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배운 교과서에서는, 불국사, 석굴암, 해인사 등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불교 사적이라고 강조해서 정말로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동남아 여러 불교국의 사찰로 가 보면 금방 의심이 생긴다.
아름답다는 평가와 주장은 주관적인 것이라 비판할 일이 못되지만, 규모면에서는 비교할 수 없게 큰 사찰들과 그 속의 대단한 돌부처들을 비롯한 수많은 불교 유물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불교에 대해 약간의 호의를 갖기 시작할 무렵에, 나는 엉뚱한 사건을 하나 만났다. 그것은 내가 2기사를 마치고 휴가 나왔을 때의 일이니 1970년대 중후반쯤이었는데, 점심 식사 후 차를 한잔 하며 아내와 그 간에 있었던 얘기를 나누다가 이상한 말을 들었던 것이다.
“이번 배에서는 태풍을 만나 고생 좀 했네.”
“그게 언제쯤이었어요?”
“서너 달 됐을 걸, 왜?”
그런데 아내가 얼굴을 붉히며 표정이 요상하게 변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특별한 연유가 있었던 것처럼 보여서 다시 물어봤더니, 그 무렵에 어떤 스님의 권유로 굿을 했단다.
평소 불교와 무당은 비슷하다고 착각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관련이 없고, 오히려 오해를 받을까 봐 서로 피한다고 알고 있었다. 게다가 하느님을 믿는 내 아내가 굿을 했다는 건 믿어지지 않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꼬치꼬치 캐물어 봤더니 자초지종을 고백했다.
햇볕이 좋아 이불 빨래를 한 후 뜰에 널고 있는데, 장삼을 입고 목탁을 두드리는 늙은 중이 지나가다가 우리 집을 바라보면서 큰 소리로 “허 참, 아깝다. 대들보가 무너지는구나.” 하기에 놀라서 뛰어나가 “스님! 방금 하신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하고 물었더니, “이 집 대주가 물과 관련된 직업을 가졌소?”라고 되묻더란다.
고승들은 도가 높아서 길흉화복을 미리 안다는 말은 들었지만, 물이란 말까지 나오니 남편이 선원이라고 이실직고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아깝다. 자기 잘못도 아닌데.”라는 말만 내뱉고는 가던 길을 계속 가 버렸단다.
보내고 나서 생각하니 이건 보통일이 아니었다. “그런 말을 할 정도면 대처 방법도 있을 텐데 묻기라도 해 둘 걸.” 하며 후회하고 있는데, 그 스님이 원래 왔던 길로 돌아가는 게 보여서, 다시 뛰어가 물어보니 자기가 소개해 주는 무당에게 굿을 하라고 하더란다.
남편이 죽고 청상과부가 된다는 협박에는 4대째 내려온 가톨릭 신앙도 맥을 추지 못했다. 사기꾼 놈들이 순진한 새댁을 꼬셔서 거의 내 한 달 월급을 갈취해 간 것이다.
장소를 물어서 찾아갔더니 연산동 뒷산 중턱에 자리 잡은 작은 암자였다. 주지라는 늙은 중에게 다짜고짜 내 돈 내놓으라고 떼를 써 봤지만, 들은 척도 않았고 조금 뒤에는 어디선가 나타난 왈패들에게 떠밀려 쫓겨나고 말았다.
며칠을 숨어서 지켜보니 왈패들이 오는 시간은 아침과 저녁뿐이고 낮에는 늙은이 혼자만 암자를 지키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내려와 영도다리 밑의 선구점으로 가서 선박에서 쓰는 구명정 도끼를 한 개 샀다.
(그게 그때까지 내가 봤던 도끼 중에서는 가장 험상궂게 생긴 놈이었는데, 당시에 유행했던, <대망>이라는 일본 역사소설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지진으로 흉흉해진 민심을 달래기 위해 황금 부처의 목을 베는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걸 가방에 넣고 다시 암자로 찾아갔다.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도끼를 꺼내 노인을 위협해 봤지만, 별 미친놈을 본다는 듯 혀를 차며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정말로 사람을 상하게 할 수는 없는 일이라, 앞에 모셔 놓은 부처의 머리라도 부수어 버리려고 방향을 틀었더니 그때서야 그는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아가야, 조심해라. 그게 돈이 얼마짜린데.”
“이게 당신 머리보다 비싼 거요?”
“나는 곧 세상을 떠날 나이라 조금 일찍 죽는다고 달라질 게 별로 없다만, 그건 오래 보관되어야 할 물건이다. 그런데 얼마라고 했느냐? 손해 봤다는 금액이.”
“백만 원이요.”
“별 것도 아닌 액수구먼. 젊은 놈이 그깟 돈에 목숨을 거나? 옜다. 가져가고 앞으로는 조심하며 살이라.”
별 것도 아니긴? 그동안 내 일당까지 포함시켜 부른 금액인데. 나는 땡중에게서 받은 돈을 가방에 넣고 휘파람을 불며 산을 내려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가 지적했던 대로 무서움을 모르던 젊은 날의 객기였다.
(지금은 물론 그 당시처럼 막무가내로 행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려움을 이겨 내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고 하는 종교는 종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