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작가가 그러더라. 우리는 서로에게 외계인일 수밖에 없대."
중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같은 학교 사회 선생님과 결혼했다. 놀러 간 신혼집에서 결혼식 영상도 보고 사진도 보며 시시덕거리다가 우연히 치약 이야기가 나왔다. 자기는 치약을 아무렇게나 짜는데, 사회 선생님은 꼭 끝에서부터 꾹꾹 눌러서 짠다고. 그 문제 때문에 계속 싸우게 된다고 했다. 겨우 14살, '그깟 치약이 뭐라고 도대체 왜 싸우는 거지?'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 봐야 치약인데 말이다.
언젠가 문득 그때 일이 생각나 전 남자 친구에게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사실 나는 담임선생님과 마찬가지로 '치약이야 아무렇게나 짜면 뭐 어떻냐는 주의'였는데 알고 보니 그는 아니었던 거다. 같이 살았던 동생에게도 치약 문제로 잔소리를 하다가 결국엔 치약을 따로 쓰기까지 했다고. 그때만 해도 그와 내 사이가 꽤 좋을 때여서, '그깟 치약 문제'로 나에게 잔소리를 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는 그런 편이야'라고만 했으니 말이다.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고 나서 같이 치약을 쓰게 될 때마다 의식적으로 끝에서부터 눌러쓰려고 했지만, 역시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습관처럼 또 아무 데나 쭈욱 눌러쓰고 말았다. 그는 얼마나 짜증이 났을까.
대학교 때 잠깐 친구랑 같이 산 적이 있었다. 원래는 학교 근처에서 하숙하던 친구였는데, 같이 놀면서 하숙집이 무의미해져 버린 것이다. 별생각 없이 그저 재밌을 것 같아서 시작한 동거였는데 막상 생활이 되니 상황이 달라졌다. 나라고 해서 살림에 능숙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 친구는 아예 할 줄을 몰랐다. 처음엔 그냥 잘하는 사람이 하면 되지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괜히 서운하고 못마땅해졌다. -이런 걸 보면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이기적이다.- 알고 보니 친구도 친구 나름대로 속앓이를 했던 모양. 친구의 사정으로 결국 다시 혼자 살게 되었지만, 그때 알았다. 누군가와 같이 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그리고 2년 뒤, 동생이 서울에 올라왔다. 부모님 곁을 떠나 따로 산 게 둘 다 처음이라 그때만 해도 습관이랄 게 딱히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동생이 군대를 다녀온 뒤였다. 2년을 같이 살다가 그 뒤로 2년을 혼자 사는 동안 나도 모르게 생활패턴이 만들어진 것. 도대체 이 놈의 자식은 왜 컵을 쓰고 이상한 곳에 두는지, 그릇을 왜 이렇게 놓았으며 수건은 또 왜 저렇게 개어서 올려두는지, 성가시고 짜증이 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게다가 야근하고 몸과 마음이 다 지친 상태로 집에 돌아왔는데, 산더미 같이 쌓인 설거지 거리와 빨래 거리를 보고 있자니 화가 나기도 했다. 동생은 학교 과제 때문에 자기도 바빴노라 했지만 내 귀에는 그저 변명이나 핑계처럼 들렸다. 그래 봐야 밤늦게 들어온 나보다 니가 더 시간이 많지 않았겠느냐며 말이다. 그때 완벽하게 인정했다. 누군가와 같이 산다는 게 쉽지 않겠구나. 그나마 오빠도 아닌, 언니도 아닌 동생에게는 일방적으로 잔소리를 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가족에게는 그럴 리 없었다.
내년이면 동생이 결혼한다. 키 큰 외계인과 키 작은 외계인, 전라도 외계인과 경상도 외계인의 만남이다. 덕분에 나는 10 몇 년 만에 다시 혼자 살게 된다. 뒤치다꺼리를 할 사람이 없어져서 속 시원하다고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걱정이 앞선다. 시간과 공간을 함께 쓰는 것에 익숙해진 탓이다. 물론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금방 또 나만의 생활패턴이 생기겠지만 말이다.
내가 새로운 누군가와 함께 살 수 있을까. 서로가 원해서 함께 하는 동거생활이니 맞추려고 노력하겠지만 타협을 이뤄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충돌이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만의 패턴이 굳어져버리기 전에 '누군가와 함께 사는 삶'에 대해 다시 고민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
동생도 결혼하는 마당에 다 큰 딸이 여전히 결혼 생각 없이 사는 걸 보며, 아빠의 속이 타다 못해 시커멓다고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