히 모듈 공부에만 집중하고 있을 것이라 믿었다.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 온 선생님들을 보며 화들짝 놀라는 아이들이 수상쩍다. 그러나 아이들의 노트북은 모듈이 켜져 있는 상태다.
하지만 스텝들의 눈은 예리하다. 아이들이 방문했던 이전 프로그램을 점검해보니

 '너 딱 걸렸다. 비건 테이블~'


 우리에게 전에 없던 비건 테이블이 왜 생겼을까?
며칠 전 저녁식단이 소 음식으로만 준비가 되었다. 늘 한 두 가지 육식 또는 생선 반찬이 있었는데 국물까지도 순수 콩나물국이었다. 조리사님이 웃으면서 말씀하시기를 학생들이 환경운동을 위해 일주일에 한 번은 채소반찬으로만 준비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취지가 기특해서 모든 교직원의 허락이 있었는 줄 알고 급하게 식단을 바꾸셨다고 했다.

상황을 모르고 있던 스텝들은 사건의 경위를 밝히기 위해 조사에 나섰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Current affer 시간에 지구가 급격히 온난화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공부를 했다고 한다. 북극의 얼음이 급격히 녹고 있고 그로 인해 육지가 바다에 잠기는 등 생태계의 변화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된 몇몇 학생들이 환경을 살리기 위한 모임을 가졌다. 그리고 지구 환경을 위해 일주일에 한 번은 비건 식사를 하자는 의견을 모아 학생 서명을 받아 실행한 것이다.
취지는 좋았다.

환경 살리기 모임이 생기면서 분리수거도 잘하고 있고 쓰레기 줄이기 노력도 하고 있으니 칭찬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식단을 바꾸는데 스텝들의 동의를 얻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비건 식단이 무엇인지 정확한 의미도 모른 채 저 일주일에 한 번 채소만 먹겠다고 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아이들에게 비건의 뜻을 조사해오라고 했다.

아이들의 조사에 의하면- 비건 식단이란 동물성 음식이나 제품섭취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동물성 재료도 사용하지 않적극적인 의미의 채식주의라고 했다.(예 : 가죽, 양모, 오리털 등을 사용하지 않으며 동물 실험한 제품도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동물들의 알, 유제품, 꿀도 먹지 않는다.

 여기까지 조사한 아이들은 비건 식단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환경과 동물을 사랑하는가를 알았다고 했다.

그 후에 아이들은 미디어 부정행위를 한 학생은 비건 식단을 경험해야 한다고 하며 자발적으로 벌칙을 정했다. 육식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미디어 금지보다 더 힘든 것이 '비건 테이블'이라고 했다.

이 벌칙은 벌칙으로 합당하지 않기 때문에 일회성으로 끝났지만 지금도 규칙을 지키지 않는 학생들을 보면 "비건 테이블"이라고 말할 정도이다.


지금은 저녁식사 전에 미디어를 반납하지만 학생들이 미디어를 건전하게 사용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스텝들은 미디어 프리를 고민하고 있다. 과연 아이들이 미디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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