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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내게 오신 예수님

by 연후 할아버지

2. 내게 오신 예수님


내 나이가 30대 초반이었으니 이것도 상당히 오래된 옛날 일이다. <타이완>의 <가오슝>항에 입항했는데, 그날따라 꿈자리가 뒤숭숭해 성당을 찾아갔다.


그 도시의 변두리, 작은 야산의 중턱에 위치해 있었다. 십자가 모양으로 보면 <프란시스코회>는 아니었지만, 바로 옆에 학교가 여러 개 오래된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예수회>, <베네딕토>, <갈멜> 등의 수도회 소속 성당인 것처럼 보였다.


성당 마당에 성모상이 서 계셨는데, 서태후 비슷한 치장을 한 모습이셨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복 차림의 성모님을 모신 곳이 몇 군데 있으므로 중국 복장을 하셨다고 탓할 수는 없지만, 내게는 낯설고 이상하게 느껴졌다.

이왕 왔는데 인사를 드리지 않을 수는 없어서 성호를 긋고 묵주기도를 올리고 있는데, 마당을 쓸고 계신 노인 한 분이 보였다. 내 곁으로 점점 가까이 다가오시기에 자세히 살펴봤더니 얼굴은 온화한 표정으로 가득하고 피부는 티 한 점 없이 깨끗한 동양인이셨다.


그분께 물어보고 하소연하면 궁금증도 해소되고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그곳으로 온 사정부터 열심히 설명했다. 손발 짓을 섞어 가며 서툰 영어로 시작했는데, 미소를 지으시며 한국말로 하란다. 그래서 교포인 줄 알았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신상에 관한 상담으로 변해서 마치 고해성사를 보듯 긴 시간을 함께했다. 그분께서는 주로 듣기만 하시고 특별한 말씀은 없으셨지만, ‘잘하고 있고 모두 잘 해결될 테니 너무 염려하지는 마라.’고 하셨던 것 같다.


그분과 헤어져 성당 안으로 들어갔더니, 예수님께서도 수염을 늘어뜨린 관운장과 비슷한 모습이셨다. 제대 앞에는 향을 피우는 화로가 있었는데, 몇 개는 아직도 타면서 특유의 냄새를 풍기고 있어서 내가 도교 사원이나 절로 잘못 오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제대 뒤 벽에 걸려 있는 십자가를 확인해 보기도 했다.



조금 더 앉아 있다가 문득 시계를 보니 귀선할 시간이 가까워서 깜짝 놀라 하던 기도도 미처 끝내지 못한 채 성전에서 나왔다. 아무리 급하더라도 조금 전에 만났던 노인께 인사는 하고 가야 할 것 같아서 두리번거려 봤지만 종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성당 사무실로 가서 물어봤다. 그런데 그분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조금 전까지 마당을 쓸고 계셨고 한국말을 잘하는 교포였다고 설명해 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자원봉사자나 그 성당의 교우들 중에도 그런 분은 없단다.


야곱이 그분과 밤새워 씨름을 하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었다더니, 내가 만났던 그분은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이셨다는 사실을 순간적으로 깨달았다.


나는 야곱처럼 성경에 나오거나 대단한 사람이 아닌데 큰 축복과 은총을 내려 주신 것이다. 의사소통도 제대로 되지 않는 외국에서 혼자 성당을 찾아다니는 내 모습이 애처로워 보였기 때문이었을까?


그 후에는 살다가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포근하고 자상하시던 그분을 생각한다. 그러나 꿈에서도 나타나지 않으셔서 이제는 기억마저 희미해져 버렸다.


다시 한번만 더 만나면 할 말도 많고 따질 것도 있는데, 이제는 마지막 심판 때를 재회의 날로 알고 기다려 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언젠가 그날이 오거나 그곳으로 가면 다시 만날 수는 있으리라 믿는다. 그게 내가 신앙을 갖고 기도하는 목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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