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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jette Jun 21. 2016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고전 원전을 읽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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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쉬면서, 목표같은 것을 거의 두지 않았으나, 유일한 목표로 잡은 것이 있다면 이 책을 완독하는 것이었다. 굳이 이유라면, 언젠가 한 번은 꼭 읽어보고 싶었고, 마침 쉬게 되었으니 이럴 때가 기회다 라는 생각에서였다. 개중 왜 이 책이냐고 하면, 기본적으로 [삼국지]같은 전쟁사를 좋아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보드게임 중 하나인 [헬라스]의 배경과 겹치기도 하고, 그리스 로마 고전 한 두 개는 원전으로 읽어보고 싶기도 했고, 예전에 꽤 재미있게 듣던 강유원씨의 팟캐스트에서 '그리스 로마 고전 중 한 권만 읽을 수 있다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겠다'라는 추천이 워낙 강하게 인식된 탓도 있다.


그리스 로마 고전 중 한 권만 읽을 수 있다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겠다


그리고 드디어 다 읽었다.

읽는 과정이 절대 녹록치는 않았다. 지도 및 찾아보기 등을 포함하면 800페이지에 달하는 커다랗고 두꺼운 책임에도 불구하고, 어디 멀리 갈 때는 들고 가서 넘겨보고, 집에서도 계속 책상에 올려두는 둥 시야 반경에 계속 두려고 노력했지만, 다른 재밌는 책들 마냥 쉽사리 넘어가지 않았다. 분명 어려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번역이 워낙에 훌륭하여 뜻이 명확하면서도 쉬운 문장들로 씌인 글임에도 불구하고, 영 머리에 와 닿지가 않는 것이다. 게다가 가뜩이나 머리에 닿지도 않는 긴 글을 짬짬이 읽다보니 다음 번 읽을 때는 앞에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게다가 사람들 이름은 또 왜 이리 어려운가.누가 누구인지 매번 헛갈리기 일쑤다. 이야기가 꽤 흥미롭다는 것은 알겠고, 분명 이러이러한 전략을 쓴다든가 사람들이 정치 토론을 하고 있는 것 등등, 어떤 인과관계 등은 분명 다른 전쟁사나 전쟁소설 뺨치게 훌륭하고, 이 것이 실제라니 더 대단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게 빠르고 신나게 와닿지 않는 것이, 내가 너무 흡입력 강한 소설들에 익숙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솔직히 고백하면, 중간에는 잠 안 올 때 이 책을 읽고 잠들기도 했다.) 좀 더 느린 호흡에 익숙해져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독서에서도, 삶에서도.


좀 더 느린 호흡에 익숙해져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독서에서도, 삶에서도.


중간중간 기억이 제대로 나는 지에 대해서는 나 자신도 의심스럽지만, 어쨌든 완독을 했다.

이 책은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21년간의 전쟁을 서술한 책이다. 저자 투퀴디데스는 '인간 본성이 변하지 않는 한 인간사는 계속 반복된다'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 말은 그대로다. 인간 집단의 내/외부적인 탐욕, 실리와 이상의 갈등, 전쟁, 전략, 계략, 신의, 동맹, 배신 등이 구구절절히 녹아있다. 그러면서도 종교나 무조건적인 이익 집단의 개입이 없는, 도시국가 간의 전쟁 이야기다보니 이런 과정이 매우 깔끔하게 나타난다. 분명 전쟁의 결말은 참혹함과 희생이라는 비극이고 인간은 역사적으로 점점 나아지고 있다지만 간혹 현대에 비추어보면 인간사는 점점 더 조금씩 퇴보하면서 반복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간 본성이 변하지 않는 한 인간사는 계속 반복된다


전체 8권(한 권 안에 내부에서 갈라져있다) 중에서 아무래도 역시 1, 2, 7, 8권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재미있었던 것 같다. 페리클레스의 연설은 매우 훌륭했고, 자세한 전쟁 묘사도 흥미로웠다. 7, 8권은  전쟁이 '살아남기 위한' 형국에 다다르면서 치열함이 극에 달했고, 종결된 후의 처연한 모습이 인상깊었다. 중간중간 작은 집단들의 궐기나 여기저기서 벌어지는 논쟁도 눈에 많이 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쉬이 읽을 수 없었던 건 역시, 이런 원전의 느린 호흡에 익숙하지 않아서일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 사실을 꼼꼼하게 써 내려간 것이 이런 책의 미덕이 아닐까. 그래서 아마도 역사적으로도 더 큰 가치가 있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책을 좋은 번역으로 읽을 수 있는 것은 나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잘은 모르겠지만, 왜 저런 좋은 추천사를 들었는지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에 앞으로도 손이 얼마나 더 갈 지는 자신할 수 없지만, 기회가 된다면, 혹은 생각난다면 일부분이라도 가끔 다시 찾아서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분명 훌륭한 전쟁사 책이기도 하고, 작가 말대로 인간사는 계속 반복될 것이고, 이 책은 이런 상황을 최대한 이상적이고 작은 집단을 배경으로 한 책이니, 이 책은 분명 어떤 상황에 대한 꽤 좋은 레퍼런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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