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오랫동안 가뭄에 시달리던 강이 마침내 물을 되찾아, 깊고 도도하게 흐르는 것과 같았다. 강물은 더 이상 위태롭게 바닥을 드러내지 않았고, 예측 불가능하게 범람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자신만의 폭과 깊이를 가진, 장엄하고 고요한 흐름이 되어 있었다. 한림신용협동조합이라는 이름의 그 강물은 마을의 모든 마른 밭고랑을 적시고, 새로운 씨앗을 틔우고, 풍성한 열매를 맺게 했다.
가난은 이제, 오래된 흑백 사진 속의 희미한 풍경처럼 느껴졌다. 아이들은 더 이상 굶주리지 않았고, 여자들은 베틀 앞에서 자신들의 미래를 짰으며, 남자들은 아내들이 벌어온 돈으로 술을 마시는 대신, 그 돈을 종잣돈 삼아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작은 양돈 농가가 생겨났고, 읍내에는 마을 사람들이 함께 운영하는 작은 정미소가 들어섰다. 임피제 신부가 수십 년 전에 던졌던 작은 돌멩이가 만들어낸 파문은, 이제 섬 전체를 감싸는 거대한 파도가 되어 있었다.
임피제는 이제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나 있었다. 그는 더 이상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고, 어떤 의사 결정에도 관여하지 않았다. 그는 일흔에 가까운 노인이 되어 있었다. 그의 등은 구부정해졌고, 걸음은 느려졌으며, 푸른 눈동자는 세월의 먼지가 쌓인 유리창처럼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작은 거처에서, 책을 읽거나, 낡은 축음기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들으며 하루를 보냈다. 하나의 첼로가 만들어내는, 고독하지만 완결된 그 우주적인 선율은, 이제 그의 삶과 기묘하게 닮아 있었다.
그가 설계한 시스템은 완벽해 보였다. 그것은 외부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성장하고, 위기를 관리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는, 살아있는 생태계였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모든 생태계는, 그 안에서 가장 강력한 포식자의 등장으로 인해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포식자는 언제나, 가장 풍요로운 순간에, 가장 예기치 못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법이라는 것을.
그해 가을, 한림신협은 연례 총회를 열었다. 테쉬폰 한 채를 개조해 만든 널찍한 회의실은, 조합원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자신들이 이룬 성공에 대한 자부심과, 다가올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기대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날의 가장 중요한 안건은, 지난 한 해 동안 쌓인 막대한 액수의 ‘이익잉여금’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이제는 중년의 조합 대표가 된 양순덕이 결산 보고를 마쳤을 때, 회의실 안에서는 나지막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장부에 찍힌 숫자는, 그들이 평생 만져본 적 없는, 거의 비현실적인 액수였다. 그것은 그들의 성공을 증명하는 달콤한 숫자였지만, 동시에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새로운 종류의 갈등을 예고하는 위험한 숫자이기도 했다.
한 남자가 손을 들고 일어섰다. 그는 4-H 클럽 출신으로, 신협의 대출을 받아 가장 먼저 현대식 양돈 농가를 지어 성공한, 이제는 마을의 존경받는 청년 사업가였다.
“저는, 이 이익금을 우리 조합원들에게 공평하게 배당금으로 나누어주었으면 합니다.”
그의 말은 조용했지만, 단호했다.
“우리는 지난 수 년간,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빚을 갚기 위해,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우리는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이제 그 보상을 받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정당한 권리입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회의실 곳곳에서 동의의 박수와 고함이 터져 나왔다. “맞소! 이제는 우리도 좀 누려봅시다!” “내 몫을 돌려주시오!” 사람들의 눈빛은 이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우리’의 성공을 이야기하던 그들의 입에서, 어느새 ‘나의 몫’이라는 단어가 조금씩 새어 나오고 있었다. 가난이라는 공동의 적이 사라진 자리에, ‘개인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포식자가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양순덕은 그 모든 풍경을, 단상 위에서 차가운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이 순간이 언젠가는 오리라고 예감하고 있었다. 그녀는 사람들의 욕망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동시에, 이 욕망이 지난 수십 년간 그들이 애써 쌓아 올린 모든 것을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회의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회의실의 뒷문이 조용히 열리고, 임피제 신부가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었다. 사람들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지난 몇 년간, 그는 단 한 번도 조합의 일에 관여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단상으로 걸어 올라갔다. 그의 손에는 낡은 사진첩 하나가 들려 있었다. 그는 마이크 앞에 서지 않았다. 그는 그저, 회의실의 가장 앞자리에 앉아 있던 노인들의 얼굴을, 그리고 가장 뒷자리에 서서 이 모든 것을 불안하게 지켜보고 있는 청년들의 얼굴을, 아주 오랫동안, 말없이 둘러볼 뿐이었다.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예전처럼 힘 있지는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소란스러웠던 회의실 전체를 압도하는, 깊은 울림을 가지고 있었다.
“제가 처음 이 섬에 왔을 때,” 그는 말했다. “이곳에는 두 가지가 없었습니다. 하나는 돼지였고, 다른 하나는 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돼지가 없어서 아이들은 굶주렸고, 길이 없어서 사람들은 고립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돼지를 가져왔고, 길을 닦았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그는 들고 있던 사진첩의 첫 페이지를 펼쳤다. 그 안에는, 병든 노모를 등에 업고, 험한 산길을 넘어 읍내 병원으로 향하고 있는 한 남자의 흑백 사진이 들어 있었다.
“우리에겐 여전히, 아픈 사람을 위한 길이 없습니다.”
그는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그곳에는 흙바닥에 모여 앉아, 낡은 책 한 권을 수십 개의 눈동자로 들여다보고 있는 아이들의 사진이 있었다.
“우리에겐 여전히, 아이들의 미래로 향하는 길이 없습니다.”
그는 사진첩을 덮었다.
“여러분은 오늘, 여러분의 몫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러분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마침내 가난이라는 거대한 벽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회의실 안의 모든 사람들과 눈을 맞추었다.
“하지만 저는 묻고 싶습니다. 이 이윤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입니까? 정말 우리뿐일까요?”
그의 질문은, 마치 깊은 우물 속에 던져진 돌멩이처럼, 사람들의 마음속에 조용한 파문을 일으켰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이윤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미래와, 우리가 미처 돌보지 못했던 우리의 이웃이라고. 우리는 빚을 갚기 위해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진 빚은 가난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돌보지 못했던 약한 이웃과, 우리가 책임져야 할 다음 세대에게도 우리는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는 단상 위에, 자신이 미리 준비해 온, 낡고 서툰 설계도 몇 장을 펼쳐놓았다.
“저는 이 돈으로, 병원을 짓고 싶습니다. 더 이상 아픈 부모를 등에 업고 험한 길을 걷지 않아도 되는. 그리고 양로원을 짓고 싶습니다. 평생을 이 섬을 위해 헌신한 어르신들이, 마지막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 그리고 유치원을 짓고 싶습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첫걸음을 뗄 수 있는.”
그의 제안은, 회의실 안에 거대한 침묵을 가져왔다. 그것은 단순한 제안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 공동체의 존재 이유를 묻는, 근원적인 질문이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돈을 버는가. 우리의 성공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가.
침묵을 깬 것은, 가장 먼저 배당금을 주장했던 그 젊은 양돈 농가 주인이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임피제를 향해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자리에 다시 앉았다.
그의 행동을 시작으로, 회의실 곳곳에서 동의의 박수가, 처음에는 희미하게, 그러나 점점 더 크고 단단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한림신협은 단순한 금융기관을 넘어, 이윤을 공동체에 환원하여 또 다른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적 기업’으로 거듭났다. 정물의 황무지에는, 테쉬폰과 푸른 초지 옆으로, 새로운 건물들이 하나둘씩 들어서기 시작했다.
임피제는 더 이상 그곳에 가지 않았다. 그는 그저, 자신의 방 창가에 서서, 멀리서 들려오는 망치 소리와, 아이들의 희미한 웃음소리에 귀를 기울일 뿐이었다. 그는 축음기에, 퀸(Queen)의 <We Are The Champions>를 올렸다. 승리의 환희와 그 이면의 고독을 노래하는, 장엄하고도 서글픈 멜로디. 그는 생각했다. 이제 자신의 역할은 끝났다고. 그가 시작했던 강물은, 이제 스스로의 힘으로 더 넓고 깊은 바다를 향해 흘러가기 시작했다고.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모든 강물은 언젠가는 바다에 이르러,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그는 자신 역시, 언젠가는 이 섬의 기억 속에서, 이름 없는 물방울이 되어 사라지게 될 것임을 예감하고 있었다. 그는 그 사실이 조금도 두렵거나, 서글프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