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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채 Mar 02. 2017

남편이 쓴 이별 노래

잘 가,

사뭇 진지한 태도로 남편은 말했다.

 

"쓰기전에 미리 말하는데요, 우리 이야기가 아니예요"


 도로는 가벼운 흥분 상태였다. 농밀한 봄달이 낭만을 과시하고 있었다. 지하철 선로를 따라 흩날리는 꽃잎이 뭇 사람 애간장을 달였고, 우리는 쌍쌍이 손 잡은 인파속에서 봄의 맛을 느끼던 중이었다. 스콜처럼 몰아치는 벚꽃의 낙화를 즐기고 있던 나를 보며 남편은 이별 노래를 쓰겠다고 선언했다.


 곡을 쓰는 것을 업으로 삼은 사람과 결혼했다. 같은 것을 보아도 다른 감성으로 받아들이는 우리 부부는 닮은 만큼 또 다르고, 다른 만큼 또 같다. 나는 우리 영혼이 닮았다는 증거를 수도 없이 댈 수 있지만, 또 그만큼 우리가 매우 다른 별개의 인격이라는 증거도 수 없이 댈 수 있다. 비단 우리 뿐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관계에서 이러한 경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날, 단내가 진동하는 벚꽃의 밤을 관통하며 나는 공기에서 신혼의 맛이 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같은 시간 내 곁에서 걷고 있던 남편은 봄에 하는 이별에 관해 생각하고 있었다. 아주 행복하고 찬란한 감정 속에 슬픔을 숨겨놓은 곡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가 쓴 곡을 그의 속마음으로 내가 오해할까봐 남편은 못내 걱정했다. 우리 이야기가 아니라고 여러번 힘주어 말했던 그의 노래는 아스팔트를 물들이던 보라색 버찌가 자취를 감출 때 즈음, 세상에 나왔다.

나는 그 앨범의 소개글을 쓰고 자켓도 디자인했다. 작업을 위해 여러번 반복해서 들었고 몇 번은 흥얼거리며 설거지도 했던것 같다. 그 해 여름이 지나고 남편은 몇 개의 곡을 더 썼고, 가을엔 좋은 회사로 이직도 했다. 이제는 동 호수가 헷갈리는 예전 자취방 주소처럼, 남편이 쓴 이별 노래는 내 기억 구석으로 조용히 자리를 옮겼다. 먼지로 지은 면사포를 가만히 쓰고 앉은 곰 인형처럼.
 부산을 떨며 시작한 반찬 만들기가 막 끝난 참이었다. 주말 과업을 달성했다는 기쁨에 즐거워하며 차를 마셨다. 온기가 남은 컵 두개를 들고 주방으로 들어서던 그 순간, 낯선 노래가 내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되고 있음을 인지했다. 낡은 전축 스피커를 타고 나오는 듯한 빈티지한 소리. 가늘고 소녀적인 음색. 어디서 들어봤던 노래더라? 한참을 생각하다 그것이 남편이 쓴 그 노래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그 노래는 쏟아지는 벚꽃 폭풍속에 편지처럼 접어넣은 슬픔에 관한 것이었다. 괜찮다고 말하지만 전혀 괜찮지 않은 꽃과 나무의 이별에 관한 노래였다. 절정으로 치달은 봄의 한 가운데에서 쓰여진 노래. 떨어지는 꽃처럼 느릿하지만 확고하게 끝을 향해 달려가는 상대와 그를 바라보는 벚나무의 마음. 우리 모두가 경험해봤고 지금도 누군가에겐 진행형일 노래였다.


 세상 모든 사랑에는 속도가 있다. 어느 한 쪽이 너무 빠르거나 느리면 점점 벌어지는 관계의 장력을 견디지 못하고 사이가 끊어져버린다. 어쩌면 나와 남편은 우주를 여행하는 별들 중에 우연히 같은 궤도에서 등속 운동을 한 행운으로 부부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독립된 두 별이 먼 우주 끝까지 함께 항해하기 위해선 사랑이라는 강력한 인력이 필요하다. 봄 밤을 수놓는 영롱한 별들처럼 사랑이 늘 반짝이려면 우리는 함께 속도를 맞추어야 한다. 서로의 눈을 맞추고, 속도를 조율하고, 떨어지지 않도록 바싹 붙어 앉아야한다. 그러려면 끝없이 봄비를 끌어 올리는 뿌리처럼 단단한 지지대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 지지대가 뿌리를 뻗은 토양은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상대의 사랑이 매개가 된다. 떨어진 꽃잎이 산화해 토양을 기름지게 하듯이, 미숙하고 아픈 사랑이 자양분이 되어 다가올 사랑을 더 성숙하게 하는 것이다.

 계절이 돌아오면 다시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꽃도 나무도 알고 있다.  떠나는 꽃잎은 그래서 의연하다. 그러니 우리 모두 사랑해야 한다. 이별하더라도, 아프더라도 그럴 수록 더 힘껏 사랑해야 한다. 그 여정에서 평생 함께 별들속을 날고 싶은 상대가 나타난다면 놓치지 않고 꽉 붙잡을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사랑은 언제라도 사라져 버릴 수 있는 약한 것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함은 물론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이 곡은 사랑의 정체성을 투영한 진정한 사랑 노래다.

 

 1년이 지난 지금 다시 곱씹어 들을 수록 내가 그 당시에 대체 왜 앨범 자켓에 야자수를 썼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노래는 벚꽃의 낙화 그 자체인데. 발매 시기가 여름이어서 그랬다고 변명을 해야겠지.

 코 끝까지 바싹 다가온 봄 냄새가 느껴진다. 겨울을 인고한 꽂과 나무가 드디어 만나는 계절. 세상 모든 강둑과 꽃길에 봄이 오기를, 이 글을 읽는 당신의 귓가에도 봄에 하는 사랑 노래가 맴돌기를 바래 본다.








글: 무채


곡 : ABeatz [Good bye]


http://www.genie.co.kr/detail/albumInfo?axnm=80829655



http://music.naver.com/album/index.nhn?albumId=643738&trackId=6166760



http://music.bugs.co.kr/album/20040421?wl_ref=list_ab_01_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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