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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ldhail Oct 30. 2020

고양이와 함께 산다는 것

고등학교의 고양이들

"여보세요, 거기 파뮬러스 맞죠?, 학교에 고양이들이 나타났어요. 도와주세요."

지난 6월 말 강원도 한 고등학교에서 온 연락.

몇 달 전부터 학교 뒷산에 고양이 세 마리가 나타나 학생들이 돌봐주고 있었다.

그중 3학년 학생들이 많아, 졸업하기 전에 안전한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고 싶다고 했다.

어쩌면, 유기된 고양이들이 아닐까 하는 것이 학생들의 추측이었다.

강원도, 그것도 학교까지 가서 버리고 온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

국내에서는 길고양이라고만 하지만, 모든 길고양이가 유기된 것은 아니다.

영미권에서는 stray와 feral로 구분하는데, stray는 사람 손을 탄 고양이를 말하고 feral은 야생에서 태어나고 자란 야생고양이를 말한다.

3~4개월 정도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세 마리였던 고양이가 여섯 마리가 된 것으로 보아,

화천군에 원래 사는 고양이들 같았다.

실제로 군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7년 전부터 길고양이와 관련된 건의들이 꾸준히 있었다.

매해 군청에서 20마리씩 TNR사업이 진행됐다고 하지만, 두 달여마다 4~6마리씩 새끼를 출산하는 번식력으로 볼 때 아마도 개체 수 감소에는 역부족이 아니었을까 싶다.

최근 코로나로 인해 국내 여행객조차 줄어든 점과 한눈에 보기에도 어린 친구라는 점을 생각해볼 때에

아마 동네에 원래 살던 친구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고양이들을 만나러 가기 위해 화천군에 방문했다.

전화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실제로 보게 된 개체 수는 네 마리.

전화 당시 세 마리였던 개체가 계속 드러나는 것도 마을에 사는 고양이들이라는 생각을 굳혔다.

고양이들이 마을에 사는 친구냐, 유기된 친구들이냐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다. 

첫째로, 범위를 결정한다.

고양이가 마을에 살던 개체일 경우, 더 많은 고양이가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학생들이 밥을 계속 주는 이상 개체 수는 시간이 가면서 계속 늘어날 것이고,

안타깝게도 몇 마리의 중성화와 접종, 작은 보금자리로는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

캠페인의 크기가 달라진다는 뜻이다.

둘째로, 입양이 적합한지 먼저 생각해볼 수 있다.

사람 손을 잘 타지 않는 친구의 경우 입양이 함부로 보내는 것이 부적합할 수도 있다.

다행히도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친구들이라 그런지

학생들의 손을 계속 피하거나 공격하지는 않았다.

곧 이어진 학생들과의 이야기 시간.

학생들의 자신들이 졸업했을 때, 이 친구들이 먹이를 구하지 못할까 걱정했다.

실제로 주말에는 마을에서 음식물 쓰레기 봉지를 뜯어 먹이를 구하는 고양이들이 있고,

그 친구들을 해하려고 약을 타 놓는 마을 어르신들이 있다고 했다.

학생들보다 고양이와 공존한 시간이 오래되셨을 텐데,

잔인한 발상에 눈앞이 아득해졌다.

지키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그렇게 급하게 고양이들을 구하기 위한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고양이가 인간과 함께 살게 된 건 5000년도 넘었단다.

초기 농경사회에서 살았던 고양이 뼈를 분석해보면, 고양이들은 쥐뿐만 아니라 사람이 주는 곡물도 먹었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우연히 고양이가 사람에게 온 게 아니라, 사람이 야생 고양이를 길들여가며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는 증거겠다.

5,000년 전에도 고양이는 항아리를 깨고, 식탁 위로 올라와 생선을 훔쳐먹었을 거다.

먼저 손 내민 인간과 길든 고양이.

그리고 지금은 손 내미는 고양이와 해치고자 하는 사람.

아이러니하다.

이 글을 쓰는

2020년 9월 중순,

인천 길고양이 급식소에서 고양이 뼈가 발견됐다.

항간에는 일부러 살점이 붙은 채로 두고가 근처 고양이들이 먹게끔 두었다는 소문도 있다.

뉴스에 나온 것이 처음이지, 이런 일이 전혀 없지는 않았었다.

잔인한 인간들.

나도 비둘기를 피해 다닌다.

쓰레기나 토사물을 헤집는 모습을 볼 때면 사라져 주었으면 하기도 한다.

그래서 고양이를 혐오하는 사람이 있는 걸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비둘기들에게 돌을 던지거나,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반려동물 세상이라는데, 어딘가의 동물들은 딱히 별 잘못 없이도 버려지고, 죽고 있음을 느낀다.

어쩌면 우리는 5,000년 전보다 다른 생명과 '함께' 사는 방법을 까먹고 있는 게 아닐까.

어제는 여섯 마리가 되었다고 전화가 왔다.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참 빨리도 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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