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사는 모습은 달라도, 우리는 누구나 스토너입니다.

by Cold books

[책의 시작과 끝]

* 책의 시작: 윌리엄 스토너는 1910년, 열아홉의 나이로 미주리 대학에 입학했다. 8년 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그는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의 강사가 되어 195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강단에 섰다. 그는 조교수 이상 올라가지 못했으며,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 중에도 그를 조금이라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 책의 끝: 손가락에서 힘이 빠지자 책이 고요히 정지한 그의 몸 위를 천천히, 그러다가 점점 빨리 움직여서 방의 침묵 속으로 떨어졌다.


[책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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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스토너라는 책은 아껴놓은 사탕 같은 책이었습니다.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되었을 때부터 아껴두기 시작해서,

종종 인스타에서 책을 접할때에도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껴두고 싶었습니다.

스스로가 아직 읽을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학교 다닐 때 급식을 먹으면 맛있는 반찬은 맨 나중에 먹으려고

남겨두었다가 친구들에게 홀라당 다 빼앗긴 기억이 나서 스토너를 서두르기 시작했습니다.

스토너라는 책을 베스트셀러에서 본 적은 없지만,

많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한 책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작품 내에서 스토너가 책을 대하는 마음,

그 순수한 마음이 책을 읽는 사람에게 기본적으로 높은 점수를 따고 들어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실제로 저한테도 그랬구요.

책을 다 읽고 난 이후 책의 표지를 봤을 때,

표지 삽화는 물론 표지 재질, 본문의 재질까지 스토너를 닮아 있었습니다.

극단적으로 치닫지는 않는 쓸쓸함이라고 할까요.

책 전체적인 느낌이 이렇습니다.

중간에 스토너가 불꽃처럼 타오르는 사건이 발생하기는 하지만,

원래의 스토너로 돌아오기 위한 타오름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스토너는

처음부터 끝까지 스토너로 남습니다.

이런 전반적으로 회색의 느낌이 나는 소설에서 놀라운 묘사와 표현들이 짧게 그리고 길게 나오는데,

읽으면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문학을 전공하지 않는 일반인이 봤을 때는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와 같은 전설들에 견줘도 전에 빠지는 게 없으며,

전반적인 큰 사건 없이 전개되는 소설을 생각하면 놀라움이 몇 배가 됩니다.

그리고 작품을 지배하는 강력한 절제미는 이 작품을 한 단계 더 빛나게 하고 있습니다.

스토너는 농부인 부모 밑에서 농부의 삶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더 나은 농부가 되기 위해 대학에 진학했다가 스토너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본인도 모르게 문학에 끌리게 되고, 스승 아처 슬론을 만나 문학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 뒤로 스토너의 삶은 대학 강사를 거쳐 대학 종신 교수까지 이어집니다.

학문에 대한 사랑에 비해 본인 자신의 삶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결혼 또한 첫눈에 반한 강렬한 사랑을 만난 것이 아니라,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사람을 만나서 적당한 시기에 아이를 갖습니다.

그 이후 본인을 파괴하는 아내의 멸시와 행동들에 대해서는 무방비로 받아들입니다.

그러한 아내의 행동이 본인이 사랑했던 딸에게 영향을 뻗는 것을 알면서도 스토너는 그냥 받아들이고,

흘려버리는 것 밖에는 하지 못합니다.

집 안에서는 스토너 스스로가 되지 못하고, 자연스러운 감정 표현 하지못합니다.

하지만 학문에서만큼은 다른 사람이 됩니다.

본인이 정해 놓은 어떤 선을 넘은 행동과 학문에 대해 진실하지 못한 사건과 사람에 대해서는

자신의 커리어를 고려하지 않은 채 극한까지 달려갑니다.

철저하고 무자비하게 상대를 물어뜯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그 극한으로 치달은 사건 때문에 스토너의 인생 자체가 달라진 것 같아 보이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로맥스 교수와의 싸움에서 물러섰다고 스토너 인생이 달라졌을까요?

로맥스 교수와의 싸움에서 물러섰다고 캐서린 드리스콜과 계속 행복할 수 있었을까요?

로맥스 교수와의 사건은 언젠가 누군가와는 반드시 일어났을 일입니다.

이 사건 이후로 스토너는 본인에게 학문을 사랑하게 만들어준 본인 스승 아처 슬론처럼 늙어갑니다.

전쟁을 수용하는 입장도 비슷해지죠.

제가 생각하는 스토너를 이어주는 가장 큰 주제는 '순수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순수함을 유지 혹은 파괴하는 인물과의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가느냐에 따라 큰 사건들이 발생합니다.

학문에 대한 순수함을 망치는 로맥스가 나타나고,

관계(우정)에 대한 순수함을 보여주는 매스터스(전쟁으로 사망하지만 소설 후반부까지 큰 영향을 미치는)와

피터 린치(스토너 옆을 끝까지 지키는)가 있습니다.

그리고 학문이 전부인 스토너에게 '학문을 순수하게 사랑하는 스토너'로서

인정 해주고 사랑 해주는 드리스콜이 있었습니다.

물론 사회통념상으로는 드리스콜과의 관계는 인정받을 수 없는 관계였지만요.

작가는 마지막 스토너의 묘사에 모든 걸 쏟아부은 것처럼 보입니다.

죽어보지 않았다면 어떻게 저런 표현들이 나올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스토너는 그렇게 마지막까지 책과 함께 있다가 생을 마감합니다.

스토너라는 책은 어떻게 보면 생각보다 지루한 책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루함보다는 은은하게 생각과 마음에 자리 잡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는 물론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도 스토너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누구도 책을 읽고 난 이후에 스토너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며칠 뒤에는 스스로가 스토너처럼 느껴질 순간이 분명히 온다고 생각합니다.

스토너는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입니다.

본인의 간섭으로 일시적으로는 나아진 것처럼 보일 수 있는 문제들도 결국에는 되풀이될 것을 아는 인물입니다.

그렇기에 관조적이고 무책임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는 그렇게 살아갑니다.

스토너는 행복했을까? 스토너라는 인물과 생에 대해서는 평가가 무의미한 것 같습니다.

스토너라는 인물을 만났고, 생각보다 우리도 스토너와 비슷한 부분이 많으며, 어느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죠.

중요한 것은 사건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본인의 가치관이기에 누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 남은 생을 살아가면서 책임을 지는 것은 본인이기 때문입니다.

보통은 책 리뷰를 마무리하면서 이 책은 어떤 책이고,

어떤 분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는 내용을 남기는데,

이번 스토너는 모든 분들이 시간 내서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스토너와 같지 않더라도 스토너를 생각하며 그동안 살아왔던 길과 앞으로 걸어나가야 할 길에 대해

은은하게 그리고 천천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들이 될 것 같습니다.

스토너를 덮은 이후, 존 윌리엄스의 다른 작품 3권을 막 주문했습니다.

스토너 책 뒤 소개 글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슬픔과 고독을 견디며

오늘도 자신만의 길을 걷는 당신을 위한 이야기.

사는 모습은 달라도, 우리는 누구나 스토너다'.

[마음이 쓰였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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