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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 네시 Jun 10. 2020

벌써 12시라고..?

몰입의 힘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좋아하는 노래나 유행하는 노랫말을 개사(가사를 바꾸는 일)해서 녹음을 하고, 직접 해당 노래의 안무까지 영상으로 찍어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하는 취미. 그렇다. 나는 쪼렙 유튜버다. 기존에 존재하는 음원을 배경으로 영상을 만들기 때문에 저작권 문제가 걸려있다. 즉, 수익창출은 포기한 상태로 시작한 유튜브 채널이다. 어떻게 보면 아쉬울 수도 있지만 반대로 부담이 없다. 말 그대로 취미로 하면 되는 거니까.


 유튜브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기에 경쟁은 치열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나는 내가 정말 좋아할만한 컨셉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적어도 남들 등쌀에 못이겨 그만두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나처럼 노랫말을 개사해서 어설픈 춤과 노래로 영상을 만드는 유튜버도 아직 보지 못했다. 물론, 나처럼 초소형 채널 보유자라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나름대로 이런 저런 시도를 해봤었다. 자기계발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던 독서를 주제로 영상을 만들었던 첫 번째 채널은 5개의 영상만 올리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면 바란)다. 자기계발에는 좋으나, 워낙 책 읽는 속도도 느려 업로드 속도도 느렸고, 이미 존재하는 북튜버(책 소개하는 유튜버)들의 영상 퀄리티가 평균적으로 너무 높아 의욕이 나질 않았다. 그래서 방향을 전환한 것이 '아무 주제나 말하는 컨셉'의 두 번째 채널이었다.


 이것 또한 문제였다. 주제가 통일되지 않으니 스스로 집중할 만한 포인트가 없었다. 아무 이야기나 할 생각으로 시작해서 부담은 없었지만, 너무 부담 없이 무편집으로 하다 보니 핵노잼이었다. 꽤 오래 지속했지만 20여개의 영상과 함께 막을 내렸다. 그렇게 잠들어있던 나의 유튜브 욕구는, 매일 글을 쓰면서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 동안 다시 깨어났다.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뭐였는지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건 어린 시절부터 쭉 해왔던 '음악'과 함께 하는 삶이었다. 


 좀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춤'이 가장 나를 즐겁게 하는 분야였다. 코흘리개 시절부터 TV 속 댄스가수의 몸짓을 보고 따라하기 시작했는데, 어른들이 '어이쿠 잘한다~'라고 띄워주니 기분 좋~다고 열심히 췄던 게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에도, 학창 시절에도 나의 춤을 보면서 사람들이 대부분 즐거워했기에 내 기억 속에 자리한 '나의 무대'는 긍정적인 요소로 남아있었다. 그래서 아재가 되어가는 지금 시점에야 늦깍이 댄서이자 유튜버가 된 것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춤, 그리고 남을 즐겁게 하는 일)을 하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때가 많다. 예전 같았으면 직장 일에 치여 퇴근 후 밥 먹고 나면 휴대폰만 만지거나 TV 보며 시간을 떼웠을 텐데 지금은 할 일이 너무 많아 그럴 여유가 거의 없다(물론 아직도 스마트폰의 노예다). 퇴근 후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퇴근길 운전하면서 미리 생각을 한다. 오늘의 경우, 비가 갑자기 내려 우산 없이 카페에 갇힌 와이프를 픽업해서 저녁을 먹은 뒤 집에 와서 재활운동을 하고, 아침에 못쓴 <반달쓰기>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그 스케쥴대로 움직이는 중이다. 스마트폰은 중간중간 짬날때만 잠깐 보고, 큰 계획대로 실행 중이다.


 글쓰기도 춤만큼은 아니지만, 꽤 즐거운 일이다. 이 글도 쓰기 시작한지 20분 정도 됐는데, 시간이 정말 금방 지나갔다. 30분 전만 해도 무슨 주제로 글을 쓸까 머리를 싸매고 있었는데, '몰입'의 키워드를 잡은 후에는 쭈욱 써내려가는 중이다. 이런 게 바로 몰입이 아닐까.


 몸이 저절로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라고도 표현한 유명한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한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직접 경험한 '몰입'을 이렇게 전해줬다.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황홀경에 빠집니다. (중략) 내 손이 나와 별개로 움직이면서 지휘하고, 나와 상관없이 연주가 이뤄지는 것만 같죠. 내가 경이로움으로 감탄하면서 보고 있는 가운데 (음악이) 저절로 흘러나오는 것 같아요.       p177, <그릿> 엔젤라 더크워스 저


 나도 가끔 글을 쓸 때나, 춤을 출 때, 영상을 편집할 때 그런 기분을 느끼곤 한다. 앞서 예시로 들은 사람만큼 프로페셔널한 수준도 아니고 실력도 한참 못미치지만, 적어도 내가 많이 해왔던 일을 즐겁게 하는 동안에는 상당히 유사한 느낌의 몰입을 경험하게 된다. 뭐, 몰입에 정답이 따로 있는 건 아닐테니 말이다. 나도 한 몰입하는 사람이다. 


 글을 쓰다 보니 순식간에 또 7분이 지났다. 집중하다 보면 자세가 흐트러져 안그래도 좋지 않은 목과 어깨에 무리가 온다. 글쓰기와 영상편집의 가장 큰 부작용이 바로 좋지 않은 자세다. 이것만 해결하면 컨디션이 꽤 개선될 듯 한데, 아직은 거기까지 신경쓸 여력이 없다. 우선 좀 더 실력을 기르고, 유명해지면 PPL로 안마의자도 받고 마사지도 받고 싶다(꿈도 크다). "여러분, 행춤 의자로 마사지하세요." 꿈은 크게 꾸라고 했다. 


 이 글 제목에서 의도한 건, 어제 영상 편집을 하다 보니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 자정이 넘어간 사실을 표현하려 했다. 쓰다 보니 오늘도 어느덧 자정이 되어 간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줄줄 글을 써보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의 하루는 24시간, 돈도 벌어야 하고, 먹고 자면서 건강도 챙겨야 한다. 지금처럼 하루 1시간만이라도 꼭 짬을 내어 꾸준히 써보자.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 잘 하고 있어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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