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생각나눔

조선, 그 찬란한 기록의 역사

기록, 문화의 힘


한국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16종 등록되어 있습니다. 이중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일성록(日省錄,) 조선왕조의궤(儀軌) 등을 보면 조선시대 사람들이 얼마나 기록을 철저히 했는지 놀랄 지경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왕조 시조인 태조로부터 철종까지 25대 472년간(1392~1863)의 역사를 연월일 순서에 따라 편년체로 기록한 책으로 총 1,893권 888 책으로 되어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시대의 정치, 외교, 군사, 제도, 법률, 경제, 산업, 교통, 통신, 사회, 풍속, 미술, 공예, 종교 등 각 방면의 사실을 망라하고 있습니다. 왕조 역사를 이렇게 기록한 경우는 황명실록(皇明實錄)과 남원조(南院朝)의 대남실록(大南實錄)이 있는데 황명실록은 1,600만 자로 조선왕조실록의 6,400만 자에 비할 수 없고, 대남실록은 548 책으로 조선왕조실록의 888 책에 훨씬 못 미칩니다.


조선왕조실록은 왕이 죽은 후 다음 왕이 임시 관청을 만들어서 편찬했고, 후대 왕을 비롯해서 일단 봉납되면 누구도 볼 수 없었습니다. 후대 왕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기록이 대체로 정직했습니다. 3대 왕 태종이 사냥하다가 말에서 떨어지면서, “사관이 보지 못하도록 하라”라고 했는데, 사관은 “사관이 보지 못하도록 하라고 했다”라고 기록할 정도였습니다.


이 기록을 많은 전란 중에도 유실하지 않고 끝까지 보관했다는 점도 놀랍습니다. 조선 관료들은 실록을 보존하기 위해 깊은 산 네 곳에 사고(史庫)를 만들고 이 사고를 지킬 절도 지정했습니다.


실록은 매우 정확하게 기록된 것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후대에 다른 당이 집권했을 때는 이전 사관(史官)들이 틀림없이 자기 당 사람들을 나쁘게 썼을 거라고 생각해서 보충판을 냈을 뿐 기존 실록은 전혀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아예 보지도 못했습니다. 아무도 보지 못하는 기록을 후대를 위해 남겼다는 그 사실이 정말 놀랍습니다. 상상할 수 있을까요? 하긴 기록이 방대해서 누구도 살아서 다 볼 수는 없습니다.


승정원(承政院) 일기는 국왕 비서실의 일기입니다. 승정원일기는 1623년 3월부터 1894년 6월까지 272년간 기록입니다. 총 3,243 책이 남아 있습니다. 승정원일기는 한 달에 1 책을 작성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후대에는 내용이 많아져서 한 달에 2책 이상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원래는 1392년 조선건국 때부터 있었는데 1592년 조일전쟁(朝日戰爭) 때 병화(兵火)로 다 불타고 전쟁 후에 작성한 것만 남아 있습니다.


승정원일기는 조선왕조실록의 원자료입니다. 기본 자료이기 때문에 실록보다 오히려 가치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승정원일기는 당시 정치, 경제, 국방, 사회, 문화 등 생생한 역사를 그대로 기록했습니다. 승정원일기는 남아있는 것만 2억 5천만 자인데 이걸 번역하려면 앞으로 50년이나 80년 걸린다고 합니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만 있으면 될 것 같은데 조선 귀족들은 또 일성록(日省錄)을 작성합니다. 일성록은 1760년(영조 36년)부터 1910년까지 왕이 직접 쓰는 형식의 일기문입니다. 이 일기문은 정조가 처음 시작했는데 정조는 직접 썼고, 후대에는 사관이 왕 위치에서 작성했습니다. 왕 입장에서 펴낸 일기의 형식이지만 실제로는 정부의 공식 기록물입니다.


의궤(儀軌)는 왕실 왕자나 공주의 탄생, 혼례, 장례 등을 그림을 곁들여서 기록한 것입니다. 이런 기록물도 세상에는 없습니다.


조선 사대부는 각 관청마다 계속 일기를 남겼습니다. 조선 사대부들은 세계 어떤 관료보다 체계 있고, 정확하게 기록하였습니다. 세계에 이런 기록이 없습니다.


사관(史官)은 보통 8명으로 왕 옆에 늘 있었습니다. 어떤 왕은 사관을 피하려고 골방에서 얘기했지만 골방 바로 옆에 역시 사관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왕은 사관을 피할 수 없었고, 사관들은 왕의 약점까지도 있는 대로 기록해버렸습니다.


이런 전통은 고려 때도 있었습니다. 고려실록도 있었지만 조선시대 때 사라졌습니다.


그 시대 왕 중 광해군(光海君)은 “오로지 나는 역사만 두려워할 뿐이다”라고 선언할 만큼 조선 왕이나 귀족들의 역사의식은 대단했습니다.


저는 이런 전통이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전통이 있으면 문화가 꽃 핍니다.


제 어떤 동창은 매일 아침 카톡 방에 한시를 번역해서 올립니다. 한시를 보면 정말 조선을 포함한 한국 사대부들 문화 역량이 대단했다는 걸 알게 되고, 그들의 문화 역량에 감탄하곤 합니다. 조선 사대부들은 문학을 알았고, 시를 알았습니다. 문학을 알고 시를 알았다는 것은 생각하는 능력이 뛰어났다는 뜻입니다. 기록하려면 글을 써야 합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고도의 문화 행위입니다.


이런 전통이 있었기에 한국이 문화에서 결코 약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고려 이전부터 계속된 이런 문화 역량이 세종 때 한글 창제로 나타났다고 생각합니다. 한글 창제라는 고도의 작업이 세종 한 명으로부터 나왔다기보다 그 시대 문화 역량이 세종을 통해 나타났다고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역량을 모은 것은 세종이라는 천재였습니다만. 그 당시 세종은 신하들을 향해, ‘너희가 음운을 아느냐?’ 하고 말했습니다. 지금 우리도 잘 모르는 음운을 그 당시 지식인들은 알았던 겁니다.


구한말 어떤 서양인이 조선에는 궁벽한 산골 집에도 책이 있다며 부러워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저는 문화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중국과 맞대고 있습니다. 한국은 중국에 비하면 작습니다. 그런데도 끝까지 나라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이건 한국이 문화를 숭상한 것과 매우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조선왕조는 500년을 넘어갔습니다. 세계사를 보면 단일 왕조가 500년을 넘은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그런데 한국은 고려 500년, 통일신라 1000년, 고구려 700년, 백제 700년을 갔습니다. 이건 사회를 유지하는 시스템이 갖춰졌다는 뜻입니다. 세계사에서도 드뭅니다. 500년이 그냥 지나가지는 않습니다. 500년을 지탱할만한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는 뜻입니다.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의궤 정도를 작성할 능력은 그런 시스템이 있을 때 됩니다. 100년은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500년 가까이 계속 기록하는 것은 그 자체가 힘입니다.


저는 이게 문화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록하시기 바랍니다.

기록하시기 바랍니다. 지휘서신을 쓰고, 생각 나눔을 쓰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식을 공유시키기 바랍니다.


각자가 성장해야 하고 성장하려면 공부해야 합니다. 기록하는 것보다 더 잘 성찰할 방법은 없습니다. 일성록(日省錄)은 매일 성찰한다는 뜻입니다. 왕도 매일 자기를 돌아보는 일기를 썼습니다. 왜 썼겠습니까? 백성을 책임지려고 썼습니다. 잘하려는 마음입니다.


웹2.0의 정신은 참여, 개방, 공유입니다. 인터넷 시대에는 글쓰기가 더 중요합니다. 생각과 철학과 사상을 공유시키는데 글쓰기보다 더 강력한 수단이 없습니다. 개방 역시 자기 일을 먼저 공개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글쓰기는 참여, 개방, 공유에 필수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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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기록사와 관련해서 정말 좋은 글이 있어 소개합니다. 저는 여간해서는 남의 글 베끼지 않고 인용하지 않는데 오늘 쓴 글은 사실 베낀 글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원문을 꼭 보시기 바랍니다.

동영상도 강추합니다.


그 유명한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강연 녹취록

[동영상] 조선, 그 찬란한 기록의 역사

글쓰기는 회사원에게도 필수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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