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알코올중독자의 딸입니다.
29 알코올 중독자 가족으로 살아가기
술 좀 꽤나 먹는 사람들의 특징 중에서 가장 점잖은 건 아마도 숙취인 것 같다
그저 본인 속만 괴롭고 괴로우면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크게 느껴질 것이 없는데 순하던 사람이 갑자기 폭력적으로 돌변한다던가? 했던 얘기를 또 하고 또 한다던가? 밤새 운다던가? 음주 운전을 한다던가? 옷장 문을 벌컥 열고 소변을 본다던가? 어딘가에서 쓰러져 블랙아웃 돼버리면 성인 하나를 감당해낼 재간이 없다.
알코올 중독자로 인한 괴로움을 일일이 나열할 수는 없지만 알코올 중독자 가족으로 살아가면서 나는 심심치 않게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반응에 생각지 못했던 상처들을 받게 되는 것 같다.
<최근에 나는 아빠의 기초 생활수급비 계좌를 변경하러 동사무소를 방문했다. 병원에 입원하기 전 아빠는 꽤 오랜 기간 돈이 없어서 할머니께 손을 벌렸다고 했는데 아빠가 입원을 한 후에야 누군가 카드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수급비를 인출해간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빠는 폐쇄병동에 계신데 누군가 ATM에서 돈을 인출해갔다. 돈을 인출해갔다면 비밀번호도 알고 있다는 뜻인데 카드의 행방을 물으니 아빠는 대답하지 않았다. 본인 수급비는 다른 사람이 빼어 쓰고 아빠는 술, 담뱃값이 없어서 할머니, 할아버지의 몇 십만 원 안 되는 노령연금을 빼앗아 쓰고 있었다니... 가슴에서 천 불이 났다. 부랴부랴 분실신고를 하고 동사무소에 방문했는데 수급비 계좌 변경은 예민한 문제라고 하시며 가족이라도 본인 확인을 해야 한다고 했다. 아마도 가족이 수급비를 횡령(?) 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으니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직원의 대책인 듯했다. 하지만 창구에 있는 내내 나는 의심의 눈초리를 피할 수 없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우리 집의 사정을 일일이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고 확인을 받는 일은 생각보다 비참한 과정이다.>
<아빠의 입원 연장이 이루어진 후 3차 병원 진료가 다가온 어느 날이었다. 입원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는 내가 아빠를 모시고 병원을 다녀온 적이 있지만 퇴원요구가 극에 달한 시점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게 현실이다. 아빠를 만나는 그날 폐쇄병동에서 이를 부득부득 갈던 아빠가 내 목을 조른다든지 등에 칼을 꽂는 상상도 해보았다. 나뿐만 아니라 가족을 강제 입원시킨 경험이 있다면 가족의 보복에 대해서 두려워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입원 연장을 하면서 다행히 병원 측에서 동행해 줄 것을 먼저 제안해 줬기 때문에 진료 며칠 전 간호사 데스크로 전화를 했었다>
안녕하세요 00 환자 보호자입니다
ㅡ무슨 일 때문에 전화하셨나요?
네.. 월요일에 아빠 3차 병원 진료가 있는 날이라 알고 계신지 확인 전화 한번 드렸어요
ㅡ예.. 보호자가 오시는 거죠?
네????? 병원에서 모시고 다녀오신다고 하셨는데요?
ㅡ네? 저희가 그랬다고요?
네... 그날 검사가 여러 가지이고 검사부터 진료시간까지 꽤 시간이 길어서 너무 죄송해서요...
ㅡ잠깐만 확인해 볼게요(수화기 너머.... 00환자 데리고 갔다 온다고 했어? .......#$%5.....)
네. 네 그날 저희가 모시고 갈 거예요. 오라고 전화 안 해요. 뚝.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ㅎ..ㅏㅂ.......
죄송합니다 말을 마치기도 전에 전화는 끊겨버렸다.
가족도 괴로워 죽겠는데 남은 오죽하랴
뭔가 바쁜 일이 있었겠지...
하..... 그날 하루 종일 귀에서 맴도는 말
오라고 전화 안 해요. 오라고 전화 안 해요. 오라고 전화 안 해요. 오라고 전화 안 해요. 오라고 전화 안 해요. 오라고 전화 안 해요. 오라고 전화 안 해요. 오라고 전화 안 해요. 오라고 전화 안 해요. 오라고 전화 안 해요. 오라고 전화 안 해요. 오라고 전화 안 해요. 오라고 전화 안 해요. 오라고 전화 안 해요. 오라고 전화 안 해요. 오라고 전화 안 해요. 오라고 전화 안 해요. 오라고 전화 안 해요. 오라고 전화 안 해요. 오라고 전화 안 해요. 오라고 전화 안 해요. 오라고 전화 안 해요. 오라고 전화 안 해요.
나는 여전히 나약한 사람...
나는 여전히 알코올 중독자의 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