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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젠 독일

독일 기차 타기 어려워

독일에서 기차를 제시간에 갈아타는 건 행운이라고요

by 수평선

오전 11시에 방 주인을 만나기로 했다. 본에서 아헨까지는 기차를 두 번 갈아타야 하기에 교통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몰라 예정시간보다 30분 일찍 나왔다. 퀠른 가는 기차가 5분 늦는다는 방송이 나온다. 뭐 그 정도야 애교로 봐준다.

퀠른에 도착하여 8번 라인에서 아헨 가는 기차를 기다렸다. 잠시 후 15분 늦는다는 문자가 정광판에 떴다. 15분 뒤 기차가 왔다. 비교적 순조로운 상황에 만족하며 기차를 탔다.


독일어로 방송이 나오자 사람들은 모두 기차에서 내린다. 아들이 통역하기를 '이 기차는 더 이상 가지 않으니 모두 내리라'는 것이다. 우리가 떠나려던 기차가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다음 차는 30분 뒤에나 온단다. 약속시간보다 30분 일찍 나왔지만 자칫하면 늦을 것 같아 약속된 사람에게 상황을 알렸다. 대부분 이런 상황을 그냥 넘어가는데 연락해줘서 고맙다며 기다려 준다는 연락이 왔다.


다음 기차는 선로 자체를 바꿔 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휴~'라는 듯 한 동일한 소리를 내더니 층계를 빠르게 내려간다. 우리도 서둘러 내려가다가 한국인 아주머니를 만났다. 캐나다에서 친구 만나러 아헨에 가는 길인데 지금 무슨 상황이냐며 묻는다. 아들이 그분께 상황설명을 하자 같이 동행해도 되냐고 묻는다.


다음 기차는 10분 연착된다더니 15분에서 20분.. 계속 늦는다는 글만 정광판에 오른다. 결국 25분 뒤에 기차를 탔다. 하지만 또 떠나지 않는다. 다른 기차 신호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결국 방 주인과의 약속시간은 40분이나 늦고 말았다. 상황마다 문자를 주었더니 흔히 있는 일이라는 듯 기다려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고마워해야 할지 미안해해야 할지 아니면 당연한 일인지...


본에서 1시간 늦게 출발한 딸과 쾰른에서 만났다. 함께 기차에 올라 캐나다에서 오신 분과 기차 타기 어려움을 연신 불평했다. 아들과 딸은 익숙한 일이라며 웃어넘긴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아들 딸과 함께 가는 길이라 독일어를 몰라도, 노선이 바뀌어도 괜찮다. 하지만 나 혼자 딸 집에서 아들 집으로 갈 때 또 이런 일이 터진 것이다.

독일어도 모르고 영어 조차 모르는 내가 무슨 배짱으로 그 먼 거리를 혼자 가겠다고 나선 겐지 용기가 가상했다.

퀠른까지는 그런대로 순조롭게 잘 갔다. 퀠른 역에서 다음 기차가 와 있길래 얼른 올라 타 출발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방송이 나오더니 사람들이 똑같은 탄성을 내며 모두 내린다. 그때 그 상황인 듯해서 따라 내렸다.

하지만 기차에 다시 올라타는 사람도 있었다. 기차 옆에 있는 글씨를 보니 내가 타야 할 기차 번호가 맞다. 시간이 늦는다는 건지 아니면 종착역이 바뀌었다는 건지 알 수 없어 다시 올라탔다. 시간이 지났는데 출발하지 않는다. 연신 독일어 방송만 나온다. 그 와중에 다시 내리는 사람, 허겁지겁 올라타는 사람들이 있다. 초조한 마음으로 앉아 있는데 역무원이 손짓을 하며 다가온다. 뭔가 내려야 할 분위기다.

기차 안에 있던 사람들도 눈치를 보며 하나 둘 내린다. 모두 독일인처럼 보였지만 나처럼 독일어를 할 줄 모르는 외국인이었나 보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독일어로 연이어 방송을 한다. 정광판 어디를 보아도 내가 가야 할 기차를 가리키는 곳은 없다. 갑자기 혼자라는 것이 느껴지며 살짝 긴장이 된다. 계단을 내려가니 아래층 정광판에 기차 상황을 알리는 글이 떴다. '아헨으로 가는 다음 기차는 7라인인데 그것도 예정시간보다 15분이나 늦을 것이다'라는 나름대로 해석을 했다.

하지만 출발시간까지는 30분 이상 기다려야 하기에 퀠른 역을 구경하기로 했다. 아이들과 함께 다닐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다시 돌아가야 할 기차 라인을 확인하며 넓은 퀠른 역을 누비고 다녔다.

안내창구엔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기차 하나가 빠졌으니 다음 기차로 표를 바꾸거나 환불하는 사람들 줄 일거라고 한다. 다행히 나는 한 달 자유 승차권을 끊었기에 정해진 기차 시간과는 관계가 없다.


이제 조금씩 독일 교통에 대해 익숙해지는 것 같지만 아직도 기차 앱을 보지 않고는, 자유 승차권 없이는 기차 타는 것이 두렵다.

기차가 독일 교통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자주 점검을 한다는데 잦은 고장과 사고를 이해하기 어렵다. 익숙해지기 힘든 상황이 구석구석 도사리고 있다. 정신 바짝 챙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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