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oldsky Dec 16. 2015

메갈리안으로 보는 한국 여성운동사.

제목은 거창하지만, 그리 거창한 이야기는 아니다.

작금의 여성 욕망 해방의 몸짓은 위험하다. 기존의 남성적 욕망 해소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기 때문이다. 전자를 주장하는 순간 후자도 정당화된다. 그것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피해자는 남성이 아니라 여성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TV 토크쇼 안의 ‘섹스 칼럼니스트’와 달리, 현실에서 성 소비 객체는 언제나 여성이기 때문이다. 곽정은의 ‘여성 해방’ 담론은 가부장 성 권력과 은밀한 쌍생아적 공모관계에 있다.


- 직썰  2015년 12월 16일자 '곽정은은 잔다르크인가?' 중에서




'남성과 동등하게 약자를 괴롭힐 권리를 쟁취'하는 게 요즘 여성운동의 트렌드 같다.


'공무원 시험 가산점 제도 위헌 판결'을 계기로 외연적 확대를 얻은 한국 여성운동의 태생적 한계라고 보는데, 결국 그 방식이 전선을 확대하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물론 전선이 확대된다는 건 페미니스트들에게는 긍정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전술적인 국지전에서 승리해봐야 전략적인 목표가 어긋나면 이기고도 진 전쟁이 된다. 전술은 차지하고라도 전략적 목표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이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목표는 '여성의 평등권 쟁취'처럼 보인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은 현재 여성이 받는 대우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야 가능하지만, '여성의 평등권 쟁취'는 그런 상향평준화가 아니라, 역으로 하향평준화를 통해서도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현 여성운동의 전체적인 방향은 후자처럼 보인다. 물론 하향평준화가 지름길이긴 하다. 제도를 만드는 것도 쉽고, 자극적인 여론전을 펼치기도 더 쉬우니까...


앞서 태생적 한계라고 한 것도 이런 부분이다.

'공무원 시험 가산점 제도 위헌 판결' 이전에도 여성운동은 있었지만 미비했다. 하지만 저 판결 이후 여성단체들은 힘을 받았고 외연적인 확대와 함께 목소리도 커졌다. 이는 한국 여성운동사에서 중요한 분기점이고 고무적인 사건이라고 본다.


문제는 이 잘못된 '승리의 기억'이 향후 여성운동의 전략적 방향을 '하향평준화'로 잡는 오류를 범했다는 거다.

이 '하향평준화'가 가지고 온 가장 큰 문제는 다수의 '안티 페미니스트'의  양산했다는 거다. 그 이전에도 안티 페미니스트들은 있었지만, 동조하지 않더라도 여성들의 활동에 침묵의 지지를 보내는 부동층 역시 많았다.

하지만 '하향평준화'라는 여성운동을 목격한 다수의 침묵의 지지자들이 대거 안티 페미니즘 진영에 합류하면서, 여성운동의 전선이 확대되었고 일부 전술적 승리가 과대 포장되면서 자극적인 뉴스로 돌변, 안티 페미니스트들의 전의를 불태우고 결속을 높이는 효과를 가지고 왔다.


메갈리안은 그런 '잘못된 승리의 기억'이 지배한 한국 여성운동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표준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초기에 보여줬던 '미러링'은 남성들의 일상적인 언어의 마초성과 그 마초성이 가지는 폭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주의를 환기시키는 효과를 가져왔고, 덕분에 많은 지지를 얻으며 폭발적으로 외연을 성장시켰다. 하지만 이 '잘못된 승리의 기억'에 도취된 메갈리안들은 이후 마초적 언어 사용의 지양을, 지향으로  전환하면서 마녀사냥에 버금가는 폭력적인 양상을 보인다. 메갈리안의 노골적인 폭력성에 그 활동에 박수를 보내던 많은 이들이 메갈리안에게 등을 돌리면서 '안티 메갈리안'을 양산하는 토대가 되었고, 이 안티 메갈리안들이 메갈리안의 자극적인 콘텐츠를 확대 재생산하면서 침묵의 지지자들까지 적으로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결국 '남자 일베 = 여자 메갈'이라는 등식이 생기는데, 이는 '마초 = 페미니즘'이라는 한국 여성운동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각과 그리 다르지 않다. 이 모든 게 '잘못된 승리의 기억'에 도취되어 좀 더 편안한 '하향평준화를 통한 여성의 평등권 쟁취'의 길을 택한 결과다. 물론 승리의 기억은 중요하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이겨본 사람만이 이기는 방법을 안다. 하지만 장기전에서는 작은 전술적 승리에 도취하기 보다는, 큰 그림을 보고 전략적 승리를 추구해야 한다.


 몇몇 국지적인 전투해서 승리해 '하향평준화된 여성의 평등권 실현'을 쟁취한다고 해서, 그걸 전략적 승리인양 포장해서도 안된다. 하향평준화된 상태에서는 승리는 여성에 대한 어떤 처우도 바꾸지 못했으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