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쓰려니까 쓸 이야기가 없는 거야."
이십 대엔 참 재밌었다. 지금 하고 크게 다를 것 없이 일과 술에 찌들어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가 버라이어티 했다. 그래서 (퀄리티는 보장 못 해도) 많은 글을 쓰고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놨다. 같은 그림인 것 같아도 여러 사이즈로 '바리에이션' 됐다. 그런데 지금은 왜지?
백지의 공포라고들 한다. 빈 화면에 깜빡거리고 있는 긴 막대기. 눈동자로 타이핑할 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한참을 뚫어져라 쳐다보고만 있는 상태. 그런 걸 한두 번 겪은 것도 아니었지만, 예전에는 잘 쓰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다면 이제는 정말 소재 고갈이다. '그래, 이걸 글로 써야지! 이 사람 이야기 쓰면 웃기겠다.'라고 했던 것들이 꽤 많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 일상이 너무 평온해서 그런 탓도 있지만, 어쩌면 그런 모든 것들에 무뎌졌기 때문이기도 할 터.
평생을 쓰는 사람으로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오른쪽 손목에 펜촉 타투도 했다. 마치 신의 계시라도 받은 것처럼, 우주의 명을 받드는 것처럼. 그런데 지금 뭐 하는 걸까. 다짐은 또 있었다. 매년 1월 1일이 되면 '올해는 신춘문예에 도전해야겠다'는 다짐. 그러나 그 다짐은 번번이 가을쯤 도저히 이 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포기하거나 왠지 누가 이미 썼을 것 같다면서 포기, 소설은 무슨 소설이냐 싶어서 포기... 가지각색의 이유를 대면서 포기했다. 말은 쉽고 생각은 많았다. 손가락이 매번 키보드에서 겉돌았다.
2019년이라고 해서 예외는 없지만, 아직 초여름이니까 더 늦기 전에 뭐라도 써보자 싶었다. 애증과도 같은 일에 대한 이야기도 좋고, 사랑해 마지않는 술 이야기도 좋고, 흉보고 싶거나 그리운 사람에 관한 이야기도 좋고, 내가 쓸 수 있는 건 뭐든간 '말만 하지 말고' 써보자 싶었다. 그래서 이렇게 타닥타닥, 타이핑을 시작했다.
한때 좋아했던 -지금은 어쩐지 스타일이 달라져서 잘 안 보게 된다- 작가가 어느 소설 마지막에 이런 말을 적었다. '소설가의 삶이 소설을 만든다. 나는 재미있게 살아서 재미있는 글을 쓰고 싶다.' 그래, 나이 탓하지 말고 지금보다 좀 더 재미있게 살아야겠다. 그러다 보면 뭐라도 쓰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