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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 네시 Jul 07. 2020

어느 날, 내가 사라진다면..

상상하기 싫지만, 진짜 그런다면..

 웬 끔찍한 소리를 하는 거냐고 이 글을 읽으러 온 사람들이 있다면, 죄송하다. 어그로는 아니지만 진지하게 생각해볼 문제라 글로 적게 됐다. 즐겨듣는 유튜브 채널 중 J방송국의 '유퀴즈 온더 블럭'(이하 유퀴즈)이라는 신개념 토크&퀴즈 예능이 있다. TV를 잘 안보다 보니, 예능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 영상들을 가끔 유튜브로 접하는데 이 프로그램, 매력 있다. 


 유느님이라 불리는 국민 MC 유재석과 그의 단짝 만년 유망주 MC 조세호가 만나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다소 어설프지만 간간히 큰 웃음과 좋은 인터뷰를 이끌어내는 잠재력을 가진 작은 자기 조세호님을 보면 맨날 형에게 구박받던(?) 내가 생각이 나 좀 짠하기도 하다. 어쨌든 나보다는 잘하시니, 즐겁게 보고 있다. 유재석님이야 누구나 인정하는 만능 MC니, 덧붙일 말은 없다.


 인기 있는 프로그램에는 보통 출연진들에게 애칭을 붙인다. 2 MC 체제인 이 두 명에게 각각 '큰 자기', '작은 자기'란 호칭을 쓰고, 이 프로그램의 애청자들은 그냥 '자기님'이라고 부른다. 원래는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즉석에서 지나가는 '자기님'들을 섭외해서 게릴라 토크쇼를 진행한 뒤, 마지막엔 퀴즈를 내고 맞춘다. 퀴즈를 맞춘 '자기님'은 상금 1백만원을 현찰로 받고, 틀린 '자기님'은 아차상 격으로 뽑기를 뽑아 경품을 타간다. 이 경품은 복불복이라, 정말 쓰잘데기 없는(?) 물건부터 백만원을 호가하는 고급 전자제품까지 있다. 내가 본 가장 비싼 경품은 무려 '건조기'였다. ㄷㄷㄷ...


 잡설이 길었는데, 이런 자기님들과 즉석 토크, 살아있는 토크 듣는 재미가 쏠쏠해서 한번 보다 보면 계속 보게 되는 매력이 있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길거리를 돌아다니진 못하고, 섭외를 한 자기님들 또는 유명인사들을 스튜디오로 초빙하거나 정해진 장소에서 만나 토크&퀴즈를 진행한다. 그렇게 진행하는 것도 꽤 재미가 있다. 즉석에서 만나는 건 그런데로, 준비된 사람들과 만나는 건 또 그런데로 맛이 있었다. 


 오늘 퇴근길에 만나게 된 '자기님'은 응급의학과 전문의로 한 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사람이었다. 등장부터 범상치 않았는데, 마치 이 자리를 기다려왔다는 듯이 본인의 에피소드를 술술 풀어냈다. 한 두번 토크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작은 자기(조세호님)와 깊은 소통(?)을 하는 자기님을 본 적이 별로 없는데, 이 분은 뭔가 잘 통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더 정감이 갔는지도 모르겠다. 


 한참 재미나게 이야기를 이어가다, 응급실에 오는 환자들 이야기를 하던 중 이런 사연을 소개했다. 


"여섯 살짜리 여자아이가 감기약을 먹고 가래 소리가 안좋으니까, 아이 아빠가 출근 전에 아이를 데리고 응급실에 오신거에요. 병원에 도착해서 아이를 돌아보며 'OO아 다 왔다.' 라고 말하는데, 이미 아이의 숨이 멎어있었던 거죠."


 그 말을 듣는 나의 가슴이 순간 먹먹해졌다. 이야기를 이어가던 자기님도 그 때 그 아이 아버지의 울음소리가 아직도 생각이 난다고 하는 걸 보면, 그 아버지의 슬픔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도 가지 않을 정도다. 가까운 가족을 잃는 것 자체만으로도 슬픈데, 자기 자식을, 그것도 정말 허무하게 보낸 그 심정을, 감히 누가 잘 공감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난 일말의 공감을 느끼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사람이 살아있고, 사망하는 그 찰나는 종이 한 장 차이인 것 같아요."


 덤덤하게 말하는 자기님의 말에, 숱한 응급환자들을 맞이하고 또 몇몇 분들을 떠나보내면서 스스로를 다독였을 그의 말에, 지금 내가 살아있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그 분처럼 오늘 해야 할 일과 지금 내 옆 사람과 할 수 있는 일을 조금 더 해야겠다고 느꼈다.


 자기계발을 하겠다고 독서를 시작한 후로, 나의 여가시간 대부분은 나홀로(옆에 아내가 있을 때도 많지만) 집중하는 시간들이었다. 자기계발의 중요성과 미래를 위한 현재의 고통을 감내하는 시간이 필요함도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 매몰되어 이 시간이 아니면 다시는 하지 못할 경험들을 너무 챙기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게 가장 큰 어려움이다. 쉽지 않으니, 모두가 잘 해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더 해보고 싶은 것이리라. 


 이 글을 쓰며 다짐해본다. 작심삼일이어도 좋다. 자기계발을 포기하진 않겠지만, 적어도 내 아내가 좋아하는 취미를 같이 공유하는 시간을 지금보다 더 많이 갖겠다고. 희생을 강요하는 남편이 되진 않겠다고. 


'지금'은 흘러가 버리면 다시는 잡을 수 없는 신의 선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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