툴로 읽는 디자이너의 진화 1.0
1990년대 초반 디지털 창작의 황금기를 열어젖힌 3D 스튜디오 맥스(3D Studio MAX)는 삼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영화, 게임, 건축 시각화 작품을 탄생시켰다. 요스트 그룹(Yost Group)의 톰 허드슨(Tom Hudson)을 비롯한 선구자들이 개발한 이 소프트웨어는 처음에는 도스(DOS) 기반의 소박한 도구였으나, 윈도 시대로의 전환을 통해 전 세계 크리에이터들의 손에 들려진 강력한 디지털 지팡이로 변모했다. 지난 35년간의 진화 과정은 단순한 기술의 발전을 넘어 디지털 표현의 가능성 자체를 확장해온 문화적 여정이라 할 수 있다.
1988년, 요스트 그룹은 오토데스크(Autodesk)와의 계약을 통해 '터드(THUD)'라는 코드명 아래 새로운 3D 애니메이션 도구를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도스 기반 컴퓨터의 메모리 제약은 혹독했다. 640킬로바이트(KB)라는 낮은 천장 아래에서, 톰 허드슨이 혼자 개발한 이 초기 버전은 셰이퍼(Shaper), 로프터(Lofter), 에디터(Editor), 머티리얼 에디터(Material Editor) 네 개 모듈로 시작했다. 제약은 곧 창의성의 어머니가 되었다. 메모리의 한계가 바로 아키텍처의 우아함을 낳은 것이다.
1990년 할로윈, 오토데스크는 세계 최초의 대중적인 3D 모델링, 렌더링, 애니메이션 통합 시스템인 3D 스튜디오(3D Studio)를 출시했다. 가격은 3495달러였다. 프로페셔널 워크스테이션이 수십만 달러대였던 시대, 이 소프트웨어는 개인 창작자와 소규모 스튜디오에게 전례 없는 기회를 선사했다. 마치 저렴한 악기가 음악의 민주화를 가져온 것처럼, 3D 스튜디오는 디지털 예술의 문을 활짝 열었다.
그 다음 해인 1991년, 키프레이밍(Keyframing) 모듈이 다섯 번째 모듈로 추가되면서 진정한 애니메이션이 가능해졌다. 1992년과 1993년, 그리고 1994년에 걸쳐 릴리즈 2, 3, 4(R2, R3, R4)가 연이어 출시되었다. 특히 R4에서는 역운동학(Inverse Kinematics), 고속 미리보기(Fast Shaded Preview), 키스크립트(Keyscript)라는 획기적 기능들이 탑재되었다. 역운동학의 도입은 캐릭터 애니메이션의 노동 강도를 획기적으로 낮추었고, 플러그인 개념의 도입은 제3자 개발자 커뮤니티의 형성을 가능하게 했다. 파티클 시스템(Particle System)에서 렌즈 플레어(Lens Flare)에 이르기까지, 창작자들의 욕망이 플러그인으로 실현되기 시작했다.
1995년 로스앤젤레스 시그래프(SIGGRAPH) 컨퍼런스에서 오토데스크가 윈도 엔티(Windows NT) 기반의 3D 스튜디오 맥스를 발표했을 때, 현장의 크리에이터들은 경탄했다. 실시간으로 셰이더 처리된(Shaded), 텍스처가 입혀진(Textured) 객체들이 뷰포트에서 살아 움직였다. 이는 컴퓨터 그래픽 역사에서 파격적인 순간이었다. 32비트 플랫폼의 자유로움 속에서, 실행 취소(Undo) 같은 기본적이면서도 혁명적인 기능도 비로소 구현되었다.
1996년, 오토데스크는 멀티미디어 부서를 '키네틱스(Kinetix)'로 개칭하고, 3D 스튜디오 맥스를 기함으로 삼았다. 그 해 가을, 윈도 95와 윈도 엔티에서 구동되는 정식 버전이 출시되었다. 놀랍게도, 그 몇 년 뒤 요스트 그룹은 이 소프트웨어의 소스 코드와 특허권을 오토데스크에 판매했다. 한 팀의 천재들이 만든 꿈이 이제 대기업의 유산이 되어가고 있었다.
1997년의 R2(코드명: 아테나, Athena) 릴리즈는 업계를 떨쳤다. 천 개가 넘는 새로운 기능과 워크플로 개선사항이 탑재되었다. 선택적 광선 추적(Selective Ray-Tracing), 렌즈 이펙트 포스트 이펙트(Lens Effects Post Effects), 기초적 너브스(NURBS) 모델링 도구,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맥스스크립트(MAXScript)가 기본 탑재되었다. 맥스스크립트는 사용자들이 직접 스크립트 언어로 도구를 만들고 워크플로를 자동화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했다. 이는 단순한 기능 추가를 넘어, 소프트웨어 자체를 창작자의 손에 쥐어 주는 것과 같았다.
1999년, 오토데스크가 몬트리올의 디스크릿 로직(Discreet Logic)을 인수하면서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키네틱스와 디스크릿의 합병으로 탄생한 새로운 부서 역시 디스크릿이라 명명되었고, 3D 스튜디오 맥스는 더욱 정교해진 개발 체계 속으로 진입했다. 같은 해 출시된 R3(코드명: 시바, Shiva)는 이 전환기의 산물이었다.
2000년, '매그마(Magma)'라는 코드명의 R4가 출시되면서 소프트웨어는 이름까지 변화했다. 3D 스튜디오 맥스라는 대문자 표기는 모두 소문자 '3ds max'로 낮춰졌다. 이는 디스크릿 제품군의 명명 규칙에 맞추기 위한 결정이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상징적이었다. 대문자로 선언하는 것보다는 소문자로 스며드는 방식의 작동이 이 소프트웨어의 미래 철학이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2년의 루나(Luna) 버전, 2003년의 그래나이트(Granite) 버전, 2004년의 카탈리스트(Catalyst) 버전이 연이어 출시되었다. 2003년의 디스크릿 3ds 맥스 6은 특히 중요한 버전이었다. 메탈레이(Mental Ray) 렌더러가 통합되었고, 파티클 플로우(Particle Flow)라는 혁신적 파티클 시뮬레이션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영화와 게임은 이 도구를 통해 더욱 정교한 효과를 낳기 시작했다. 이 시기 용현된 영화들—'레 트리플레트 드 벨빌(Les Triplettes de Belleville)',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2(Final Destination 2)'—은 3ds 맥스의 위력을 세계에 선포했다.
2006년, 오토데스크는 다시 한 번 브랜딩을 재정의했다. 디스크릿이라는 구분을 버리고 다시 '오토데스크 3ds 맥스'로 통합되었다. 같은 해 출시된 버전 9(코드명: 마칼루, Makalu)부터는 64비트 지원이 추가되었다. 이는 대규모 데이터셋을 다루는 아티스트들에게 해방의 순간이었다. 영화 '해로(Halo)' 시리즈, '아바타(Avatar)' 같은 작품들이 이 도구의 64비트 능력 위에서 탄생했다.
2011년, 버전 이름이 연도 형식으로 변경되었다. 3ds 맥스 2011부터는 마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듯했다. 이 버전에서 소개된 니트러스 뷰포트(Nitrous Viewport)는 실시간 셰이딩과 텍스처링을 뷰포트에서 직접 구현할 수 있게 했다. 아티스트는 더 이상 렌더링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도 작업 중인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시간과 피로를 절약한 이 개선사항은 창의적 흐름을 방해하는 물리적 장벽을 제거했다.
2013년의 3ds 맥스 2013은 맥스 크리에이션 그래프(Max Creation Graph, MCG)의 초기 형태인 노드 기반 파라메트릭 시스템을 선보였다. 이는 아티스트가 코딩 없이 절차적 모델링(Procedural Modeling) 파이프라인을 구축할 수 있게 했다. 복잡한 수학을 비주얼 노드로 표현함으로써, 기술과 예술의 경계를 더욱 흐릿하게 만들었다.
2016년에는 '원 맥스(One Max)' 철학이 실현되었다. 그동안 분리되어 있던 건축/엔지니어링/건설(AEC) 전문 버전과 미디어/엔터테인먼트(M&E) 버전이 통합되었다. 이는 상이한 창작 목적을 가진 아티스트들이 동일한 도구로 협력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오픈 서브디브(OpenSubdiv) 지원도 추가되어, 산업 표준과의 호환성이 강화되었다.
2018년의 3ds 맥스 2018, 2019년의 2019는 지속적인 성능 최적화와 새로운 렌더러 지원을 추가했다. 특히 2019 버전에서는 오픈 셰이딩 언어(Open Shading Language, OSL) 지원이 추가되어, 더욱 발전된 셰이더 개발이 가능해졌다. 바이프로스트(Bifrost) 기반의 유체 시스템도 내장되어, 아티스트들은 외부 플러그인 없이도 물, 연기, 불 같은 복잡한 시뮬레이션을 구현할 수 있었다.
2020년의 3ds 맥스 2020부터 소프트웨어는 더욱 개방적이고 상호운용성 있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유니버설 씬 디스크립션(Universal Scene Description, USD)의 통합이 시작되었다. USD는 여러 크리에이터와 여러 소프트웨어 파이프라인이 동일한 자산을 공유하고 협력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이다. 더 이상 3ds 맥스는 고립된 섬이 아니라, 거대한 생태계의 한 부분이 되어가고 있었다.
2021년의 2021 버전은 텍스처 베이킹(Texture Baking) 도구의 개선과 서브스턴스(Substance) 도구의 강화를 가져왔다. 파이썬 3(Python 3)을 기본 스크립팅 언어로 채택함으로써, 더 현대적이고 강력한 자동화 능력을 부여했다. 설치와 렌더링 속도도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
2023년의 3ds 맥스 2023을 거쳐 현재의 2025, 2026 버전에 이르기까지, 소프트웨어는 지속적인 성능 최적화에 집중하고 있다. 2026 버전에서는 배열 수정자(Array Modifier)가 15% 빨라졌고, 불린 연산(Boolean Operation)이 40% 가속되었다. 엔비디아(NVIDIA)의 아놀드(Arnold) 렌더러 통합도 강화되었으며, 레토폴로지(Retopology) 도구의 처리 속도도 눈에 띄게 개선되었다. 이러한 최적화는 아티스트의 창의적 시간을 렌더링 대기 시간에서 해방시키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35년의 세월 동안 3D 스튜디오 맥스는 수천 편의 영화와 게임, 건축 시각화 작품을 낳았다. 할로우(Halo), 더 심즈(The Sims), 아바타(Avatar) 같은 문화적 현상들이 이 도구로 만들어졌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손에 들려졌고, 스튜디오에서는 프로 아티스트들의 신뢰 속에서 작동했다. 도스 기반의 소박한 모델링 도구에서 출발한 이 소프트웨어는, 오늘날 인공지능 기반 자동 리토폴로지와 USD 기반 협력 플랫폼을 갖춘 고도로 정교한 시스템으로 진화했다.
기술은 항상 혼자가 아니다. 기술 뒤에는 그것을 사용하고자 한 창작자들의 열정이 있고, 그 창작자들의 손에서 나온 작품들은 다시 문화가 된다. 톰 허드슨이 톱앤리스 프로그래밍(Top-less programming)으로 처음 구축한 이 도구는, 지금도 어딘가의 아티스트 손에서 새로운 꿈을 형상화하고 있다. 메모리의 제약 속에서 탄생한 우아한 아키텍처는, 현대의 방대한 데이터 처리 능력과 만나 무한한 가능성을 펼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기술과 예술의 만남이자, 삼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계속되고 있는 창조의 편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