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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직장인Q Nov 14. 2021

내가 다시 (좋소의) 신입이 된다면

과거의 나에게


1.  직장이 제일 중요하다는 말은 이제 귀가 아프다.  말은 만족할 만한  직장에 자리잡지 못한 신입 직장인들에게는 너무 뼈아픈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경력직도 아니고 신입 중에 입사부터 “ 회사 너무 구리다!”라고 느끼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 회사에서 입사 첫날 퇴사를 선언한 사람이 있기는 있었다고 한다)  회사에 지원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특히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면 직장생활에 대한 기대감으로 차올라 있을 것이다. 열심히 하고 싶고, 일잘러가 되고 싶고, 능력을 키워서  좋은 회사로 이직할 꿈을 꾸고.


2. 나는 첫 1년을 일밖에 모르는 상태로 생활했다. 남들이 보면 “아니 좋소에서 왜 저래?”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내 연봉은 동기들의 반토막이었지만 나는 입사가 확정되자마자 회사 앞의 월세 100만 원짜리 오피스텔로 이사를 했고, 주말 출근을 하라는 지시가 있을 때면 “일 때문에 이번 주는 못 가요”라고 부모님께 말하며 반은 뿌듯한 마음으로 커피를 사들고 직장인의 기분을 느끼며 사무실로 출근했다. 평일 밤 12시 전에 집을 가는 일은 거의 없었다. 고요한 사무실에서 나 혼자 타닥타닥 일을 하는 것도 즐거웠고, 토일 둘 다 출근을 한 날 상사가 고생했다고 하면 주말 이틀만큼은 남들보다 능력치가 올랐다고 생각해서 너무 기뻤다.


3. 그리고 1  나는 이직을  준비가 됐다고 느꼈다. 그즈음 우리 회사에는  빌런들이 새로 입사하고 기존에 계시던 직원분들이 대거 이탈했는데, 능력 있다고 생각한 사람 순으로 회사를 나가는 것을 보며  역시 이직을 꿈꾸며 조금씩 이직 준비를 하고, 회사에 덜 충성적이게 되었다. 주말출근은 웬만하면 하지 않았고, 주어지는 일 외의 일을 더 하겠다고 의욕적으로 나서는 일은 없었다. 그럴 체력도 바닥났고. 몇 차례 점프 이직을 하고자 좋은 회사에 면접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내가 열심히 했던 업무들이 이직에 큰 도움은 되지 않는 물경력 포트폴리오라는 것을 깨닫고 근로 의욕은 더 떨어졌다.


4. 나를 충실한 노예로 여기던 한 상사가 나의 달라진 점을 눈치챘다. 그는 나를 간혹 윽박지르기도 하고, 1년 늦게 들어온 낙하산 후배와 비교를 하면서 내 떨어진 의욕을 지적하기도 하고, 사생활에 문제가 있냐며 연애 생활을 질문하기도 했다. 조심스레 달라졌으면 하는 개선 상황을 몇 가지 얘기했으나 반색을 하며 “그건 내 소관이 아니지”라고 하고 그 이후로는 무엇이 문제인지 묻지 않았다. 내가 동종업계의 다른 회사 사람들과 약속이 있는 것을 알게 되면 “남들 회사 알아서 뭐하려고 해. 걔네랑 밥 먹지 마. 잘 사는 애들 만나서 뭐하냐, 기분만 나쁘지.”라고 말했고, 종종 “나가면 다 똑같애.”라고 말하기도 했다. 내 몸은 하루라도 쉬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1월부터 8월까지 하루의 휴가도 허용되지 않았다.


5. 얼마 전에 근무평정표라는 것을 메일로 받았다. 해당 메일에는 갑자기 직원들에 대한 근무평정을 시작하기로 상사들끼리 의결을 했으며, 의결일 전의 근무에 대해서도 지적할 수 있음이 적혀있었다. 평가항목은 50가지쯤 되었는데, 주어진 업무 과제를 넘어 회사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하고 있는지, 회사에 돈 들어올 일을 물어오고 있는지가 주요 평가요소였다. 1년에 2번쯤 출근하고 월급만 받아가는 대표의 친인척들이 나에 대한 평가를 자잘히 적어둔 것을 볼 수 있었다.


6. 내가 다시 시간을 돌려 입사를 하게 된다면,

절대 근무시간을 초과한 근무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 이상의 일은 내 능력 밖의 일임을 미리 말해둘 것이다.

절대 상사의 눈에 들기 위해 저녁을 함께 먹어주지 않을 것이다. 지금 상사들은 주 7일 24시간 직원을 부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절대 사생활에 관련한 잡담은 하지 않을 것이다. 작은 가족 회사에서 사생활은 가십과 궁예용으로 쓰일 뿐이다.

절대 연차 사유를 소명하지 않을 것이다. 처음 냈던 연차에 사유를 적었더니 이제는 연차 사유 없이는 휴가를 승인해주지도 않는다.

절대 충성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곳에서 소진한 시간의 가치는 내가 얻은 것에 비하면 너무도 큰 값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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