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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군 Nov 19. 2019

프롤로그_소용 있어 키워진 자식들에게

 "차라리 나가서 혼자 살았으면 좋겠다."

아버지의 슬픔 섞인 화가 담긴 고백이었습니다. 실은 도와달라는 요청이었을까요.


가족 중 누구도 누군가를 보살필 마음 한구석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가족 안에서 의지한다는 건 아주 낯선 일이었어요. 제가 여섯 살 무렵 떠나간 남동생에 이어 어머니는 마음의 병을 얻었습니다. 조현병이 모녀지간을 갈라놓을지 몰랐던 저는 한동안 여러 친척집에 맡겨졌고 변화가 낯설었습니다.


예절교육에 엄격했던 아버지는 저에게 어려운 존재였고 집 안의 적막은 티브이 소리만이 메울 뿐이었죠. 말을 걸어도 답하지 않고 명절이면 친척들에게 나의 부족함을 이르는 아버지가 절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하는 시간은 좋았지만 더 이상 병원에서 지내지 않으면 곤란한 상황이 되었어요. 간절하게 이 집에서 나가고 싶었습니다. 기대를 저버리고 누군가의 보호자가 아닌 독립된 한 사람으로 생활하길 간절히 원했어요.


하지만 아버지 또한 뇌전증으로  병상에 누우셨습니다. 아버지는 친척분과 입을 모아 제게 말씀하셨어요.

"내가 언제 쓰러질지 모르니 같이 지내면서 간호하고 밥도 하고 그러렴."


전 끝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혼자 생활할 능력이 충분했고 되려 의사의 조언을 새겨듣지 않고 음주를 하셨어요.


겉보기에 아프지 않다는 이유로, 자녀라는 이유로 효도를 강요받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가족을 집어삼킨 불행 속에서 비관하지 않고 살아가게 꼭 붙들어 준 건 저를 믿고 존중해주는 사람, 결이 비슷한 책 한 권이었어요.


치매환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는 알려주었지만 그를 부모로 둔 자식의 마음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몰랐어요. 시간이 지나 아픈 가족이 있더라도 꿈을 향해 가도 좋다고.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전자를 택해도 좋다고. 누군가 저에게 알려줬어요.


그러면 안 되는 줄 알았기에 오랜 시간 눈치 보고 자책해왔어요.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

제가 좋아하는 말입니다. 집 안에서 쉴 곳이 없다면 우리 전략상 잠깐 휴전하자고요. 그동안 집 안이 아닌 밖에 우선순위를 두는 거예요. 효도는 부모뿐만 아니라 나를 위해서도 하는 겁니다. 해야 된다는 생각에 끌려 지치지 말고 하기 싫으면 마음이 변하기 전까지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할 수 있는 만큼 조금씩 천천히 하세요. 먼저 나를 위해서. 그리고 부모님을 위해서.


착한 딸, 아들, 효도에 염증을 느끼는 자녀를 위한 책을 쓰려고 합니다. 당장이라도 집과 세상에서 나가고 싶은 그들에게 이 책이 답이 되진 않겠지만 도와달라는 외침에 대꾸만이라도 되고 싶은 마음에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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