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들의 시행착오로 제시간에 시험을 볼 수 없었는데 그 잘못을 사과는커녕 우리가 덮어써야 한다고? 아니지. 이건 아니지.
저녁에 떠나려고 예약했던 기차표와 버스 예약 용지를 들고 콜렉접수구로 향했다. 독일어는커녕 영어도 안 되는 나였지만 엄마라는 이름으로 당당하게 문을 노크했다.
"엄마가 한국말로 할 테니 네가 차분하게 통역해.”
딸이 다시 들어오는 것을 본 그들은 왜 또 왔냐는 듯 짜증섞인투로 내일 다시 오라고한다.
딸은 엄마가 할말이 있다고 해서 다시 왔다고 했다. 나는 예약 차표를 보여주며정중하게 말했다. "우리는 오늘 떠나야 합니다. 접수할 때선생님들이 잘못알아서 늦어진 것이니 오늘 시험 보게 해 주십시오."
내 표정이 어두워 보였나? 그들은 딸에게 보인 태도와는 달리 서로 상의를 하더니 딸에게 따라오라고 한다. 이번엔 딸과 함께 갔다. 우리를 안내한 분은 오늘의 마지막 시험이라며 딸을 교실로 들어가라고 했다. 딸은 정신없이 시험장으로 들어갔고 나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텅 빈 복도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딸이 무사히 시험을 치르게 됨에 안도의 한숨을 돌리고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 딸이 다시 나오는 것이다. 접수증이 없으면 시험을 볼 수 없다고 했단다. 차분히 상황 설명을 했지만 시험을 주도하는 선생님은 막무가내였단다.
우리의 말소리를 들었을까. 교장실에서 어떤 여자분이 나오더니 잠깐만 기다리라고했다. 그녀는 시험실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와서는 이번이 마지막 시험이니까 자신이 대신 접수를 해 주겠다며 바로 시험을 보라고 했다.
시간은 이미 오후 3시를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오전 6시에 숙소에서 나와 지금껏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화장실도 못 간 상태에서 딸은 시험장에 앉아 있다.
딸을 시험 보게 해준 분이 앞으로 2시간 동안 시험을 보게될것이라며 편한 곳에서 기다리라고 한다. 괜찮다고 하며 어두운 복도에서 딸이 시험을 잘 치르고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두 시간이 왜 그렇게 길게 느껴지는 걸까.
갈증도 나고 긴장도 되어 물이 마시고 싶었지만 참았다. 잔뜩 긴장한 채 시험을 치르고 있을 딸을 생각하니 물을 마실 수도, 화장실에 갈 수도 없었다. 백여 명의 학생을 뽑는데 시험 치러 온 학생이 오늘 하루만도 칠백 명은 족히 넘는 것 같았다.
어느 나라나 부모의 마음은 같은가 보다. 학생들이 시험을 치르고 나오면 등을 두드리며 격려하는 가족들의 모습에 쓴 미소가 지어졌다.
'나는 시험 보고 나오는 딸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해 주어야 할까'
고민하며 서성이고 있는데 종이 울리고 시험장에서 학생들이 나온다. 학생들의 표정은 다양했다.
'저들 중에 미소 짓게 될 학생들은 몇 명이나 될까.'
학생들이 거의 다 빠져나갈 즈음 딸이 나왔다. 거의 울듯한 표정이다. 시험장에 들어가자마자 듣기 시험을 보았는데 너무 긴장한 나머지 첫 문장을 놓쳤다고 했다. 당연하지. 이른 아침에 나와서 지금껏 긴장 속에 그 많은 사건들을 겪었으니...
딸은 품에 안겨서 엄마가 함께 와 줘서 정말 다행이라며 감사하다는 말을 여러 차례 한다.
"이제 다 잊고 우리 계획대로 여행을 하자. "
발표까지는 일주일을 남겨 두고 있기에 지인이 살고 있는 룩셈부르크로 가기로 했다. 일주일 뒤에 다시 돌아올 것을 생각해 호텔에 짐을 맡기자고 했다. 딸은 떨어지면 이곳에 올 필요가 없는데 그래도 될까 망설인다. 떨어졌으면 마음 편하게 이곳을 며칠 더 여행하면 되지 않냐고 설득하며 호텔 직원에게 짐을 맡겨도 될지 물었다. 직원은 친절하게도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중앙역에서 체코로 돌아가는 한국인 모녀를 만났다. 시험을 잘 본 듯 매우 밝아 보였다. 한국에서 일 년 만에 독일어를 배우고 이곳까지 온 것도 대단하다며 어쭙잖은 위로를 남기고 그들은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