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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젠 독일

합격자 발표가 났어요. 그런데...

5. 당당했던 그 아이와 자신 없어하던 딸

by 수평선

국제학교에 다니면서 여러 나라를 여행했던 딸과 단 둘이 하는 여행은 설렘과 기대로 마냥 들떠 있었다. 하지만 유럽 여행 처음인지라 룩셈부르크로 가는 길이 쉽지 않았다.
딸이 콜렉 시험을 본 노트하우젠에서 프랑크푸르트로 돌아간 다음 다시 버스를 타고 룩스까지 가야 한다. 그런데 독일의 기차는 제 때 도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룩스행 버스 시간을 넉넉히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배차 시간이 임박했다. 버스를 타는 곳도 모르는 우리는 뛰고 또 뛰고, 묻고 또 물어 겨우 도착했는데 숨 쉴 겨를도 없이 버스가 출발을 했다. 이제 버스가 도착할 때까지 여유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는 딸을 보니 무척 피곤해 보였다.

하루 종일 시험 보느라 얼마나 가슴 졸이고 힘들었을까. 이젠 좀 쉬렴.

하지만 처음 뵙게 될 룩스 분들과 룩스까지의 거리 풍경을 놓치고 싶지 않다며 창밖으로 시선을 모았다. 시험 본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던 딸이 시험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지만 첫 문장을 놓친 것이 아쉽다며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딸의 손을 포근히 감싸 쥐며 지금은 다 잊고 여행에 충실하자고 했다.

룩셈부르크에 도착하니 지인과 그의 남편이 배웅을 나와 있었다. 남편분은 처음 뵈었지만 낯설지 않고 편안했다. 두 부부 모두 딸과 처음 만나는 것이지만 여행과 시험에 대한 이야기로 밤 깊어가는 줄도 몰랐다.

다음날 한식으로 아침을 준비해 주셔서 편안히 식사를 하고 룩셈부르크 관광을 했다. 우리나라 제주도 크기의 나라. 하지만 GDP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임을 말해 주 듯 거리는 깨끗하게 잘 정돈되어 있고 고향같은 포근한 인상을 주었다.

룩스 근교인 프랑스와 벨기에를 여행하며 나라들 마다 독특한 양식의 건축물을 보며 근접한 나라들끼리도 국가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것을 보니 새롭고 신기했다.

딸은 기회가 생기면 건축물에 대해서 공부해 보고 싶다고 했다.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했다. 알고 본다면 감동도 훨씬 크리라.


여러 나라를 관광하고 다니느라 시험 결과에 대해서는 잊고 있었다.
"내일이면 결과가 나오는 날이네. 오늘 오후에는 집에서 편안하게 지내자."

일찍 식사를 마치고 오랜만에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홀로 방에 들어가 노트북을 두드리던 딸이 야릇한 표정으로 나왔다.


"발표가 일찍 났는데요. A에요."

A라니? 그게 무슨 말이지? 모두 딸의 말을 기다렸다.

A부터 네 단계가 있는데 A는 합격했으니 입학 날짜에 오라는 것. B는 합격이지만 대기자. C는 합격은 했지만 어학을 좀 더 하고 오라. D는 불합격이란다.
뭐야. 그럼 합격인 거잖아.

딸은 그제야 눈물을 글썽이며 그런 것 같다고 했다. 모두 박수를 치며 축하를 해 주었다. "대견하다. 잘했어. 축하해."

얼떨떨해하는 딸을 위해 파티를 하자며 아껴두었던 와인을 들고 나왔다.

"쨍~"

와인잔 부딪치는 소리가 경쾌하다. 순간 체코 아이가 떠올랐다. 발표난 거 아직 모를 수도 있으니 톡으로 알려주라고 한다. 그러면서 슬쩍 결과도 물어보라고.

먼저 말해주기 전에 묻는 거는 실례 아닐까 했더니 시험 잘 봤다고 했으니 합격했을 거라며 소식을 전해보라고 성화다.

발표가 미리 났는데 알고 있냐고 조심스레 톡을 보냈다. 외부에 있어서 아직 모르는데 알려줘서 고맙다는 연락이 왔다. 딸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냐는 질문과 함께.


두 시간 후 체코 엄마로부터 연락이 왔다. 자신의 딸은 C단계 라며 딸의 합격을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축하 이모티콘이 왔다.

유럽권에서 3년째 독일어를 준비하고 당당해하던 아이였는데 아쉬웠다. 덕분에 딸의 합격이 대단한 것임을 다시 한번 느꼈다.


문득 한국에서 독일어를 준비하고 있는 아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내년에는 아들과 함께 다시 오게 되겠군.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유럽의 문을 열게 해 준 딸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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