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영어를 '공부'로 시키면 안 되는 이유"

공부는 '결핍'이 '의지'를 만들 때 시작된다

by Reich 라이히

우리 집 아이들은 말이 참 늦었습니다. 한글도 또래보다 한참 뒤처졌으니, 영어는 도무지 닿을 수 없는 먼 나라의 주파수 같았죠.

조급함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저는 아이들이 스스로 "필요하다"고 느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회는 생각보다 우연한 순간에 찾아왔습니다.


​큰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던 입학식 날이었습니다. 아이 친구를 차에 태워 함께 오는데, 그 친구가 우리 아이에게 대뜸 말했습니다.

"야! 민아! 차에 실내등 '온(on)' 해줘!"

​영어를 전혀 접해보지 못한 우리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죠

"그게 뭐야? ""이 뭐야?"

"야, '오(O)-엔(N)' 온(ON)이잖아! 너 영어 스펠, 뜻도 몰라?"

순간, 앞좌석에서 운전대를 잡은 제 손바닥에 긴장이 전해졌습니다.'아차, 우리 아이 기죽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앞선 것도 잠시, 백미러에 비친 아이의 눈빛을 보고 저는 숨을 골랐습니다. 아이의 눈은 창피함에 젖어 있지는 않은 듯 했고, 오히려 낯선 세상을 처음 마주한 모험가처럼, 기분 좋은 '충격' 혹은 '호기심'으로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친구를 내려 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습니다. 자존심이 상해서 였을까요? 아니면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 이었을까요? 아이는 제게 언어 그대로, 폭탄 선언을 했습니다.

"엄마! 나도 영어 배울래!"

​그 말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공부는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하고 싶어 입을 떼는 순간이 '골든타임'이라고 배웠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스스로 선택한 영어 공부가 결국 아이들의 미래를 열어 주었다고 믿습니다.


​선택권을 아이에게 넘기다

저는 즉시 여러 학원을 알아 보고, 세 군데의 체험 수업을 예약했습니다. 그리고 남매에게 직접 미션을 주었습니다.

"너희가 다녀보고, 너희 마음에 드는 곳을 골라볼래?"

​아이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곳은 숙제가 거의 없고 선생님과 유치원 놀이하듯 수업하는 곳이었습니다. 아마도 알파벳 A, B, C부터 시작해야 하는 1학년 아이에게 공부라는 압박보다 즐거움이 컸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큰아이의 영어는 초등 1학년, 남들보다 많이 늦은 출발선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둘째도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지만, 성향은 정반대였습니다. (두 아이는 연년생입니다) 둘째는 오히려 진도가 꼼꼼하고, 글씨 쓰는 숙제가 많은 학원을 스스로 골랐습니다. 동일한 환경에서도 두 아이가 그려내는 궤적은 정반대 였고, 저는 그 차이를 '틀림'이 아닌 '개성'으로 받아 들였으며, 아이들이 각자 설계한 방식대로 영어라는 바다에 뛰어드는 것을 묵묵히 지켜보았습니다. (아직까지도 그때 그 아이들이 왜 서로 다른 영어 학원을 선택했는지, 엄마로서 의문이긴 합니다)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성'과 '환경'

​시간이 흘러 돌아 보니, 영어라는 '이질감의 언어배우기'는, 조급할 수 밖에 없는 우리 초보 부모들에게, 학원의 커리큘럼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지속 가능했는가'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미국으로 조기 유학을 다녀온 몇몇 또래 친구들의 네이티브 영어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할 지 모르지만, 지금은 남매가 둘 다 낙타가 바늘구멍..이라는 대한민국의 의대를 정시로 입학했고, 의과대학 교육과정에서 없어서는 안 될 영어 원서를 거침없이 읽어 내려가는 것을 보면 그저 고맙고 대견하기만 합니다. (외국계 기업 근무자이지만, 아직도 영어는 질색인, 제가 보기에 그들은 정말 휙휙 읽어내더라고요.)


​학원 교육 외에 제가 고집했던 집에서의 환경 설정은 딱 두 가지였습니다.

TV 대신 디즈니: 우리 집은 TV 연결을 아예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네 다섯살 무렵부터 디즈니 만화는 일주일에 몇번씩 보게 했고, 단 무조건 영어로만 보게 했습니다. 내용을 이해하든 못하든 상관 없었고, 그저 영어의 소리에 익숙해지길 바랐습니다.


​2년간의 영어 일기: 꾸준히 자신의 생각을 영어로 옮기는 훈련을 시켰습니다.

이 영어 노트를 펼치면 웃음이 나옵니다. 학원 다닌 지 6개월쯤 되었을까, 저는 아이에게 무작정 영어 일기를 쓰게 했습니다. 사진 속 삐뚤빼뚤한 글씨를 보면 알겠지만, 당시 아이는 문법이나 스펠링 같은 건 잘 수 없는 초보 영어 학습자들 이었고, "사실 아무것도 잘 모르면서 막 써보는것도 연습이지.." 하고 생각한 저 역시 완벽한 초보엄마였습니다.

​하지만 그 '모르면서 막 쓴' 시간들이 하루, 이틀 싸여 두꺼운 노트 몇 권이 되었고, 그것이 곧 아이의 탄탄한 영어 뼈대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사진1&2: 문법은 엉망이지만, 2년 동안 꾹꾹 눌러쓴 영어 일기장은 아이에게 '포기하지 않는 법'을 가르쳤고, 두께도 두꺼운 대학노트에 쓰게한 초보엄마의 "무모함"도 담겨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 '노출'의 힘은 강력했고, 아이는 학원에서 계속해서 월반을 했고, 다행이도 영어를 공부가 아닌 언어이자 습관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꼬질이 리더의 한마디: 모험은 원래 불안한 법이니까요.

저도 엄마가 처음이었습니다.


호기롭게 아이의 선택을 기다려 주겠다고 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늘 불안했습니다. '이 방법이 맞는지', '아이를 너무 고생시키는 건 아닌지'에 대한 의문이 매일 밤 저를 괴롭혔습니다. 아이와 함께하는 이 과정은, 제게도 매 순간이 두려운 모험과도 같았던 거죠.


교육학자 레프 비고츠키(Lev Vygotsky)는 "교육의 핵심은 결과가 아니라 '함께 머무는 과정'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이의 성장은 완벽한 교재 속에서 홀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부모라는 든든한 조력자와 정서적으로 교감하며 '함께 머무는 시간' 속에서 온전히 꽃피운다".라고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중요한 것은 학원의 레벨이나 유창한 스펠링이 아니었습니다. 불안한 마음을 감추고 아이와 함께 영어 노트를 채워나갔던 그 '함께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영어를 '실내등 on'으로 처음 배운 아이가 원서를 읽기까지, 필요한 건 화려한 교재가 아니라 스스로 고른 학원 가방을 메고 나서는 아이의 뒷모습을 지켜봐 주는 마음이었습니다.


​부모가 처음인 당신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불안과 의문은 지극히 당연한 훈장이며, 당신이 아이와 함께 보낸 그 불안한 시간들이 훗날 아이에게 가장 단단한 뿌리가 될 것이니. "모험은 원래 불안하기에 더 값진 법"이라고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런 모험의 '믿음'은 방관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이의 잠재력을 끌어내기 위한 철저한 환경 설계와 엄마의 인내가 필요했지요.

다음 글에서는 한글도 영어도 늦었던 아이들을 어떻게 의대까지 보냈는지, 또다른, 그 구체적인 '결핍의 꼬질이 교육법'을 하나씩 공개하려 합니다.

​부모로서의 제 무모하지만 확실한 교육 모험담이 여러분의 불안을 확신으로 바꿔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여정을 놓치지 않고 함께하고 싶으시다면 [구독]으로 응원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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