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얽매이지 않되, 방황하지 않기를.

by Cold books

[책의 시작과 끝]

* 책의 시작: 항구 도시 피레에프에서 조르바를 처음 만났다.

* 책의 끝: 그래서 미방인께서는 선생님께 이 마을을 지나는 걸음이 있으시면 손님으로 그날 밤을 쉬시고 아침에 떠나실 때는 산투르를 가지고 가시라는 것입니다.

[책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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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책은 만난 장소부터 특별합니다.

지나고 보니 이 책의 작가가 조르바를 만난 것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합니다.

이 책을 우연히 만났지만, 책을 읽는 내내 물음표와 호기심으로 가득 찼습니다.

물론 인물 자체와 스토리 전개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인물들과 인물들 상황에 대한 해석에 관한 조심스러움이었습니다.

저번에 시집을 온전히 읽는 법을 알지 못해,

시집을 읽으면서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번에는 소설을 읽으면서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인물과 인물들의 상황을 그대로 따라가면 되는데,

계속해서 상황을 해석하려고 하고, 의미 부여를 시도했습니다.

그러다가 조르바의 촌철살인 불호령에 정신을 차린 게 여러 번입니다.

그렇지만 사실 시대적인 담론들을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유럽 열강들의 팽창적인 패권주의, 종교에 대한 비판, 정치체제 대립 과정에서 소외되는 사람들까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자유를 추구하는 '조르바'라는 인물이 등장하고,

카잔차키스는 '조르바'의 본능적이고 원초적으로 사는 삶이야 말로 정답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 것 같습니다.

소설 중간 중가 나오는 긴 호흡의 디테일한 묘사들을 보면 카잔차키스가 그리스인이 아니었다면 톨스토이나 도스톱예프스키만큼의 명성을 얻었을 거라는 말에 자연스럽게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소설은 전체적으로 조르바와 두목으로 묘사되는 화자가 대화를 나누면서 진행되고, 중간중간 카잔차키스의 긴 호흡의 통찰과 반성으로 나아갑니다. 주로 조르바에게 깨달음을 얻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못하는 본인을 자책하는 구조입니다.

조르바는 현재 사회의 시점에서 본다면 글을 배우지 못했고, 정착해서 성실하게 살지도 않았으며, 용병으로서 많은 잘못을 저질렀고, 논란이 될만한 여성관을 가진 인물입니다. 그렇지만 본능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며, 어떻게 사는 게 구속되지 않고 본인의 자유 의지에 맞게 사는지 아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반면 화자는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고, 끊임없이 책을 보며 공부하지만 조르바의 원초적인 본능 앞에서는 초라해질 뿐이죠.

논란이 될만한 조르바의 여성관, 종교관, 그리고 인간관을 보여줌으로써 카잔차키스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요.

단순히 기존 관성에 대해서 비난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결국에는 본인의 가치의 반대편에 있는 존재들을 결국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은 조르바가 오르탕스 부인에게 하는 말이 아닌, 보인 행동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조르바는 '자유 의지'의 가장 날 것의 버전이 아닌가 생각을 해봅니다. 단순히 자유롭고 본인 하고 싶은 대로만 행동하는 그런 자유가 아닌, '의지'가 담긴 '자유'를 추구를 세상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화자는 어쩌면 이런 일관성을 보이는 조르바가 혹시 신으로 비칠 걸 생각해서인지, 마지막 부분에서는 죽음을 실감하는 과정에서 인간적인 조르바의 모습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르바는 마지막까지 자유롭습니다. 화자와 조르바가 헤어져서 편지를 주고받는데, 그때마다 조르바의 이름이 달라지는 것을 봤을 때는, 아직도 얽매이지 않고 본인의 의지에 따라 살고 싶은 모습대로 살고 있는 조르바를 표현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우려스러운 표현들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게 무엇일까에 조금 더 집중을 해봤습니다. 물론 허구의 인물이라도 허용되는 범위가 있겠지만, 그것 또한 허구의 인물 조르바의 가치관이라고 한다면, 존재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인정과 존중의 의미와는 또 다른 이야기지만요.

우리는 너무 많은 것에 얽매여 살아갑니다.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나에 대한 리액션들을 생각하다가 오히려 액션들이 부자연스러워지고,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경우도 종종 많습니다. 사회적 존재로서 마이웨이로 혼자 살아갈 수는 없겠지만, 생각보다 정말 사람들은 주변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이러한 의도조차 없는 하찮은 기대들 때문에 본인을 잃지 말았으면 합니다.

시험 볼 때 간혹 시간이 모자라서 찍어서 맞을 때와 틀릴 때가 있는데, 두 경우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결과들입니다.

인생이 시험처럼 단순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본인으로서 깨지고 나아감으로써 본인의 삶의 무게를 만들어가 보면 어떨까요.

이번에도 옮긴이의 해설은 읽지 않았습니다.

가능하다면 저만의 조르바를 간직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쓰였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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