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부터 부슬부슬 비가 내립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가을 잎을 어루만지듯 빗소리가 부드럽습니다. 노란 가을 잎은 그 손길이 부끄러운지 파르르 떨더니 저만치 날아갑니다.
잎들이 무성할 땐 몰랐던 그 너머의 세계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시멘트 기둥이 두 개가 보입니다. 둥근 아치형 다리입니다. 그리로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만 들렸는데 이따금 바쁘게 달려가는 빨간 기차도 보입니다. 이른 아침이니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이 많겠지요. 무거운 가방도 모자라 두꺼운 책을 손에 들고 읽고 또 읽으며 가는 학생들도 있을 테고요. 누군가는 사랑하는 애인을 만나러 가는 길이겠지요.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사연을 담은 채 기다란 물체에 몸을 맡긴 것 이겠지요. 내 시야에서 사라져 간 수많은 사람들의 사연을 꼬집어 보는 것도 재미납니다. 창밖 나뭇잎 끝에 매달린 빗방울이 반짝이며 윙크를 합니다. 창문을 열어야 했습니다. 상큼한 아침 공기가 방안에 퍼집니다. 밤새 쌓였던 퀴퀴한 냄새를 깨끗이 청소해 줍니다.
나뭇잎 하나 포르르 날아와 창가를 기웃거립니다. 누가 보낸 가을 편지일까요. 촉촉이 젖은걸 보니 가을비를 잔뜩 먹은 듯합니다. 제각기 흩어지는 삶이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다른 잎들처럼 나무 밑동에 떨어지지 않은 그 나뭇잎은 내게 찾아온 가을 편지입니다. 휴지로 닦고 책갈피 속에 곱게 들어가 이틀을 잠재우고 나면 겨우내 내 가슴에 많은 사연을 속삭여 줄 것입니다.
자꾸만 먼 나라를 기웃거리는 내게 많은 사람들은 이야기를 만들어 냅니다. 급기야 남편과의 불화설까지 만들어 냅니다. 나름 진한 고통을 겪으며 내린 결정인데 타인의 눈엔 갑작스럽게 느껴졌나 봅니다. 그들의 오해를 듣다가 내 결정이 잘못된 것일까 주춤거릴 즈음 나뭇잎이 날아들어 나를 깨우쳐 줍니다. 모두가 똑같은 곳으로 갈 수 없다는 것을. 모두 같은 곳에 모여 살아야만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래서 비 오는 아침이 좋습니다. 넓은 창밖 세상을 마음껏 상상하며 촉촉한 미소를 흘릴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