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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평선 Dec 18. 2020

5분만 일찍

기숙사 학생들에게 1분이란~

  

"5시 50분까지 미디어 반납해 주세요."

오늘도 회장은 미디어 박스를 열며 소리친다.

"네~""

아이들의 대답은 백화산 산자락에 메아리쳐 되돌아온다. 

그러나

꼭 한두 명씩 미디어 박스가 잠기고 나서 급하게 달려온다.

"10초 늦었는데 봐주면 안 될까요?"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어 졌어요."

 

 "얘들아, 조금만 일찍 서두르면 되잖아. 딱 시간 맞춰 내려고 하지 말고 좀 미리미리 하렴."

아무리 강조해도 아이들의 시각은 항상 '정시'이다. 1분이라도 일찍 미디어를 내는 것이 아깝다는 듯 아이들의 눈은 미디어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겅중이가 오늘도 늦지 않으려고 뛰느라 고생했네."
어느 때부터인가 내 별명은 겅중이가 되어 있었다. 약속시간을 앞두고 늘 겅중겅중 뛰는 내 모습을 보고 친구들이 지어 준 별명이다. 얼굴이 길어 '말상'이라는 말을 들어왔던 터라 그 별명이 싫지 않았다.  차 시간을 미리 계산해 놓고 정확하게 출발하는 센스!

외출 준비를 일찍 끝냈어도 정확한 시간을 고수하는 나는 뭔가 딴짓을 했다. 그러면서도 자투리 시간까지 활용을 잘하는 내가 오히려 대견스럽기까지 했다.
체육대회 때마다 달리기 상을 휩쓸었던 내가 아닌가. 약속 시간이 임박해 오면  좀 빠르게 뛰면 되었다.

그러나 이 겅중이 습관에 종지부를 찍어야 할 때가 왔다.  

  몇 개월 동안 준비한 공무원 시험을 치르러 가는 날이었다. 전날부터 긴장된 마음은 잠을 설치게 했다.  시험날 아침 일찌감치 일어나 시험 보러 갈 준비를 했다. 밥도 든든히 먹고 수험표와 필기도구를 챙기고도 버스 시간까지는 조금의 여유가 있었다. 집에 놓고 가려고 빼놓았던 책을 보며 마지막 정리를 했다.

 엄마는 "빨리 가지 뭐하냐"라고 성화를 하셨다. 빙그레 웃으며 내 튼튼한 다리를 번쩍 들어 올려 보여 드렸다.
 시간이 되어 인사를 하고 새벽길을 빠르게 걸었다. 넓은 평야 덕에 멀리 있는 찻길이 어슴프레 보였다. 정류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부지런히 걸으며 밤새 암기한 것을 잊지는 않았는지 점검을 했다.

 아직 버스가 올 시간은 5분이나 남아 있는데 저 멀리 버스가 달려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마치

육상대회라도 나간 듯 전심전력으로 달렸다. 평상시 같으면 정류장에 버스를 타는 사람들이 많아 멀리서 달려오는 사람도 태우고 출발하는 것이 시골 인심이었다. 하지만 이른 새벽이라 어스름한 탓인가. 기사님은 달리는 나를 보지 못하고 정류장을 지나쳐 가고 있었다.

  "기다려 주세요~같이 가요~"

내 목소리는 새벽 공기에 산산이 흩어지고 말았다. 버스는 앞서가는 차를 모두 앞지르고야 말겠다는 듯이 저 멀리 달려가고 있었다.
다음 버스는 30분 뒤에나 오고 시골이라 지나가는 택시도 없었다. 나는 오랫동안 준비한 공무원 시험을 놓치고 말았다. 부모님께는 시험이 너무 어려워서 떨어졌다고 둘러대야 했다. 내 자존심을 땅속에 묻어야 했던 과거를 돌아보며 나는 결심을 했다.
'무슨 일을 하든지 5분 일찍 하자!'
그 사건 이후 나는 집안에 있는 모든 시계를 5분 전으로 맞춰 놓았다. 그러다 보니 5분이 아니라 그 보다 일찍 준비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고 '5분 전'이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

 

  여유를 갖게 되니 겅중겅중 뛰느라 보지 못했던 주변의 사물들이 눈에 들어다. 길 가에 수줍은 듯 숨어있는 작은 들꽃들도 보이고, 빵부스러기를 먹느라 종종거리는 한 무리의 참새들도 보인다.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도 보이고, 세상 근심을 홀로 다 짊어진 듯 한숨 쉬는 외로운 아이의 굽은 등도 보인다.


  얘들아, 진정한 여유를 즐기고 싶다면 5분 일찍 준비해 보. 그러면 세상이 달라 보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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