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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 네시 Dec 04. 2022

서비스직에 종사한다는 것.

사람을 좋아하는데, 가끔 사람이 무섭다.

어렵게 펜을 들었다. 거의 반년 만인 듯 하다. 그동안 생각이 많았지만 차분히 앉아 글을 쓸 마음의 여유가 부족했다. 그러다 보니 마음 한구석에 박힌 썩은 부위 한 곳이 점점 커져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이제 좀 털어내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도 배설을 해내야 한다고 누가 말했다. 마음에 쌓인 쓰레기들을 배출해야 아프지 않을거라고 한다. 물론 막무가내식 쌍ㅇ이 아닌, 어느정도 정제된 생각의 배출이 내겐 더 좋겠다. 브런치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보는 공개석상이니까. (욕은 집에서 혼자 하는중)


11년차 은행원으로 근무중이다. 고객을 응대하는 민원 업무를 계속 하다보니 점점 마음의 병이 커져가는 느낌이다. 매일 스트레스 받는 일만 있던 것은 분명 아니다. 보람을 느낄 때도 많았고, 심지어 즐거운(?) 날도 있었다. 물론 가끔이지만. (좋았던 에피소드를 글로 쓰기도 했고)


사람에게 받는 스트레스는 정말 풀기가 어렵다. 어딜 가도 사람이 있고 세상의 거의 모든 일은 사람과 연결이 돼있다. 무얼 하든 사람에 대한 생각(반응)을 하지 않을 수 없기에 머릿속 곳곳에 박힌 부정적인 흔적을 지우기가 쉽지 않다. 마치, 간헐적 단식을 하지 않으면 속을 비워내기 어렵듯이?


여행, 수면, 술(지금은 먹지 않는다), 음식, 게임, 문화생활 등으로 아픔을 잠시 망각해왔지만 그건 그때 잠시뿐, 근본적인 치유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럼 어떻게 해야 사람에게 받는 스트레스를 극복할 수 있을까?


답을 기대하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미리 사과를 드리고 싶다. 답을 찾지 못해 이 글을 쓰게 됐고, 애타게 찾아 헤매는 중이다. 짧은 생각으로 얻은 결론 중 하나는 슬프게도, 그냥 받아들이는 것.


타인을 내가 바꿀 수는 없다. 그것도 내가 남의 생각에 영향을 줄 만큼 영향력 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그냥 상대방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수 밖에 없다. 단순히 이해하는 것만으로 현실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땐 어떡하나?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일이 필요하다. 내가 처한 경제적 상황, 나의 성향, 능력 등을 파악해서 최선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


열받는다고 당장 때려친다고 회사를 박차고 나온다면, 당장 다음달부터 대출이자는 어떻게 감당하나?

내가 이력서를 제출하면 다음달부터 바로 나오시라고 받아줄만한 회사는 많이 있나?

그 회사가 내게 제공해줄 혜택이 현재 회사와 비교할때 괜찮은 수준인가?

이도저도 안되면 현재 위기상황을 극복할 만한 능력이 내게 있는가? 극복 가능한데 회피하는 것은 아닌가?


분명 나 자신에게 답이 있는데 찾기가 너무 어렵다. 아마도, 이번 위기를 넘겼다 하더라도 비슷한 위기가 또 찾아올 것 같아 속이 갑갑해서 더욱 그렇게 느끼는 걸수도 있겠다. 애초에 아무 생각없이 은행에 들어온 것 자체가 잘못된 선택일 수 있는데 억지로 여기까지 버텨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 해온 것은 아닐까.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게 은행업무는 각종 분야의 일을 한데 모아둔 것처럼 많은 자질을 요구한다. 분석력, 관찰력, 사회성, 심리분석, 영업력, 화술, 융통성, 뻔뻔함(?), 멀티태스킹, 심지어 창의성(이게 제일 어이없다)까지 당당히 요구하는 곳이다.


거기에다 사회적으로 냉소적인 시선까지 받는 직종이다 보니(물론 이해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도 많다) 보이지 않는 부담감까지 있다. 실제 처우는 생각보다 좋지도 않은데 말이다.


아마 배부른 소리라며 혀를 차고 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거 다 감안하더라도, 최소한 서비스업에 종사해본 사람이라면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오늘의 푸념은 사람에 대한 애정과 두려움이 뒤엉켜있는 내 머릿속 고민을 털어놓는 과정에서 생긴 결과물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내 처지에 대한 푸념.


이렇게라도 써보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

그나저나, 내일은 또 어떤 사람이 찾아올까?

흠..



*배경사진 출처

 https://unsplash.com/photos/aielvGxZB0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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