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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 네시 Jul 15. 2020

약속을 지키지 않던 사람

 2007년의 이야기. 벌써 13년이 지났다.


 그때의 나는 육군 병장으로 복역중이었다. 이제 몇달 뒤면 자유의 몸이 된다는 생각과 한창 건강해진 몸상태 덕분에 에너지가 충만해있었다. 정확히 몇일 간, 어떤 목적으로 휴가를 나왔는진 모르겠지만 휴가를 나왔고 오랜만의 외출에 나는 매우 들떠있었다. 아마 휴가를 다녀와도 이제 복귀가 두렵지 않을 정도의 짬밥이 돼서였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땐 그랬었다. 


 다른 일정들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이 글의 주제가 될 핵심 사건만 기억이 난다. 지금까지도 나의 건강을 위협하는 핵심적인 부상을 바로 이때 당했다. 나는 농구를 좋아하는 학생이었고, 휴가를 나와서도 열심히 농구를 했고, 크게 발목을 접질렸다. 부상을 당하는 순간 통증이 너무 커서 숨을 잘 쉬지 못할 정도였다. 그리고 부축은 커녕 사람에게 업혀야만 이동을 할 수 있는 상태였고, 1년 선배가 나를 업고 인근 병원으로 옮겨줬다. 주말이라 그랬는지, 해가 뉘엿뉘엿한 저녁 시간대라 그랬는지 병원 진료는 끝이 나있었지만 나름 큰 병원이라 응급진료를 봐줬다. X-ray도 찍었는데,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단다. 반깁스를 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어떻게 왔는지는 기억에 없다. 다만 내가 왜 그랬을까 자책을 할 뿐이었다.


 그냥 운동하다 다친 이야기일 뿐인데, 13년이 지난 지금 왜 이야기를 꺼내는지 궁금할 것이다. 제목과도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더 궁금할 것이고. 내가 왜 이 이야기를 지금껏 가슴에 품고 있었는지,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나는 군대를 먼저 전역했던 선임과 그날 저녁 식사를 하기로 선약이 돼있었다. 이제는 그냥 형일 뿐인, 군대에서의 추억이 쌓인 형과 만나 술 한 잔 기울이기로 했었다. 그런데, 내가 그 약속을 깼다. 단지 젊은 혈기에 농구하는 재미에 빠져서, 있지도 않은 아버지와의 약속을 억지로 지어내어 '갑자기 못가게 됐다'는 말도 안되는 사과를 하고서 말이다. 그렇게 한 사람과의 인연을 깨는 일을 저지르고 난 뒤 불과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그런 불상사를 겪은 것이다. 그렇다. 당해도 싼 놈이었다. 


 실제로 다치고 난 뒤에도 스스로 자책을 많이 했다. 사실, 약속을 어긴 것과 부상을 당한 것은 전혀 상관관계가 없다. 인과관계는 더더욱 성립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 때 약속을 어기지 않고, 농구를 그만 두고 그 형과 만남을 가졌더라면, 소중한 인연도 지키고(물론 인연이 어떻게 지속됐을지는 알 수 없지만) 내 건강도 지켰을 것이다(건강도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지만... 허허). 


 그렇게 나는 한때 과다 분비되었던 아드레날린에 취해 타인의 마음과 나의 몸을 상하게 한 바보였다. 






 이제는 사람과의 약속을 함부로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작은 약속이라도 하고 난 뒤에는 계속 지키려고 하며, 애초에 못 지킬 약속은 최대한 정중하게 거절한다. 혹은 빠져나갈 여지라도 남겨둔다. 성격상 단호박 스타일은 아니라서, 그 정도까지라도 개선한 것이 스스로 대견할 만큼 나는 무른 사람이었다. 무르다는 건, 타인의 부탁에 약하고, 자기 주장이 약했다는 걸 뜻한다. 최근 들어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하다 보니, 거절에 대한 내성도 많이 생겼고, 나를 중심으로 하는 생활의 중요성을 많이 실감한 후로는 불필요한 약속을 잘 안하게 된다.


 그렇다고 모든 약속을 차단하는 것은 또 옳지 않다고 본다. 그래야 할 때도 있겠지만(가령, 건강이 극도로 안좋거나, 중요한 대소사가 있거나) 일반적인 경우라면 필요한 최소한의 약속, 모임, 인간관계를 위한 노력은 필요하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고, 혼자 사는 데에는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자기발견을 위한 글도 써보면서 '나라는 사람은 어떤 성향인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는데, 내가 생각보다 '개인주의적'이고 '내성적'인 면이 있으며, '예민한 성격'이라는 걸 깨달았다. 약간 충격적일 정도로 내가 알던 나와 달랐다. 


 그게 결코 나쁘진 않았다. 그냥, 반가웠다. 

"아, 그래서 내가 그랬구나" 라는 걸 깨닫게 되는 시간들이었다. 



 이제는 약속의 무게를 어느 정도 실감했고, 지킬 수 있는 약속을 잘 맺고 해내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고 믿는다. 너무 식상한 말이지만, 이렇게 계속 조금씩 성장해가는 재미가 인생을 사는 재미 아닐까 싶다. 참 재밌는 시간들이긴 한데, 근 몇 달동안(2월부터였으니, 중간에 쉬었던 기간 빼고 만으로 6개월 정도 될 듯) 매일같이 콘텐츠를 생산하는 활동을 해서 그런지 이제는 과부하가 걸린 듯 하다. 


 그래서, 정말 아쉽지만 잠시 쉬어가려고 한다. 글쓰기도, 유튜브도(이미 쉬고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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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분간 잘 먹고 잘 자기, 운동(걷기, 기초근력), 독서에 집중하며 지낼 계획이다. 그렇게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다시 돌아올 자기계발의 세계를 상상하니, 벌써 미소가 지어진다(이 글을 아내가 싫어합니....까?). 


 고생 많았다, 행춤아. 너에게 좋아요와 구독을 꾹 눌러준 구독자분들과, 별 볼일 없는 너의 글을 읽어준 분들께 감사인사를 드리자.


행복한춤쟁이의 브런치에 와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시간이 헛되지 않도록 글을 잘 쓰고 싶어졌습니다. 물론, 매번 만족스럽진 못할 것입니다. 제 스스로도 그렇고, 여러분이 보시기에도 그렇구요. 그래도, 꾸준히 써나가겠습니다. 가끔 알람이 뜨면, 혹은 포털에서 제 이름을 보시면 반갑게 클릭 한 번 해주시길 바랍니다. 댓글은 혹시나 시간이 허락하고 여유가 되신다면 남겨주세요. 제게는 한 마디의 말도 큰 울림이 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곧 돌아올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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