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 아부지는 왜 그런다니?"
내가 이십 때만 해도 엄마는 그런 적이 없었다. 내가 아직 어리다고 생각해서였을까. 그러다 내가 서른이 되고 삼십 대 중반이 되자, 엄마는 전화로 슬금슬금 아빠 흉을 보기 시작했다. '느 아부지'에 대한 이야기는 주로 아빠의 이기적인 행동들이었다. 나는 되고 너는 안된다는 식 말이다.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엄마가 나에게 흉을 볼만큼 그렇게 대단한 일인 줄은 몰랐다. 그때마다 사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래 맞아. 아빠가 좀 그런 면이 있어.'라며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는 척 위로하곤 했다.
아빠는 자존심도 강했고 자기애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자신과는 다른 '남'을 잘 이해 못했다. 게다가 자신이 정해놓은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들과도 불편해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고 해도,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평생 타인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해 못하는 건 당연했지만 아빠는 그 틀이 견고했다. 누구든 그 밖을 벗어나면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다.
나이를 먹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이기적인 남자가 된 게 아닌가 싶겠지만, 정작 아빠가 한 가장 이기적인 행동은 두 분의 연애시절 때였다. 가난한 집 8남매의 막내였던 엄마는, 기어코 집에 인사를 시켜달라는 아빠의 성화에 못 이겨 외갓집으로 아빠를 데리고 갔었다. 그때 엄마는 허름하고 낡은 그 집을, 그리고 그 집의 상황을 보여주기 부끄러웠다고 했다. 인사를 마치고 버스정류장으로 아빠를 배웅 나가면서, 엄마는 "봤으니까 됐죠?"라고 했다. 그 말에는 절대 이런 가난한 집에 사위가 되겠노라 하지 않을 테니, 우린 여기서 끝이지 않겠냐는 의미가 담겨있었단다. 그 말에 아빠는 아무렇지 않게 무슨 소리 하는 거냐며 쓸데없는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단다. 아빠는 이미 결혼하기로 마음먹었고 엄마는 따라야 하는 걸로 결정되어있었으니까.
덕분에 내가 있고 우리 가족이 있다.
이런 아빠를 나는 참 지극히도 닮았다. 어릴 때부터 아빠 닮았다는 소리를 내내 들으며 자랐다. 생김새야 그렇다 치자. 아빠의 성격까지 고스란히 나에게 유전될 건 또 뭔가. 나 역시 타인에 대한 이해도 혹은 공감도가 조금 부족한 사람인 것이다. 지인 중에는 니가? 설마? 라며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직 나에 대해 자세히 모르거나 - 결국엔 그들에게도 나는 타인일 테니까- 내가 잘 감추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나는 누군가에게는 무심하다는 소리를 들었고, 누군가에게는 너는 너무 '니 사람'에 대해 강하다고도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상처를 안 받는 것은 아니어서, 좀 유연해져야지 힘을 좀 빼야지, 틀을 넓혀봐야지 다짐하지만 그때뿐이었다. 천성은 어딜 잘 안 간다.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충분히 넘어갈 수 있는 일을 굳이 신경 써가며 저 사람은 도대체 왜 저러지?라는 생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니 말이다.
문득 그런 상상을 해본다. 시간이 지나 내가 결혼을 하게 되면, 남편이 우리 엄마를 붙들고 흉을 보고 있는 모습 말이다. "장모님, 아내가 너무 이기적이에요." 라면서. 그럼 엄마는 원래 김 씨 집안이 그렇다고 -엄마 혼자 박 씨라서 가끔 아빠와 나, 동생을 묶어 김 씨들이라고 부르곤 한다- 맞장구를 쳐줄지도 모르겠다. 상상을 하니 이상하게 웃음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