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에 눈이 떠졌다. 아직 어둠은 스멀스멀 내 육체를 감싸는데 머릿속은 이미 오늘 일정을 정리하고 있다.
오늘은 딸이 독일 노트하우젠 대학에서 콜렉 시험을 보는 날.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차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버스를 타고 몇 시간을 왔을까? 하루를 일찍 도착하여 낯선 곳에서의 일정은 피곤함을 묻어 줄 만큼 여유를 주었다. 도시 주변을 돌아보았고 시험 볼 학교와 버스 노선도 미리 알아 놓았기에 마음은 평안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몸은 피곤했지만 한번의 망설임 없이 일어나 샤워를 하고 화장도 곱게 마친 다음 경건한 마음으로 아침 식사 준비를 했다.
곤히 자고 있는 딸의 뺨을 어루만지니 평소에는 이런 스킨십에 미동도 않던 딸은 화들짝 놀라 깨며 늦었냐고 묻는다.
“아니, 이제 일어나면 돼.”
감긴눈으로 부스스 일어나는 딸을 살짝 안아주었다.
딸이 씻는 동안 조촐한 아침을 차렸다. 햇반과 미역국, 누룽지탕과 김,한국에서 만들어 온 밑반찬 몇 가지를 내어 놓으니 제법 훌륭한 조식이 준비되었다. 아침을 잘 먹던 딸이 일찍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많이 긴장하고 있구나.' 다 치우고 나니 10분의 여유가 있다. 딸의 손을 잡고 기도를 드렸다.
'긴장하지 않도록 평안함을 주소서.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A버스는 정시에 왔다. 자리도 많이 비어 있고 거리도 한산하다. 버스는 돌고 돌아 중앙역으로 갔다.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꾸역꾸역 밀고 들어온다. 한 명씩 차비를 받느라 버스는 지체를 한다. 시험 보러 가는 듯한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잔돈을 준비한 사람이 많지 않다. 모든 교통비를 카드로 찍는 한국의 교통문화가 얼마나 편리한 것인지 새삼 고마움을 느꼈다. 몸을 아예 승객에게로 돌리고 거스름돈을 일일이 세어주는 기사분을 보며 웃음이 나왔다. 여유 있게 나왔기에 정체되는 버스 안에서도 긴장하지 않았다.
학교에 도착을 하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접수창구에 몰려 있다.가족을 동반한 학생들도 많고 접수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어 기다리기로 했다. 입구에 몰려있는 사람들의 숫자는 점점 늘어서 7,8백명은 족히 넘으리라.
전날 딸과 도시 구경도 할 겸 산책하다가 만난 프라하에서 온 한국인 모녀를 만났다. 두 딸들은 접수를 하러 들어갔고 그 어머니와 독일 교육에 대한 정보를 나누며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딸은 상기된 얼굴에 눈물범벅이 되어 뛰어나왔다. 비자가 없어서 접수를 못한다고 했다. 비자 여부를 묻는 메일을 보냈을 때 분명 없어도 된다는 메일을 받았기에 그 메일을 보여줬는데도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며 무조건 안된다고 했단다. 시험은 이틀에 걸쳐서 볼 수 있으니 임시비자라도 만들어 다음날 다시 오라고 했단다.
일 년 동안 입에 단내가 나도록 준비를 했는데 시험을 볼 수 없다니. 딸은 거의 실신 상태가 됐다.
“내일도 시험 볼 수 있으니 일단 베를린으로 가자.”
딸은 울먹이며 한국 대사관의 위치를 검색했고 몇군데 전화를 하더니 이곳시내에도 비자하는 곳이 있다는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어. 내일이라도 시험 볼 수 있으니 어서 출발하자.”
물어물어 버스와 트램으로 갈아타고 비자 발급하는 곳으로 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3층으로 가란다. 계단으로 가려고 나왔는데 문들이 잠겨버린다. 입구로 다시 나와 물어보니 엘리베이터를 타는곳을 알려준다. 3층으로 가서 보이는 사람마다 물어봤다. 하지만 그들도 비자를 받기 위해 온 외국인들이란다.
우리가 허둥대는 모습을 보았을까? 어떤분이 다가와복도를 가리키며 끝쪽에서 기다리란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을 우두커니 지켜보고 있는데 재미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직원들이 사무실에서 나오면 바로 그 방 문은 잠겨버린다. 다시 들어가려면 그 방 주인이 열쇠로 문을 열어야 한다. 그래서 직원들은 목에 열쇠를 걸고 있다.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저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하며 이름이 불려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를 기다렸을까. 어떤 여자분이 park을 찾는다. 들어가서 상황 설명을 하니 또 기다리란다. 잠시 후 다시 park을 부른다. 그 여자 직원이 한국은 무비자 3개월이라 비자가 필요 없다고 했다. 그리고 어떤 문서 복사본을 주며 다시 학교에 가보란다. 만약 그래도 안된다고 하면 자기에게 전화를 하라고 전화번호까지 친절히 적어준다. 이런 작은 친절에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아침일찍 나와 화장실도 가고 싶었지만 트램이 오기에 바로 중앙역으로 가서 버스로 갈아타고 다시 학교로 향했다. 오늘 중으로 시험을 봐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룩셈부르크로 가는 기차와 버스표를 미리 예약 해 놓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학교에 도착을 하니 이미 많은 학생들이 시험을 보고 돌아가고 있었다. 아직 백여 명의 학생들이 남아있는 것을 보고 접수처로 뛰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