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멍'을 아시나요?

그렇게 '불멍'은 나에게 훅 들어왔다.

by 오후 네시

"아이고, 또 두통이 도지네.."


영업시간이 끝나갈 때가 되자, 가슴 한 켠이 답답해진다. 목은 뻣뻣하고 어깨는 조금 쑤시며, 한 쪽 머리가 살짝 쑤시기 시작한다. 매일 그런 건 아니지만, 이 시간 때쯤 되면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곤 한다. 하루를 무사히 보냈다는 신호기도 해서 후련함과 동시에 피곤함이 밀려온다. 생각 같아서는 지점 셔터를 내리기 전에 밖에 좀 나가서 바람 쐬고 오고 싶지만, 업종의 특성상 그게 쉽지가 않다. 고객이 한 명만 객장에 앉아있어도 자리를 비우기가 눈치 보이는 우리네 인생이, 그렇다.


한창 바쁘던 시절에는 밀린 업무량에 대한 스트레스와 계속 들어오는 손님에 대한 스트레스가 겹쳐 멘탈이 거의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그래서 몸과 마음에 병이 들었던 거라 생각하는데, 그 이후부터 특히 '마음의 병'을 치료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됐다. 아내 또한 직장에서 민원 업무를 종종 하다 보니 나의 그런 스트레스에 공감을 해서 다행이었다. 나의 힘듦을 알고, 우리는 함께 명상을 배우러 다니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사짜의 기운이 들어 중간에 그만두긴 했지만, 생각보다는 효과가 있었다.


한참 빠져서 읽었던 책 <최고의 휴식>에 나오는 '마인드풀니스 Mindfulness' 명상법은 꽤 큰 도움이 됐었다. 머릿 속에 생각이 항상 가득해서 쉴 틈이 없었고, 손님과의 트러블이나 특정한 사건에 대한 기억이 계속 마음에 박혀있던 시간들이 길어 힘들었던 시기. 그 때 이 '마인드풀니스'는 그런 내 머릿속과 마음을 비워주는 좋은 도구였다. 미라클모닝을 열심히 하던 시절이라 새벽같이 일어나 요가매트 위에 누워 명상을 했었다. 자꾸 잠드는 바람에 의자에 앉아서 하는 명상으로도 하고, 식사 명상, 자기 전 명상도 골고루 섞어서 했는데 그 재미가 쏠쏠했다.


특히 '식사 명상'은 매우 신선한 방식이었는데, 식감이 독특하거나 향이 자극적인 음식을 먹을 때 효과가 극대화됐다. 말 그대로 음식을 먹을 때 오감에 집중하는 명상법인데, 나의 경우에는 '김밥'을 먹을 때 가장 즐거웠다.

고소한 참기름의 향기를 콧속 깊이 들이마신 뒤, 김밥 한 개를 젓가락으로 집어 크게 한 입 넣는다. 입 안에 고루 퍼지는 식재료들을 하나하나 느껴본다. 짭쪼름한 우엉, 담백한 쌀밥, 씹을수록 단맛이 나는 아삭한 당근, 시원하면서도 식감 좋은 오이, 탱탱하지만 입에서 점점 녹는 계란, 참기름과 물아일체가 되어 극강의 고소함을 뽐내는 김. 여기에 매콤 시원한 배추김치의 아삭함까지..


아무 생각 없이 음식을 씹어 삼키며 허기를 채우던, 그러면서 머릿속에는 온통 딴 생각, 아니면 스마트폰 화면 속 쏟아지는 정보들로 가득했던 식사 시간은 온데간데 없었다. 오롯이 내 앞에 놓인 음식과 내 입안에 들어온 음식에 대한 감각만 느낄 뿐이었다. 미각, 후각, 시각, 촉각, 청각, 말 그대로 오감을 느끼면서 식사를 하는 그 짧지만 특별한 경험은 우리 스스로 해낼 수 있는 최고의 명상 중 하나였다.




잠시 옛 생각에 잠겼었다. 요즘엔 머릿 속이 예전만큼 복잡하진 않기도 하고, 손님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는 많이 줄었다. 스스로 어느정도 컨트롤하는 방법을 익히기도 했고 사실 손님이 많이 줄어서 마찰 생길 일도 그리 많지가 않다. 은행의 미래가 갑자기 걱정이...? (다른 글에서 다뤄보자)


요즘엔 명상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해 마인드풀니스고 뭐고 잊고 지냈었다. 그러던 중 지난 내 생일에 은행 후배가 사준 특별한 선물로 인해 명상 아닌 명상을 하게 되었다. 후배가 수줍게(?) 카톡 선물하기로 보내준 선물은 바로 향초였다. '우X윅'이라는 브랜드의 향초인데, 초를 태우기 위한 심지가 자작나무 같은 걸로 돼있어서 타들어가는 소리가 마치 '미니 캠프파이어'를 하는 것처럼 들린다.


"타닥, 타닥... 타다닥... 탁!"


KakaoTalk_20200922_230920640.jpg 크기는 작지만 방 안에 가득 퍼지기에 충분한 향을 지녔다.


이 글의 제목에서 던졌던 질문, '불멍은 무엇인가'의 답은 바로, '불 보면서 멍 때리기'였다. 이런 향초가 타들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잔잔하게 타고 있는 향초를 지긋이 바라보는 동안, 뇌가 휴식을 하는 것이다. 물론 멍 때리기가 습관이 안된 사람들은 그 와중에도 그 날 있었던 안좋은 일들, 예전에 상처받았던 일 등을 떠올리며 힐링에 실패할 수도 있겠지만, 혼자 눈 감고 명상 하는 것보단 향초의 불빛에 집중하는 것이 조금은 더 쉬울 것 같다. 그냥 눈만 감고 있으면 자꾸 몽실몽실 다른 기억이 떠오르지만, 꼬물꼬물 움직이는 불빛을 바라보다 보면 마치 입속에 살아 움직이는 김밥을 느끼는 것처럼 오감이 발동될 것이니 말이다.


'불멍'이 요즘 유행이라는데, 꼭 유행이 아니더라도 한 번 이런 향초를 구입해서 명상에 활용해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원래 향초를 잘 안피웠는데(지금도 선물받은 향초들이 집에 쌓여있다) 이번에 받은 향초는 선물받은 지 한달도 채 안됐는데 절반 이상이 사라졌다. 아, 좀 더 멍 때려야 하는데..


워낙에 바쁘게, 급하게 살아가는 생활 패턴이 이어지다 보니 금세 지치기 마련이다. 쉴 때는 잘 쉬어줘야 더 나아갈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자신을 희생해서 양질의 멍 때리기를 도와주는 향초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쉴 땐 푹 쉬고 나서 공부하고 성장해야겠다. 이 자리를 빌어 후배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싶다.


"너의 센스 덕에 휴식도, 콘텐츠도 얻었다.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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