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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ldred Aug 01. 2019

외계인과의 삶

"어떤 작가가 그러더라. 우리는 서로에게 외계인일 수밖에 없대."


중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같은 학교 사회 선생님과 결혼했다. 놀러 간 신혼집에서 결혼식 영상도 보고 사진도 보며 시시덕거리다가 우연히 치약 이야기가 나왔다. 자기는 치약을 아무렇게나 짜는데, 사회 선생님은 꼭 끝에서부터 꾹꾹 눌러서 짠다고. 그 문제 때문에 계속 싸우게 된다고 했다. 겨우 14살, '그깟 치약이 뭐라고 도대체 왜 싸우는 거지?'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 봐야 치약인데 말이다.


언젠가 문득 그때 일이 생각나 전 남자 친구에게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사실 나는 담임선생님과 마찬가지로 '치약이야 아무렇게나 짜면 뭐 어떻냐는 주의'였는데 알고 보니 그는 아니었던 거다. 같이 살았던 동생에게도 치약 문제로 잔소리를 하다가 결국엔 치약을 따로 쓰기까지 했다고. 그때만 해도 그와 내 사이가 꽤 좋을 때여서, '그깟 치약 문제'로 나에게 잔소리를 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는 그런 편이야'라고만 했으니 말이다.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고 나서 같이 치약을 쓰게 될 때마다 의식적으로 끝에서부터 눌러쓰려고 했지만, 역시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습관처럼 또 아무 데나 쭈욱 눌러쓰고 말았다. 그는 얼마나 짜증이 났을까.


대학교 잠깐 친구랑 같이 적이 있었다. 원래는 학교 근처에서 하숙하던 친구였는데, 같이 놀면서 하숙집이 무의미해져 버린 것이다. 별생각 없이 그저 재밌을 같아서 시작한 동거였는데 막상 생활이 되니 상황이 달라졌다. 나라고 해서 살림에 능숙한 것은 아니었으나, 친구는 아예 줄을 몰랐다. 처음엔 그냥 잘하는 사람이 하면 되지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괜히 서운하고 못마땅해졌다. -이런 걸 보면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이기적이다.- 알고 보니 친구도 친구 나름대로 속앓이를 했던 모양. 친구의 사정으로 결국 다시 혼자 살게 되었지만, 그때 알았다. 누군가와 같이 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그리고 2년 뒤, 동생이 서울에 올라왔다. 부모님 곁을 떠나 따로 산 게 둘 다 처음이라 그때만 해도 습관이랄 게 딱히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동생이 군대를 다녀온 뒤였다. 2년을 같이 살다가 그 뒤로 2년을 혼자 사는 동안 나도 모르게 생활패턴이 만들어진 것. 도대체 이 놈의 자식은 왜 컵을 쓰고 이상한 곳에 두는지, 그릇을 왜 이렇게 놓았으며 수건은 또 왜 저렇게 개어서 올려두는지, 성가시고 짜증이 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게다가 야근하고 몸과 마음이 다 지친 상태로 집에 돌아왔는데, 산더미 같이 쌓인 설거지 거리와 빨래 거리를 보고 있자니 화가 나기도 했다. 동생은 학교 과제 때문에 자기도 바빴노라 했지만 내 귀에는 그저 변명이나 핑계처럼 들렸다. 그래 봐야 밤늦게 들어온 나보다 니가 더 시간이 많지 않았겠느냐며 말이다. 그때 완벽하게 인정했다. 누군가와 같이 산다는 게 쉽지 않겠구나. 그나마 오빠도 아닌, 언니도 아닌 동생에게는 일방적으로 잔소리를 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가족에게는 그럴 리 없었다.


내년이면 동생이 결혼한다. 키 큰 외계인과 키 작은 외계인, 전라도 외계인과 경상도 외계인의 만남이다. 덕분에 나는 10 몇 년 만에 다시 혼자 살게 된다. 뒤치다꺼리를 할 사람이 없어져서 속 시원하다고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걱정이 앞선다. 시간과 공간을 함께 쓰는 것에 익숙해진 탓이다. 물론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금방 또 나만의 생활패턴이 생기겠지만 말이다.


내가 새로운 누군가와 함께 살 수 있을까. 서로가 원해서 함께 하는 동거생활이니 맞추려고 노력하겠지만 타협을 이뤄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충돌이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만의 패턴이 굳어져버리기 전에 '누군가와 함께 사는 삶'에 대해 다시 고민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


동생도 결혼하는 마당에 다 큰 딸이 여전히 결혼 생각 없이 사는 걸 보며, 아빠의 속이 타다 못해 시커멓다고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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