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원격의료 3부작 (2)
최근 몇 년 사이, 보건의료계에서 가장 뜨거웠던 이슈는 아마도 ‘원격의료’였을 것 같다. 기존 정부에서도 몇 번 논의는 되었던 사안이지만, 박근혜 정부에서 이를 강력하게 추진하면서 유독 논란이 되었는데 필자는 그 과정에서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우선은 정책의 수혜자라 할 수 있는 시민들이 그 정책에 대한 정보를 거의 얻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러했고, 그런 구체적 정보가 부재한 상황에서 논쟁이 격화되다 보니 불필요하게 정치쟁점화/이념화된 형태로만 논의되었다는 점 역시도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어느 정도 논란이 진정된 다음, 차분하게 관련 사안을 파악하실 수 있는 글을 써보려고 한다.
도대체 원격의료는 무엇이고, 한국에는 정말 원격의료가 꼭 필요한 것일까?
필자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드리기 위해 글을 세 부로 나누어서 작성해보려 한다. 1부에서는 원격의료가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해 개괄적으로 설명을 드리고, 2부에서는 박근혜 정부에서 그토록 강력하게 원격의료 도입을 밀어붙였는지에 대해 나름의 해석을 해보려 한다. 마지막으로 3부에서는 실제로 한국에서 원격의료가 도입될 필요성이 있는지에 대해서 나름대로 득실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이미 이런 글을 이 지점까지 읽고 계신다는 점에서, 독자께서는 보건의료계의 이슈에 대해 나름의 관심을 갖고 있는 분 이리라 예상된다. 그렇지만 평소에 그리 관심을 두지 않으셨던 분들도 쉽게 이해하실 수 있도록 전문용어는 최대한 부연 설명을 달아 작성하려 노력했다. 읽는데 들인 시간만큼은 원격의료 정책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다.
저번 글을 통해서 원격의료의 정의와 그 유형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해를 하셨으리라 생각한다. 복기를 위해 아주 간단히 요점만을 옮기자면 원격의료(telemedicine), 특히나 그중에서 의료인-환자 간의 원격진료는 의료취약지역에 거주하는 시민들을 위한 보완적인 방법으로서 도입이 논의되었던 것이다. 필요성은 충분히 있지만 대면진료에 비해서 유효성이 충분하다는 입증은 거의 없는 수준이고, 해외에서도 의료접근성이 낮은 지역에서나 제한적인 수준으로 운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기술을 한국에 왜 도입하려고 했던 것일까?
보건의료계의 이슈에 그리 관심이 없는 분들이 시라면 ‘원격의료’라는 용어 자체를 처음 들어보신 것이 박근혜 정부 시기이실 테다. 그런데 일반의 인식과 달리 저 용어가 한국에서 논의된 것은 꽤나 연원이 깊다. 기술적 한계로 인해 실패하긴 했지만 90년대에도 유사한 시범 사업을 추진했던 적이 있고, 정부 차원에서 심도 있게 논의가 됐던 것은 노무현 정부 시기에서부터다. 물론 이런 기존의 논의들과도 좀 궤가 다르게 추진됐던 것이 박근혜 정부의 원격의료였기는 하지만 한국에서 원격의료가 논의된 역사를 간략하게 훑어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생각되어 거기서부터 2부의 시작을 해볼까 한다.
한국에서 원격의료의 도입 가능성을 주로 논의하던 곳은 크게 나눠서 세 군데라고 할 수 있다. 우선은 직접적인 당사자라 할 수 있는 보건의료계. 어떤 전공이냐, 어디서 근무하냐에 따라서 입장이 나뉘기는 하지만 당사자인 만큼 관련 논의에는 가장 적극적이던 곳 중 하나이고 그만큼 영향력도 컸다. 두 번째는 조금 의외일 수도 있지만 IT 업계. 저번 글에서 설명했던 원격의료의 정의에서 알 수 있듯이, 원격의료는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점에서 볼 때 관련 시스템과 장비를 만드는 산업계 역시 직접적인 당사자라 할 수 있으며, 그들 역시도 활발하게 논의에 참여했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정부. 보건복지부 입장에서는 의료접근성 문제와 건강보험 재정 문제 때문에 관심을 가졌고, 산업통상부라던가 정보통신부 등은 원격의료 산업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서 보고 관심을 가졌었다. 이러한 세 주체가 한국에서 원격의료 논의를 이끌어 갔는데, 원격의료가 도입되었다면 어떤 변화가 오기에 이런 논의들이 오갔던 것일까?
보건의료인들이 원격의료를 반대하는 이유
우선은 의료계의 입장을 살펴보자. 대부분의 의료인들은 원격의료를 반대했었고, 대형병원 등의 일부에서는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일부는 컨소시엄을 구성하려는 움직임도 보였었다. 같은 의료계 내에서도 이런 차이가 발생한 이유는 뭘까. 필자는 이런 차이의 가장 핵심적인 이유로 의료전달체계의 붕괴 우려를 꼽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의료전달체계(healthcare delivery system), 조금 더 나은 번역어로는 의료공급체계나 의료사용체계는 그 자체로도 긴 글이 하나 나올 수 있을 정도로 보건의료정책에 있어서는 중요한 개념 중 하나다. 그렇지만 본 글의 주된 논의는 원격의료이므로, 아주 단순화시켜 간단하게만 설명하자면 이렇다. 중증/희귀 질환자가 대학병원을 충분히 이용할 수 있도록, 경증환자에 대한 적절한 수요/공급 통제를 하라는 얘기다.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는 대부분의 환자는 중증도가 낮고, 상대적으로 고가의 장비와 고도로 전문화된 인력이 상주하는 대학병원 급의 상급 의료기관을 이용할 필요성은 낮다. 과외 전단지 뽑으려고 3D 프린터가 필요하진 않고, 참기름 짜려고 25억짜리 초임계 추출기를 가동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동네의원에 대한 묘한 불신과, 상급 의료기관의 그리 높지 않은 가격 때문에 지금도 대학병원은 상대적으로 경증인 환자들로 넘치고 있다. 원격진료가 도입되면 동네의원 수준에서 적정한 장비와 인력을 갖추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거고, 점진적으로는 이 수요를 대학병원이 흡수하게 될 테다. 의료전달체계가 사실상 붕괴 수순을 밟게 되는 것이다.
그게 왜 나쁜 거냐고 생각하실 ‘자유주의자’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한다. 어차피 경쟁력 떨어지는 동네 의사들만 망하는 거고, 환자는 훨씬 더 전문성 있는 대학병원에서 진료받는 것이니 좋은 것 아니겠나. 문제는 동네의원들이 망하면 당장 감기약 한 알 처방을 받으려고 해도 대학병원 진료 예약을 잡아야 한다는 거다. 지금도 일반적인 대학병원 진료는 한 달에서 두 달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전국 각지의 동네의원들이 다 망하면, 그 사람들이 다 거기로 같이 몰리게 되는 거다. 원격진료가 도입되면 괜찮지 않겠냐고? 고객센터 통화 대기를 좋아하시는 특이 취향이라면 좋을 수도 있겠다. OECD 5위권 내의 높은 의료접근성 덕분에 못해도 30분 내에 진료를 보러 갈 수 있는 현재와, 동네 의원이 망해 대형병원 콜센터(?)에 재취업한 의사랑 전화통화로 상담을 받고 처방이 되는 상황을 비교해보면 어느 것이 좋을지는 자명해 보인다고 생각한다.
물론 해당 이슈에 관심을 가지셨던 분이라면, 여기까지의 글에 중대한 반론을 하나 던지실 수 있다. 정부가 원격의료 허용을 위해 입법 예고한 내용을 보면, 이러한 상황을 예방하기에 충분한 제한이 걸려있다는 것. 개정안을 살펴보면 의료취약지역 거주민과 노인/장애인 등의 의료이용 취약계층에 한해서 이를 허용한다고 분명히 명시하고 있고, 그 주체도 동네의원으로 제한을 하고 있다. 합리적으로 보이는 제한이고, 얼핏 보기에는 그 상황이 유지된다면 별로 문제가 없어 보일 것도 같다. 그런데 해당 개정안에는 심각한 문제가 하나 있다. 애초에 ‘의료취약지역’을 목표로 하는 원격진료와 ‘의료취약계층’을 위한 원격진료는 접근 방향과 시행 방식이 무척이나 다르다는 것이다. 얼핏 보기에는 의료접근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동등한 것 같지만 둘은 완전히 다르다. 차근차근 알아보도록 하자.
산간오지라던가 도서지역 등의 의료취약지역에 대한 의료접근성(Accessibility of Medical Services)을 높이는 문제는 한국 정부에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해결하려던 문제 중 하나다. 거주하는 지역에 따라 의료접근성의 차이가 크다 보니 이를 보정해주기 위해서 다양한 전략을 취했었는데, 일반적인 인프라 구축과는 달리 의료의 경우는 단순히 공공재정을 투입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했다. 민간에서 해당 지역에 의료기관을 개설하는 것은 지속가능성의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 보니 애초에 고려대상이 아니었고, 의료취약지역이 대부분 오지에 존재하다 보니 공공보건기관을 설립한다고 한들 거기서 근무하고자 하는 의료인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최근에 이슈가 됐던 전남이나 강원 지역의 초등교사 충원율을 보라) 이런저런 시행착오 끝에 최선의 해법으로 나온 것이 공중보건의 제도인데, 의과대학의 여성 진학률이 높아지고(10년간 약 13% 증가, 2016 기준) 의학전문대학체제로 변화하는 과정을 통해 공중보건의 수가 감소해서 문제가 생기게 된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원격의료의 도입이 논의되었었고, 원격의료 시범사업이 진행되었는데 대부분은 이런 식이었다. 마을회관 등의 공간에 원격의료용 기기를 설치해둔 다음 수요자들이 회관에 모여서 기기를 구동하여 사용하는 것. 흔히들 원격의료라고 하면 집에서 편하게 시간 제약 없이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장비 구입비라던가 장비 조작 문제 때문에 자가에 설치하기보단 인접한 공용공간에 설치가 된다. 그마저도 이용을 중도에 그만두는 비율이 상당수이고, 의료취약지역의 거주민들이 상대적으로 고령이다 보니 기기 조작에 어려움을 겪어 실용성이 떨어진다. 그렇다고 부족한 공중보건의를 더 늘릴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이런 상황을 타개할 대안은 없는 걸까? 사실 있다. 닥터헬기다.
의료취약지역의 가장 큰 문제는 경증질환 혹은 만성질환 시의 불편함이 아니라 응급상황에서의 대처가 어렵다는 점이다. 그런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2011년부터 닥터헬기가 도입되었는데, 현재 한국에는 딱 6대가 운영 중이다. 1대 당 비용은 연간 3-40억 수준. 그마저도 야간에는 운행하지 않던 것을, 얼마 전에 아주대 이국종 교수가 울분을 토하면서 야간에도 운행하는 것으로 바꾸게 됐다. 실제로 의료취약지역에의 응급상황 발생 시 환자의 의료접근성 차원에서 가장 좋은 방식이고, 이국종 교수와 같은 의료인들도 이런 방식을 지지하지만 정부에서는 닥터헬기 예산 증액 대신 원격의료 추진 준비를 위해 35억 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유관 부처의 관련 예산까지 포함하면 그 이상. 유효성 검증의 측면에서도 미진하고, 의료취약지약의 가장 큰 문제인 응급상황에서의 대처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원격의료의 추진을 위해서 닥터헬기 몇 대의 운영비를 소비한 셈이다. 준비 단계가 이 정도다. 실제로 원격진료 사업이 진행되면 고가의 장비구입비가 지원되어야만 하고, 소모되는 예산은 그보다 훨씬 커질 테다. 이것이 진정 의료취약지역의 의료접근성 강화를 위한 해법이라 할 수 있을까?
의료취약지역은 그나마 좀 양반이다. 의료취약계층, 그러니까 장애인이나 노인 등의 거동 불편자에게 원격의료를 진행한다는 것은 의료접근성 제고란 목적 달성이 더욱 어렵다. 앞서 의료취약지역의 예에서 보듯, 원격의료를 위한 의료장비가 워낙 고가이다 보니 이를 개인 가정에 구비해놓기는 쉽지 않다. 결국은 인근의 공공장소에 설치되어야 하고 이를 찾아가야 이용이 가능한데, 도시 지역에서는 인근 공공기관에 도착하시는 시간보다 인근 동네의원에 도착하는 시간이 더 짧을 가능성이 높다. 더군다나 응급 상황에서는 구급차가 인근의 응급실로 수송하기가 무척 용이하기에 닥터헬기를 빌릴 필요도 없다. 이 경우는 차라리 현재 시행되고 있는 방문간호제도 예산을 증액하는 것이 거동불편자의 의료접근성을 높이는데 훨씬 더 유효하다.
문제는 또 있다. 거동이 불편해서 병원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과연 발급된 처방전을 들고 약국을 찾을 수는 있겠냐는 거다. 원격진료가 시행되면 결국 의약품 택배 역시도 순차적으로 도입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자명하지만, 정부에서는 원격진료 도입 시 의약품 택배는 허용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 두 가지가 양립이 가능하려면 정부 관계자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하게 무능한 사람이거나, 의사협회와 약사협회를 동시에 상대하기는 곤란하니 전략적 차원에서 일부 유예를 한 것일 경우 두 가지다. 당연히 후자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의약품 택배가 시행된다면 앞서의 동네의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동네약국은 모두 붕괴되고, 전국의 약국들은 법인약국 형태의 체인 약국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그전에 동네의원이 사라지면, 동네약국들도 사라져 있겠지만 말이다.
상기의 이유로 보건의료계 전반은 원격의료에 강력하게 반대를 해왔었다. 실효성 있는 대안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구태여 유효성과 실효성이 입증되지 않은 원격의료를 도입하는 것은 보건의료계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뿐이며, 표면적인 이유인 의료접근성 제고 외에 다른 목적이 있지 않느냔 것. 이런 숱한 비판에도 박근혜 정부에서 원격의료를 강력하게 밀어붙였던 이유는 뭘까?
정부와 IT업계가 원격의료를 찬성하던 이유
우선은 보건복지부 차원에서의 원격의료 추진 이유를 살펴보자. 보건복지부가 발표했던 홍보자료를 살펴보면, 원격의료의 주된 추진 목적은 의료접근성의 제고다. 그런데 앞서 서술한 보건의료계의 입장만 살펴보더라도, 원격의료를 통해 의료접근성이 제고될 여지는 적다. 그리 유효성도 검증되지 않았고, 주된 수혜자라 할 수 있는 노인들의 IT 기기에 대한 적응도도 낮은 데다, 공중보건의 제도라던가 닥터헬기, 방문간호제도 등의 더 확실한 대안도 있다. 보건복지부 담당자들이 연관 단체들이 지적하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바보는 아닐 테고, 저런 제도를 추진하려던 정확한 이유는 뭘까? 필자가 판단하기에 보건복지부 차원에서 원격의료를 추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돈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 확보 때문이다.
잠시 다른 이야기로 좀 빠져보자. 일반적으로 인터넷 쇼핑을 통해 구매하는 제품이 인근의 동네 마트에서 구매하는 제품보다 저렴한 이유는 뭘까? 필자가 경제학 전공자가 아니라는 양해를 구하고 적어보자면, 이는 원가에 포함되는 비용이 훨씬 적어서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 쇼핑 업체는 오프라인 매장을 유지할 필요가 없고, 그 덕분에 동네 마트에 비해서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유지비가 훨씬 적다. 목 좋은 자리에 위치한 가게의 임대료와 초기 인테리어 비용, 공과금, 그리고 매장 점원의 임금까지. 이 비용들이 빠지게 되면 원가는 훨씬 낮아질 수밖에 없고, 그만큼 가격 운신의 폭도 늘어날 수 있다. 그래서 일부 제품들의 경우는 오프라인 매장들이 죄다 문을 닫을 위기까지 몰렸었는데, 협회 차원의 강력한 정치력을 발휘한 덕분에 그 명맥을 유지하는 경우도 생기게 됐다. 혹시 생각나시는 제품이 있으신가? 필자에겐 대표적 예시가 하나 있다. 바로 콘택트렌즈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동네 안경점이 박살날 뻔했던 위기를 ‘렌즈 인터넷 구매 불가’라는 법령 개정까지 밀어붙여서 살아남았고, 해외 직구의 시대가 오자 이 역시도 구매 대행업체를 규제해 달라 요구함으로써 현재에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어차피 공산품 형태로 나오는 렌즈를 인터넷으로 저렴하게 구매하는 것이 소비자의 효용 측면에서는 당연히 더 좋겠다만, 개인적으론 그 정도 가격차를 감수하더라도 동네에 안경점이 하나 정도는 존재하는 것이 나은 것 같기도 하다. 20년 안경 인생 동안 매번 부러진 안경을 고치러 장님 상태로 번화가까지 나가려면 엄청 피곤했을 것 같긴 하거든. 콘택트렌즈와 같은 의료기기(콘택트렌즈는 의료기기로 분류된다)의 경우도 그러한데, 일반적인 의료서비스의 경우에 적용된다면 어떻게 될까?
전통적인 의료서비스, 그러니까 동네의원에서의 대면진료와 원격진료를 비교해보더라도 위의 논리가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동네의원도 당연히 원격진료에 비해서는 시설투자비와 임대료, 인건비 등이 추가적으로 지출될 수밖에 없고 보건복지부가 정한 수가(=건강보험공단에서 보험처리 해주는 의료서비스의 비용을 말한다) 역시도 이를 어느 정도 참고하여 책정된 가격이다. 그렇다 보니 원격진료의 경우도 대면진료에 비해 수가를 낮출 수 있는 유인이 분명히 있다. 여기서 간단한 산수를 해보자. 2016년을 기준으로 건강보험공단이 고혈압에 지출하는 비용은 대략 2.8조 원이다. 당뇨병에 지출하는 진료비가 대략 1.7조 원 정도. 둘만 합쳐도 4.5조 원인데, 원격진료의 수가가 대면진료보다 10% 정도만 저렴하더라도 대략 4,500억 원의 건강보험재정 지출이 줄어들 수 있다. 초기 투자비만 부담한다면, 건보 재정의 측면에서 막대한 유인이 생기는 것이다.
위의 얘기는 보건복지부 한정이고, 다른 정부부처는 IT 업계와 이해관계 측면에서 더 밀접한 유인이 있다. 김대중 정부에서 역점사업 중 하나로 진행했던 IT 역량 강화는 노무현 정부에서도 진대제 장관 영입 등으로 지속되었고, 그 연장선에서 IT 산업의 신(新) 성장 동력으로서 원격의료가 논의되기 시작했었다. ICT와 BT, 의료의 접목을 통해 원격진료 모델을 개발한다면 이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시장의 창출이자 잠재적인 수출 품목으로서도 고려될 수 있다는 것. 기존 정부와 IT 업계에서는 이런 기조를 쭉 이어 왔었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한 술 더 떠서 아예 원격의료를 ‘창조경제’의 아이콘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 특유의 통치 스타일에 따라, 보건의료계의 우려를 뭉개고 이를 강력하게 밀어붙였었다. 메르스(MERS) 사태로 인해 삼성의료원이 임시로 휴원을 하자 그를 계기로 삼성의료원 환자들에게 원격의료를 시험하자는 말도 안 되는 주장까지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필자는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탄핵이 인용되며 불명예로 임기를 마친 이다. 그런데 그가 탄핵되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나? 그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었다. 사적으로 유용할 것이었다는 의혹이 큰 재단을 설립하여 대기업에게 출연을 강제하였고, 측근들이 법적으로 주어진 수준을 넘어서는 권한을 행사하는 것을 지시 혹은 방관하였으며, 최근에 밝혀지기론 국가정보원에서 국가 안보 활동을 위해 편성된 특수 활동비를 착복하기까지 했다. 그런 그가 단지 IT산업 발전을 위해서, 오랜 기간 논의가 되었음에도 업계의 희망 수준에만 머물던 원격의료를 그리 어거지로 밀어붙였을까? 어디까지나 추정의 수준에 머무는 얘기이지만, 원격의료를 밀어붙이던 이들은 이를 모종의 기회로 보았던 것 아닐까 생각한다. 아래의 글은 순전히 필자의 머릿속에서 나온 창작이니, 절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마시고 재미로만 읽으시길 바란다.
그들은 무엇을 노렸을까
우선은 IT 업계 쪽에서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원격의료, 특히나 처방전의 발행까지 가능할 수 있는 원격진료의 경우는 개인 식별이 무척이나 중요한 이슈다. 현재도 한국인의 명의로 건강보험을 적용받으면서 헐값에 의료를 이용하고 출국하는 외국 국적자들이 많다. 한국에서 타국으로 이민을 간 사람들이 귀국해서 친척의 명의로 이용하는 경우도 있고, 아예 조선족 등에게 전문적으로 명의를 빌려주는 식으로 건강보험 재정을 갉아먹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원격의료가 본격적으로 도입된다면 이런 문제는 더 커질 수밖에 없고, 결국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방식으로 신원확인이 이루어져야만 한다. 그런데 어떻게? 여러분의 인터넷 이용 경험을 되살려 보자. 본인 인증하면 떠오르는 바로 그 단어, 공인인증서다.
현재 한국에서 범용 공인인증서는 1년마다 4,400원의 비용을 내고 갱신을 해야만 한다. 물론 이 비용도 적은 것은 아니지만, 진짜 문제는 그 악명 높은 ActiveX를 이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인터넷 이용 층에게도 무척이나 번거롭고 짜증이 나는 일인데, 원격의료의 주된 이용 층인 노인들에게 저런 인증 절차를 거치라는 것은 몇 배나 힘든 일이다. 스마트폰에 있는 길 찾기 앱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해서 정류장에서 길을 묻는 노인을 하루에도 몇 번씩 보는데 이들이 이런 것을 제대로 이용할 수 있을까? 실제로 원격의료 시범사업 중 하나였던 경상북도 영양군 보건소의 경우, 담당자가 환자에게 기기 사용법을 숙달시키는데 거의 2달이 소요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얼핏 그럴듯해 보이지만 주된 이용 층에게는 수용도를 몹시 낮추게 되는 셈이다.
문제는 본인 인증만이 아니다. 생체정보가 실시간으로 송수신되는 환경이다 보니 이를 암호화/복호화하는 암호화 관련 소프트웨어도 필수적이며 그 과정에서도 불행하게 ActiveX류의 보안 프로그램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또한 이런 새로운 의료정보 시스템 운용을 위한 SI 개발이 필수적이게 되며, 그 과정에서 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이 비용을 민간에서 맡겠다고 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앞서 밝혔듯 원격의료의 수가는 대면진료 수가보다 낮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대면진료 수가조차도 원가보다 낮은 경우가 많다. 그런 상황에서 막대한 초기 비용을 떠맡으면서까지 원격의료를 진행할 기업이 있을까? 결국 이런 초기 시스템 개발을 위해서는 정부가 발주를 넣을 수밖에 없는 건데, 그 기업 선정 과정이 얼마나 신중하게 이루어질지 필자는 심히 의문이다. 지금까지 한국의 각종 공공기관 사이트들을 이용해본 입장에서는 더더욱.
품질이야 일단 그렇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 비용은 어느 정도가 될까? 2015년 한국 IDC의 전망에 따르면, 2018년에 한국의 보안 SW 시장 규모는 약 4,500억 원 수준으로 예상된다. 정확한 통계가 없어서 추산이 어렵기는 하지만 이 중 상당수는 금융권과 공공기관에서의 보안을 위한 소프트웨어일 가능성이 높고 여기에 SI 개발이 들어간다면 그 비용은 수천억 대를 훌쩍 넘게 될 테다. 그 비용이 오롯이 소프트웨어 개발에 들어갈 거라 생각하신다면 아직 한국을 잘 모르시는 거고, 갑을병정 이하로 내려가는 박봉 하도급 개발사에서 제작을 맡아 어찌어찌 완성이 될 테다. 산업계에서는 환영할 법한 일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만약 이렇게 날림으로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은 보안 SW와 SI가 뚫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문재인 대통령이 문재인 케어를 시작하며 강조했듯, 한국은 민간에서 운영하는 의료 실손 보험 시장이 무척이나 비대해진 상태다. 대부분의 경우는 건강보험에서 70%가 커버되지만, 본인부담분인 나머지 30%와 비급여 진료(=보험적용이 안 되는 의료행위)의 경우는 오롯이 개인이 부담을 해야 하기 때문. 그런데 이들 실손 보험사는 기존부터 개인 의료정보를 확보하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있다. 이미 몇 차례 건강보험 공단의 의료 데이터베이스가 직원에 의해 팔아넘겨진 경우가 있고, 이를 이용해서 보험사들은 훨씬 더 정교화된 보험 상품을 개발하여 고위험 군에게 고비용의 보험료를 요구해왔다. 물론 민간 보험사에게 그러한 이윤추구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이를 사회보험과 유사한 수준으로 운영하라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 안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손실 보험이 의료보험에 준하는 수준으로 기능하고 있고, 개인의 의료정보 탈취 가능성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위험 분산이란 본래의 목적은 달성되기가 어렵다. 당장 건강보험공단에서도 저런 일들이 일어나는데, 개별 의료기관 수준에서 보관되는 개인 의료정보가 안전하다고 볼 수 있을까? 필자는 그 점에 대해서 아주 부정적이다.
이번엔 의료기기 업계에서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본인 인증과 보안 및 운영 시스템 구축에도 저 정도로 빼먹을 구멍이 많이 보이는데, 원격의료용 의료기기의 경우는 어떨까? 우선 원격의료용 의료기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실제로 환자의 생물학적 상태가 얼마나 정확히 측정되고, 이를 얼마나 손실 없이 그대로 전송할 수 있는지 여부다. 정부가 업계 차원에서의 자생적 기준 형성을 장려하고, 이를 추인하는 형태의 자유주의적 성향이 강하다면 조금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여기는 한국이다. 해당 의료기기들은 정부가 정한 인증 기준을 통과해야지만 원격의료용 기기로 승인을 받을 수 있을 것이고, 이 과정에서 선도업체가 되는 데에 성공한다면 시장 점유율이 쉽게 바뀌지는 않을 거다. 아무리 혁신적인 기술이 나와도 규제산업에 속하는 이상 정부의 인증기준 변경을 유도할 만큼 강한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시장에 나올 수가 없으니까.
그런데 어떠한 기준을 통해서 인증이 이루어질지, 또 검증은 어떤 방식으로 할지 따위가 사전에 특정 업체에게만 알려진다면 어떨까. 유망한 분야에서, 그것도 정부의 인증을 받아야만 하는 규제산업 분야에서 1위 기업이 된다면 아마 몇 대는 가업을 물려받으며 잘 지낼 수 있을 테다. 물론 이게 근거 없는 추론인 거, 필자도 안다. 그렇지만 조금만 기억을 복기해보자. 그 정부에서는 최순실의 지인이 차린 회사가 갑자기 현대자동차 하청 업체로 들어가고, 심지어는 시장가보다 10% 정도 높은 단가로 납품을 받아주기까지 했었다. 아는 분은 아실거다. 현대자동차 하청은 아무 업체나 들어가는 곳도 아니고, 납품단가가 시장가보다 10%나 높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다.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확신하실 수 있으신가?
물론 양심 있는 공무원이 그걸 막아낼 수도 있다. 원래 공무원의 고용을 보장해주는 이유도 그 때문이고, 과거 기형 유발 위험이 크던 입덧방지제 탈리도마이드 사건에서 보듯 영혼있는(?) 공무원은 상상 속의 존재가 아니다. 그렇지만 다시 한국의 박근혜 정부 시기로 돌아와 보자. 그는 승마 문제에 입바른 소리를 하던 문체부 국장을 날려버렸다. 그런 상황에서 보건복지부 국장은 멀쩡할 수 있었을까. 더군다나 어떤 측면에서 보자면, 아예 공무원들도 포섭할 수 있는 길이 있다. 원격의료 관련 인증기관을 정부 밖에 설립하고, 관련 부처 퇴직자들을 모셔 왔어도 됐으니까. 익숙한 광경이 겹쳐지니까 이제는 픽션이 아니라 팩션 느낌이 좀 나지 않으시는가?
필자가 약대에 재학 중이니만큼, 한 가지만 더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앞서의 보건의료인들의 우려에서도 짧게 다루었었지만, 거동이 불편하거나 의료취약지역에 거주하는 이들이 병원도 못가는 데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갈 수 있을 리가 없다. 이는 곧 의약품 택배를 허용하라는 요구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고, 그렇다면 동네약국 역시도 집중화-거대화 되어서 법인 약국 형태로 변화할 수밖에 없다. 이미 2002년에 헌법재판소는 약사면허 소지자들이 약국법인을 설립하는 것을 허가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그렇지만 숱한 논란이 있었기에 아직은 법인약국 설립에 관한 구체적인 법률이 입법되지 않은 일종의 유예 상태인데, 의약품 택배 허가로 나아간다면 이는 중대한 상황 변경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경우만 보더라도 대형 체인 약국 세 곳이 과점시장을 이루고 있는 상황이며, 한국 역시도 법인 약국으로 체인화가 이루어진다면 비슷하게 과점시장이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이 경우 역시도 초기 점유율이 큰 업체가 지속적으로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고, 법적으로는 금지되어 있지만 사무장 병원이나 사무장 약국처럼 외부 자금이 유입되는 현실에 비추어 봤을 때 대형 체인의 초기 투자자들은 막대한 수익을 누릴 가능성이 높다. 뒤의 진행 상황은? 위의 의료기기 단락으로 갈음해도 충분히 이해하시리라 믿겠다.
이런 큰 규모의 변화 외에도, 의약품 택배 허용은 매우 특수한 물류업체를 탄생시키게 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까지의 원격진료 논의에만 한정하자면, 주된 이용 계층은 아마 만성질환자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만성질환자들이 복용하는 의약품은 대부분 인체에 대한 생리적 작용이 커서 주의를 요하는 전문의약품이고, 이런 의약품들은 현재 꽤나 철저히 관리되고 있다. 그런 의약품이 택배 과정에서 분실되거나 변질되는 경우, 기존 택배 회사들이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만 하는데 통합된 물류센터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특수한 화물을 같이 운송한다는 것은 꽤나 힘든 조건이다.
특히나 오남용의 가능성이 큰 향정신성 약물이나 마약성 진통제의 경우는 더더욱 큰 문제가 될 텐데, 이런 의약품을 의약품 택배의 예외로 규정하려고 해도 전면적인 의약품 택배가 허용된 시점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거다. 만성질환 관련 의약품 처방이 사라지면 수익성이 높지 않은 동네 약국들은 상당수 사라진 상태일 텐데, 기존보다 의료접근성이 더 떨어진 의료취약지역 거주민들은 그런 약을 어디서 조제받아서 오라는 얘기인가. 결국 의약품 수송을 전문으로 하는 특수한 물류회사가 생기거나 기존 물류회사에서 등기 소포와 비슷한 형태로 본인 확인을 필수로 하는 의약품 택배 배달 시스템을 구축하게 될 거다. 당연히 기존 택배비용보다는 훨씬 비쌀 거고, 배송 과정에 있어서 특수한 인증을 취득해야 할 가능성도 있다. 결국은 앞의 얘기들과 궤가 같다. 이제 팩션이 아니라 다큐 같이 보이실 수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필자의 허무맹랑한 상상일 따름이다.
맺으며
원격 진료를 대면진료의 대체재로서 도입하겠다는 것은 굉장히 문제가 많다. 당시 정부에서는 의료접근성 문제를 내세웠지만, 실제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더 뛰어난 대안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그런 유효한 대안들은 재정 지출을 늘려야만 달성될 수 있는 것들이었으니까. 결국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됐던 원격 진료는 끝 부분의 허무맹랑한 소설 부분을 빼더라도, 건강보험 재정 절감을 위해 정상적인 의료서비스보다 훨씬 질이 떨어지는 값싼 대체재를 들여오려던 것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노인들에게 공인인증서로 본인 인증을 하고, 액티브엑스를 일일이 설치하는 불편을 강제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사실 모든 원격 의료가 나쁜 것은 아니다. 이전에 문제가 됐던 원격 진료와 달리, 기술적 진보를 응용함으로써 사람들의 삶을 훨씬 더 건강하게 해 주고 질병으로 인한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원격 의료의 분야도 분명히 있으니까. 그렇다면 한국에 필요한 원격의료는 정확히 어떤 것일까? (3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