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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 네시 May 29. 2020

이 손 놓지 말자, 우리

대한민국 애처가의 일상

 생각 외로 눈이 잔뜩 온 다음날 출근길이 험하지는 않았다. 어젠 정말 위험천만한 길 투성이었는데 오늘은 예와 같이 부드러운 핸들링으로 차를 끌고 회사에 출근했다. 최근에 하는 일이 많아져서인지, 자기 전에 꼬박꼬박 글을 쓰고 자야 해서 그런지, 내가 시간을 제대로 쓰지 못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잠 잘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 탓에 요즘 아침 출근길은 매우 몸이 무겁다. 그나마 매일 출근길 친구가 되어주는 유튜브 덕에 심심하지 않게, 때로는 유익한 정보를 얻으며 다니고 있다.


 일단 출근하고 나면 요즘같이 추운 때에는 무조건 난로를 켠다. 중앙난방식으로 돼있는 지점 환경 상 실내가 더워지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개인 자리에 배치된 온열기를 켰는데.. 이게 웬걸? 팍! 하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었고 퓨즈가 나가버리는 게 아닌가. 그 소동에 내 자리 뿐만 아니라 옆 자리 직원들의 히터까지 작동하지 않는 불상사가 발생을 했다. 하필이면 요근래 들어 가장 추운 날에.. 이때 느낌이 뭔가 쎄했다. 액땜인가 싶기도 하고.


 축적된 에너지를 견디지 못한 멀티탭이 과부하가 걸렸던 것인데, 이렇게 피곤한 몸을 끌고 다니다가 나도 팍! 하고 쓰러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잠시 머릿속을 스쳤다. 당분간은 계속 바쁠텐데.. 이 시기를 잘 견뎌야 할텐데, 조금만 더 버텨보자. 우선 벌여놓은 것들이 2월 중에는 어느정도 마무리가 되니 말이다. 뭐 이렇게 말하면 엄청나게 뭔가 많은 일을 하는 것 같지만, 들여다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부동산 강의 과제, 글쓰기, 끝이다. 물론 매일 투입되는 시간이 대략 2시간 가량 되다 보니, 바쁜 것은 맞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효율적으로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2월엔 회사일도 바쁘니 우선 버텨보자.


 하루가 짧게 느껴질 정도로 요즘엔 정신없이 시간이 가는데, 오늘 또한 그랬다. 아침부터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업무를 시작했고, 내부적으로 잡음이 들릴만한 이슈도 있었다. 원인은 외부에도, 내부에도 공존했지만 우선 내부적인 문제부터 해결해야 이 위기를 타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이가 한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 가깝게 지내는 과장님 한분이 계신데, 그 분과는 말이 잘 통해서 지점 내에 이슈가 있을 때 서로 생각을 공유하곤 한다. 기본 성향이 좀 차이가 있다보니 의견 차가 없을 수 없지만,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나 문제점 인식 등은 매우 비슷해서 대화를 하고 나면 생각이 좀 정리가 되는 기분이다. 가치관이 비슷하거나,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과 같이 일한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점점 깊이 느끼는 중이다.


 해결이 잘 안되던 일을 하나 마무리하고, 마침 손님이 계시지 않을 타이밍이라 틈을 노려 화장실로 직행했다. 요즘 계속 바빠서 화장실 갈 타이밍이 잘 없어서, 틈 나면 다녀오려고 한다. 이것도 참 이 일의 고충 중 하나다. 뭐, 어쩔 수 없긴 하다. 아무튼, 오전의 절반을 보내고 화장실에서 잠깐의 휴식을 즐기는데, 그때 갑자기 뇌리를 스치는 생각. 2월 18일. 내 와이프의 생일이다.


........


'자네, 뭐하는 인간인가? 맨날 글쓰고 공부한다고 나대기만 하지, 와이프 생일도 까먹나?'

내 머릿속에서는 또다른 자아가 나를 윽박지르고 있었고, 내 손가락은 재빠르게 메시지를 타이핑하고 있었다.

"생일 축하해 자기~~~"

고맙게도 와이프는 나의 늦어도 한참 늦은 축하메시지에 화답한다.

"~~~ 사랑해줘서 고맙습니다."

 나는 축하한다고만 했는데, 내 속에 있는 사랑까지 알아서 받아주는 고마운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의 생일을 챙기지 못했다. 휴...


 기껏 자기계발한다고 밀어줬더니, 생일도 안챙겨주는 남편이 된 것 같아 미안함이 가득했다. 일하는 하루종일 마음이 무거웠다. 물론, 최근 우리 부부는 기념일을 거하게 챙기지 않고 간소하게 맛있는 식사 한끼 하고 선물도 생략하는 식으로 지내왔기에 부담될 건 없었다. 그럼에도, 기억하지 못하고 축하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건 의미가 달랐다. 퇴근 후 외식하기 위해 만난 와이프는 날 보며 환하게 웃어줬지만 난 그런 그녀를 보며 환하게 웃지 못했다. 미래를 위해 열심히 사는 건 좋은데, 감사일기 쓰는 것도 좋은데, 주변을 놓치진 말았으면 좋겠다. 생각 정리를 좀 해야겠다. 물론 이번달까지만 좀 버티고..


 +이 글을 통해 다시 한번 말하고 싶다.


 나에게 와줘서 감사합니다. 세상을 떠나는 그날까지 함께 합시다.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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