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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jette Dec 25. 2016

2016년 회고

Too weird to live, too rare to die.

데이터 분석이 업이고 그건 누구보다도 잘 할  사람, 맘 편한 비사교적 인물, 거대 도시에 사는 은둔자, 꼼꼼하지 못한 염세주의자, 부족한 페미니스트, 야망, 게으름, 불안, 확신, 열정이 물과 기름처럼 뒤섞인 인물.
– 옥타비아 버틀러의 자기 소개를 변형한 나 자신의 현재의 소개.


올해도 슬슬 끝자락에 접어들고 있어서, 매년 연말에 늘 그랬듯 멍때리고 앉아 올 한 해의 스냅샷들을 쭉 돌아본다.그리고 나의 기억력이 얼마나 형편없는 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렇게 쭉 돌아보는 것은 새삼 중요하고, 소중한 시간이다. 아직 이렇게 돌아보고 있을 때나마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난다는 것에 감사한다.



매년 안정적으로 살고 싶다고 그렇게 부르짖지만, 그 ‘안정적’이란 것은 세상 어딘가의 틈새에 끼어서 들러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무엇도 나를 건드릴 수 없고, 세상의 흐름에 밀려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곳으로 자유롭게 텔레포트할 수 있는 삶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런 삶을 나는 여전히 원하지만, 아직은 그렇게 살 수는 없다는 것을, 그리고 마음에 안 드는 것을 버티기에 나는 충분히 뾰족하고, 안 뾰족할 것 같으면 내가 내 한 구석을 사포로 갈든  부수든 해서 억지로라도 모를 내는 인간임을 이제는 충분히 안다. 어디든, 착하게 쓸려가는 것은 내 본성에 맞지 않는다. 그렇게까지 본성에 대해 눈을 감는 것-타락할 생각은 아직은 없다. 어쩌면 나에게 흔히 말하는 ‘철이 든다’ 라는 것도 일종의 타락일 지도 모르겠다. 철이 없는 것이 내 본성일 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사람이 마흔이 되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한다.  잘 생겼다 등의 기준을 떠나서 그 사람의 특성이 얼굴에서 읽히게 되는 때, 인상에 많은 것이 드러나는 것이 그 때라고 한다. 나도 이제 30대 후반, 내 주변 사람들을 보면 확실히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어떤 분위기가 드러나고는 한다. 애교, 고집, 부드러움, 영리함, 활기참, 차분함 등등. 하지만 지금도, 유리창에 비치는 내 얼굴에서 나는 아무 것도 읽을 수가 없다. 전부터 농담으로나마 ‘저 꽤 잘 생기지 않았어요?’ 라는 이야기를 하지만, 예쁘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제 자리에 적당한 크기의 이목구비가 적당히 또렷하게 들어가 있지만, 그 외의 어떤 개성이나 분위기를 읽을 수 없다. 어린 시절 ‘인상에 남는 얼굴은 아니다’ 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은 아마도 이래서 일 지도 모르겠다. 어디에서도 적당히 유리되어 있는 삶의 주인에게 걸맞는 얼굴일 지도 모르겠다. 물론 내 생김새에 딱히 불만은 없지만, 그냥 궁금하다. 이 얼굴에 무언가가 드러났다면 그것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있다면 아마도 ‘더 이상 제멋대로일 수 없는 제멋대로’ 와 ‘약간의 쓸쓸함’ 정도였을까.


올해의 내 삶에서도 꾸준히 비춰져 오던 그런 것. 정말로 더 이상 제멋대로기도 힘든, 평탄했던 순간은 거의 없이 계속 들쭉날쭉하고 정신없던 한 해였다. (심지어는 보통 중간 회고도 한 번 하는 편인데 올해는 그런 거 할 정신도 없었지!)  번잡스럽고, 실망하고,침잠하고, 회사를 그만두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새 회사에 들어가고, 새 환경을 이해하고, 제 멋대로 들쭉날쭉.  그렇게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른 채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것들이, 그 것이 내가 걷는 길이 되고, 내 삶의 궤적이 된다. 어차피 가고 싶은 곳도 없는데 어디로 가든 무슨 상관이겠나. 그냥 나를 잃지 않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니 사실 그것이면 된 것 아닌가.


그래서 쟤는 뭐 저러고 사나…싶을 수도 있겠지만 별로 상관없다.

나를 잃지 않는 것, 지루함을 느끼지 않는 것, 지루한 사람이 되지 않는 것. 최소한 아직까지는 이 세 가지는 잘 지키고 있으니 됐지 싶다.


물론 아쉬운 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나에 대한 기대치는 넘나 높은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어째 못 하지는 않았지만 늘 아쉬운 삶이다.)

사실 내 업을 때려치울 수 있다면 때려치울까 하는 생각도 진지하게 했었고(3달 가량 놀 때는 정말 진지하게 했다. 그런데 노느라 진지하게 생각한 시간이 짧았고(…) 일단 나는 먹고 살아야 했으므로 일단은 하던 일을 계속 하기로 했다. ) 내가 뭘 잘 할 수 있는지 등 나에 대해서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싶었지만, 그냥 나는 나다…정도밖에 얻을 수 없었던 것이. 그리고 그러면서 일 적으로는 무언가를 해 둔 것이 없다. 올해는 해외는 커녕 국내에서 뭔가 발표하거나 무언가를 연구해서 정리해 두었다거나 일적으로 아주아주 성공적인 무언가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심지어는 외국에서 발표해달라고 연락이 왔지만 싱가폴 가기 귀찮아서 관뒀지(…) 아니 사실 할 것도 별로 없었다. 회사에서 하는 일도 천천히 on-going 중이고…번역도 아주 신나게 밀리고 있고(…) ).

물론 그만큼 놀면서 다른 것들도 생각할 수 있었던, 느리게 살 수 있었던 시간도 주었고 아직 내가 나의 일부를 깨먹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어서 다행이었고 새로운 환경에서 지내게 되면서 새로운 많은 생각들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크게 아쉽지는 않지만 웬지 이걸 나의 일 능력과 교환한 게 아닌가 싶으면서(하나는 얻으면 하나를 못 하는 건 당연한 걸 알면서도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와 같은 미련을 반복하는 것이다) 약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그냥 제대로 뛰기 위해 움츠린 시간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조금은.


작년쯤부터는 더욱 진지하게 한 생각이지만, 나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혼자서 내 삶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오롯이 나의 삶을 선으로 만들어가면서 걸어가다보면, 다른 데에서 걸어오는 삶과의 교차점이 간간히 생기지 않을까, 어떤 접점이 생기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지만, 내 삶은 다른 사람들과의 삶과는 다른 평면에서 그리는 선이어서, 영원히 어느 선과도 마주치지 않고, 어쩌다 마주친다고 생각하더라도 그 것은 나의 착각이며, 손을 뻗어서 그 사람들에게 닿으려 해도 마치 유령처럼 그 사람들을 통과해 버리는, 영원히 어디에도 가닿지 못하는 불가촉천민같은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나는 아무도 아프게 하지 않았고,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렇게 예쁘게, 그렇게 저만치 떨어져 있었다.
 – 로베르트 발저, [시인]


이 것을 이제는 알고, 그다지 나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좀 다른 것일 뿐. 그리고 이를 이제 어느 정도 맘 편히 받아들이려고 하다 보니, 마음 밑바닥에는 미약하나마 쓸쓸함이 늘 깔려있다. 가끔 어딘가에 부딪치면 마음이 출렁거려서 그런 쓸쓸함이 표면 위로 잠시 떠오르기도 하고. 하지만 어차피 무거운 마음은 다시 가라앉기 마련이다. 가끔 이런 식으로 물과 기름같은 감정들이 적당히 섞여주는 것을 거부하지도 않고. 다 그런 거지.


그래서 어차피 늘 저만치 떨어져 있는 삶이라면, 그 삶이 만드는 흐릿하지만 기이한 빛이나마 더욱 예쁘게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빛을 보는 사람들에게 늘 감사하며 ‘그렇게 예쁘게, 그렇게 저만치 떨어져 있는’ 삶이 되자고.  어차피 멀찍이 떨어져서 빛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그 빛이라도 조금 더 강렬하게, 조금 더 기이하게, 더욱 더 지루하지 않게 만들자고.


일 적으로는 올해는 많이 손 놓고 겨우 번역 정도로나 공부를 이어나갔다면, 새해에는 그동안 따라잡지 못한 많은 것들을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더 공부할 것이다. 아직 이 일을 더 하면서 먹고 살아야 하는데, 물론 세상의 모든 분석 관련 내용을 다 공부할 수는 없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라도 조금씩 더 하면서, 이것저것 일에도 적용해 보면서, 조금 더 유니콘에 가까워져야지.

새해에는 건강 관리도 좀 더 해야겠다. 아픈 독거노인만큼 서러운 것이 없고 지속가능한 놀멘놀멘과 음주가무를 위해서는 적당한 건강 유지는 필수이거늘. 올해 내내 짼 운동도 어떤 식으로든 새로 하고. 자꾸 운동 안 하고 이렇게 살면 내가 그렇게 싫어하는 헬스장 PT를 끊어버릴테다!! (자기 협박)


세상에 재밌는 것들은 잔뜩 있다. 지루해질 틈이 없다. 여전히 많은 책을 읽고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들을 것이다. 더욱 더 많이 돌아다니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냥 자신만 잘 유지하면 된다. 많은 것들을 여전히 재미있게 생각할 수만 있으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 꾸준히 노력하면 된다. 매사에 무기력해지지 않으면 된다.  


무엇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더 많은 것들을 접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더욱 더 즐겁게 살 것이다. 늘 그렇듯이, '그래서 뭐 왜 뭐 어쩔건데' 를 중얼거리면서 살 것이다. 땅을 파고 우울함에 젖어있더라도, 그런 기본값을 빼고라도 내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살아오던 어떤 모습.

그리고 그걸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내가 하는 것에 대한 자신감과 원칙이 기반하고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보다 많이 공부하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이야기하고 기운을 내야 함을 안다.


I like living. I have sometimes been wildly, despairingly, acutely miserable, racked with sorrow; but through it all I still know quite certainly that just to be alive is a grand thing.
– Agatha Chist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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