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알코올중독자의 딸입니다.
28 입원 연장 동의서에 사인을 하며...
알코올 중독 아빠를 입원시킨 후 이번에는 기필코 최소 6개월은 입원 치료를 받게 해야지! 하는 다짐을 했었다. 그 이유는 알코올 전문병원을 퇴원하고 다시 술을 찾는 데 걸리는 시간이 얼마나 짧은 지를,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기가 얼마나 쉬운지를 직접 체감했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입원 치료가 더 필요하다는 주치의의 소견을 전해 듣고 얼마나 안도했는지 모른다. 안타깝게도 알코올 중독자의 가족들은 그 사람이 곁에 없음으로 마음의 평화와 휴식을 얻는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보호자로서 모시고 병원에 가는 길은 언제나 죄스럽다. 직계가족 2인의 사인이 필요한데 부인은 없고 자식은 둘이지만 동생은 타지에 사니 매번 가까이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고 가게 된다. 앞으로 몇 번 더 이런 일이 있을지 마음이 무거웠다.
아빠를 입원시키던 날 처음 가 본 정신병원은 환자들로 북적거리고 진료를 접수하고 대기하는 모습이 여느 병원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을 보며 어디가 아파서 이곳에 진료를 보러 온 것일까? 하는 궁금함이 생기는 것도 잠시... 헝클어진 머리칼과 생기 없는 회색 눈동자를 하고 미동도 없이 앉아있는 사람을 보면서 이곳이 정신병원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차가운 물이 내 눈과 귀와 코와 입에 한없이 밀려들어와 숨을 쉴 수 없게 만들고 땅속으로 한없이 잡아당겨지는 기운이 내게도 전해질만큼 마음의 병은 무서워 보였다.
토요일 오전, 우리는 학교에 말썽쟁이를 맡겨놓은 보호자처럼 다소 경직된 표정을 하고 불 꺼지고 텅 빈 병원 입구를 지나 대기실에 앉았다. 상담실에는 중년의 부부가 우리보다 먼저 상담 중이었는데 할머니는 대기실의 한기를 느끼고 병원에서 지내는 아들이 추울까 걱정을 하셨다. 부모와 자식은 이렇게 다르다. 나는 아빠의 사랑을 헤아려본 적이 있던가? 할머니를 통해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을 짐작해 본다. 상담을 마친 중년의 여성은 가방에서 지퍼백에 종류별로 가지런히 담아온 커피믹스와 종류별 차 티백을 환자에게 전달해 줄 수 있는지 수줍게 물었다. 병원에 있는 가족을 생각하며 챙겨 온 정성이었다.
둥그런 원탁에 모여 앉은 후 담당자는 입원 당시의 아빠 상태가 어떠했는지, 입원 기간 동안 어떠한 검사들이 진행됐고, 현재 상태는 어떠한지 연로하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이해할 수 있게끔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술로 인한 인지저하로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상태이며, 병원에서 보이는 행동에서도 술에 대한 갈망이 무척 심해 보인다고 했다. 결론은 퇴원을 하면 수일 내에 다시 술을 마실 가능성이 다분하고 재입원을 하시게 될 것이니 하루라도 술과 떨어져 있는 것이 환자를 위한 길이라는 것. 아빠가 병원에 계시다 돌아가시는 상상을 해보았다. 요양병원이든 중환자실이든 응급실이든... 이제는 정말 회복으로 가는 길이 없을 것만 같다. 주치의가 입원 치료가 계속 필요하다는 소견을 내리면 입원 연장을 계속할 수도 있다는데 나는 언제까지 아빠를 입원시켜야 하는 걸까?
하나뿐인 동생이 올여름 결혼식을 한다는데 아빠는 딸의 결혼식에 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