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ojette Mar 05. 2016

혼자가 되는 책들

최원호- [혼자가 되는 책들]. 서평, 혹은 사랑 고백.

몇 년 전, 절에서 스님과 문답을 나누었다.

"스님, 그냥 여기서 조용히 책만 읽고 참선하고 하면, 그냥 일상에서 하는 것보다 보다 참선을 잘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절에 오시지요. 하지만 제대로 참선을 하기 위해서는 원래는 책 읽는 것도 권장하지 않습니다."

"네? 왜요? 책은 다른 취미생활과 달리 정적이고..."

"참선은 최대한 마음과 생각을 비우는 일인데, 책은 마음과 생각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 수가 있어서요."


그 때는, 이 말이 이해는 얼핏 되면서도 잘 와닿지는 않았다. 하지만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책을 읽는다는 것, 책을 좋아한다는 것은, 마음과 생각이 단단해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이미 그 것을 표면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의 관점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해석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한 번 속으로 곱씹어 보기도 하고, 자신이 보고 있는 것 이상을 알고 싶어 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대상의 차원이 낮을 수록 대상에 대한 각자의 애정의 공간에서 자신의 해석이 차지할 수 있는 영역은 더 넓어질 수 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텍스트는 해석의 극대화를 위한 최적의 대상이다. 그리고 완벽한 독서란, 그 텍스트가 완전히 개인의 안에서 녹아내려 하나가 되어, 세상에 그렇게 텍스트와 하나가 된 자신이 남는 상태, 어쩌면 완벽한 사랑 그 자체가 아닐까.

그리고 그 마음이 극대화되어 밖으로 끄집어져 나온 것이 서평이다. 그러다보니 잘 씌여진 서평은  개인적인 글일 수밖에 없다 . 자신의 생각과 삶에 이 이야기의 어떤 부분이 어떻게 녹아나왔는지를 까뒤집고 세상에 외치는 사랑 고백.

그래서, 서평이란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이다.


물론 사랑 고백이란 모두 다르고 개인적인 기록이라고 하지만 일반적으로 국적을 불문하고 굉장히 대중적이고 보편적으로 흥미있어 하는 소재이다. 그래서 과거에나 지금에나 세상에는 사랑에 대한 노래와 책과 드라마와 영화가 범람하고, 사담으로 남의 애정관계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가.

나 역시도 그러하다. 물론 대부분의 사랑 이야기에 거부감을 보이기는 하지만, 잘 만들어진 사랑 이야기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평을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좋아한다. 특히 잘 씌여진 서평은 웬만한 소설보다도 재밌다. 마이클 더다의 [오픈 북]을 보면서 나도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책들의 이야기를 풀고 싶었고, [죽이는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많은 책들이 나의 위시 리스트에 추가되었던가.


다만 나같이 글쓰기 능력이 부족하고, 자신을 보여주는 데 서툰 사람들이 서평이란 것을 쓰면-특히 자신이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책에 대해- 대부분은 어색하고, 피상적이고, 쓸데없는 형용어만 많아진다.  그리고 이런 형용어는 사족일 뿐이라는 것은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바로 알게 되고, 그 글은 그저 흔하디 흔한 일개 책 소개에 머물게 된다. 그런 흔한 책 소개들은 여기저기서 질리게 봤기 때문에, 그냥 읽고 넘기기 일쑤이고, 나의 대부분의 서평도, 그냥 글을 써보고도 내가 부끄러워 잊어버려리고 한다. 누구에게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그냥 그런 종이 혹은 네트워크 자원 소비일 뿐인 글자들의 나열.


예전에 언젠가, 어떤 링크를 통해서 프레시안북스의 [미미하우스]라는 코너를 보게 되었다. 예술 도서 추천 코너였는데,  나야 예술 쪽은 잘 모르고 관련 도서를 많이 읽지도 않아 사실 책에 대해서 별 관심은 없고, 저자도 잘 모르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 사람이 권하는 책이면 읽어봐야지 하는 생각이 있던 것도 아니었고 그냥 서평 읽는 건 좋아하는 편이어서 별 생각 없이 읽게 되었다. 그런데 읽고 말 그대로 '놀랐었다'.  정말이지 그 글들은 '꾸밈없는, 개인적인, 잘 씌여진 애정 고백'이었다. 나는 절대 쓰지 못할 그런 글들.


그리고 몇 년이 흘렀고, 저자는 미미하우스에 실었던 글들을 다시 고쳐 쓰고, 새로운 책에 대한 새로운 애정 고백을 추가하고, 꼼꼼하게 엮여서, 한 권의 책으로 냈다. 그게 바로 이 책, [혼자가 되는 책들]이다.


최원호, [혼자가 되는 책들]

그래서, 이 책은 '사랑'에 관한 책이다. 제목만 보면 마치 커플마저도 솔로로 만들 것 같지만(...) 이 제목이 사실 무한한 애정에 대한 책이라는 것은 책의 서두, 혹은 책 뒷표지에 따놓은 말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혼자라는 것은 그럼으로서 완벽해지는 상태다. 매혹의 대상과 나만이 존재하는 상태, 그 대상 안에서 나를 발견하고, 그 대상의 본질의 일부와 닮아가는 나를 발견하는 상태다.
완벽한 몰입, 완벽한 독서.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이 매혹되었던, 그럼으로써 완벽히 혼자가 되었던-자신과 이 이야기만이 존재하는 세상을 경험했던- 책들을 그간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외국 소설 및 예술 분야 MD를 하면서도 충분히 보여주었던 출중한 능력을 한껏 발휘한다.

여기에는 이런 보석이 있어, 이런 거 좋아하니? 그러면 여기에 와 봐. 여기에서 내가 이런 금화를 보았는데...


책을 추천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각자의 마음 속에 있는 지도는 지역도 다르고, 보물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다르다 보니 보물의 위치도 다르다. 이 책이 향하는 방향은 저자의 취향 상 예술 분야 쪽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모든 지도가 꼭 내가 가야만 하는 곳만 보는 것은 아닌지라, 아 세상에 이런 곳도 있었구나, 잊고 있던 무언가가 여기 있었구나, 그러고보니 이런 것도 갖고 싶은데...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 이게 타인에게 해 줄 수 있는 책 추천의 모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좋은 책들을 보여주면 이 중 당신 취향이 하나는 있겠지, 어떻게 보일 지 모르겠지만 그 대륙이라면 나는 이 나라에서 이런 것을 보았는데, 나는 진심으로 좋았다-라는 것.  나처럼 예술 쪽에 무지하고, 이런 쪽 책은 많이 안 읽는 사람도, 조세희씨가 사진 에세이를 썼다는 것을 얼핏 들어놓고 기억 한 켠에 묻어두고 있었다가, 이 책을 읽고 바로 도서관에 있는 지 찾아보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책은 나에게 항상 특별한 존재였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책을 워낙 좋아해서 읽지도 못하는 책을 껴안고 다녔고, 잘 때도 책을 껴안고 있어서 책 모서리 같은 데에 얼굴이 베이기라도 할까봐 어머니께서 책을 슬쩍 빼기라도 하면 바로 깨서 우는 통에 다시 놔둬야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애정은 몇십년을 더 산 지금까지 계속 이어진다. 새벽까지 너무나도 재밌는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누워서 읽다가 까무룩 잠이 들고, 햇살에 잠이 깼을 때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지난 밤의 그 아름다운 이야기일 때의 행복함이란.

하지만 그렇게 긴 시간동안 사랑했던 책이라는 존재에 대해, 난 아직까지 진심을 담은 절절한 고백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내가 느끼는 행복감을 유려하게 표현하지도 못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이 책은 결국, 스님이 나에게 말씀해주신, '마음이 깊고 단단해지는 상태'에 대한 이야기-잘 씌여진 하나의 애절하고 진실된 사랑 고백, 매혹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혼자,어떤 책에 대한 애정을 생각하는 자신만이 남아 버린 세상에 대해 말하고, 그렇게 매혹되어 떠나면서, 당신도 어딘가로 떠나시지 않겠나요-라고 속삭이면서 슬쩍 내미는 어떤 지도.


이젠, 내가 어디론가 밀려 갈 차례다. 이 지도에 나온 곳이든, 전에 갔던 곳이든, 아니면 새로운 어딘가든.



덧글.

1. 이 책을 읽으면서, 전에 읽었던 서평이 어떻게 다시 씌였는 지를 보는 것도 하나의 소소한 재미였다. 다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전에 가장 인상적으로 읽었던 서평이 있었다. 사실 이 책에서도 처음의 도입부격을 읽고 그 서평을 가장 먼저 찾아보았다. 그런데, 이 책에 실린 그 서평은 더 이상 내가 전에 읽었던 그 글이 아니었다. 분명 잘 쓴- 그 때 읽은 글보다 훨씬 매끈하고 유려한- 글이었지만, 그 때의 인상은 그다지 남아있지 않았다. 그냥 읽은 지 오래되어서 일까...하고 그 글을 다시 찾아서 읽어봤는데, 아니었다. 분명 책의 글이 더 잘 다듬어진, 훨씬 깔끔한 글이라고 생각하지만, 원래의 글에서 느꼈던, 주체할 수 없는 흥이 책에 실린 글에서는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


2. 이 분이 스티븐 킹의 [죽음의 무도]에 대한 서평을 써주시면 어떨까. 예술 분야이기도 하고 분명 아름답고 애절한 고백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


3. 여전히 내 서평은 그냥 여느 흔한 글일 뿐이다. 그러려니 하지만 그래도 막연한 아쉬움. 언젠가는 나도 글을 잘 쓸 수 있지 않을까, 나도 재밌는 고백을 쓸 수 있지 않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