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춘실의 사계절』(김효선, 낮은산)을 읽고
저자 김효선의 엄마 오춘실은 40여 년 동안 온갖 노동으로 생계를 꾸려 왔다. 가난하고 못 배웠고 남편은 도박에 빠졌고 일터에서 종종 모멸을 겪지만 (게다가 자주 다쳤지만) 제 운명을 구박하는 대신 기꺼이 보듬는 사람. 당신을 모질게 대하던 세상에서 여전히 작은 존재의 어여쁨, 찰나의 행복을 찾아내는 사람.
책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엮는다. 엄마는 13년 9개월 고등학교 청소 일을 한 뒤 정년퇴직을 두어 달 앞두고 ‘허리 골절’을 당한다. 온라인서점 MD로 일하는 딸은 직장 내 갈등으로 마음의 병을 앓는다.
모녀에게 재활은 절실했다. 딸은 엄마를 수영장으로 이끌어 수영을 가르치고, 엄마는 서투르지만 조금씩 해낸다. 엄마 덕분에 나이 든 여성들과도 가까워진다. 그들의 경계 없는 다정, 갖가지 사연을 품은 몸의 흔적을 본다.
“한 시간에 2000m씩 머리가 뱅뱅 돌 때까지 레인을 무한으로” 돌고 “빠르게, 멀리, 힘 있게 나가는 것에만 골몰”하여 제 몸을 닦달하던 딸은 엄마와 속도를 맞추며 조금씩 변해간다.
그런 엄마지만 너무 팍팍하던 어느 시절에는 아빠에 대한 화풀이로 어린 딸을 종종 때렸다. 훗날 함께 간 여행지에서 그때 일을 따져 묻자 엄마는 딸에게 사과했다.
이 대목이 새삼 뭉클했는데, 마냥 무르고 속없이 해맑은 듯하지만 오춘실은 누구보다 성숙한 이로구나 싶어서. 그 힘은 어디서 왔나 싶어서. 그는 누군가의 업신여김 때문에 “스스로를 낮게 생각하지 않았”고, 상대를 향한 분노가 자신을 망치게 두지도 않았다.
너무 오랜만에 글을 올리지만 아직도 나는 수영을 배운다. 저자는 나와 같은 2017년에 수영을 시작했지만, 애플워치 80랩(40바퀴)이 보통이고 ‘한강 크로스 스위밍’에도 (그것도 업헤드 자유형으로) 출전한 실력. 내 수준과는 멀어도 너무 멀구나...나는 아마도 춘실 님 수준에 좀더 가깝고, 저자 눈에 “느리게 가는 여자들” 중 하나를 담당하고 있을 듯. 내 깜냥을 알기에 숫자 따위에 연연하지 않고 나이 든 다정한 회원님들과 둥실둥실 헤엄치고 있다. 오춘실처럼 “지금 이 한 스트로크”의 즐거움에 열중하며 “목적 없이 꼬불꼬불” 나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