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9
소화방(素花房)
흴 소, 꽃 화, 방 방
흰 꽃이 있는 방.
우리가 서로에게 마음이 있음을 확인하고 사귀기로 한지 석 달 즈음 됐을 때 그녀는 담당 교수의 추천으로 제주도 신라호텔 카지노에 실습을 가게 됐다. 요즘 말로는 인턴십,이라고 부르는 제도. 그녀가 그토록 원하던 일이었다. 나는 사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방학 내내 떨어져 지내는 것이 마뜩지 않았지만 그녀가 그토록 하고 싶어 하던 일이었으니 섭섭한 티조차 내지 못했다. 무엇보다 그녀는 나를 몇 달간 보지 못한다는 것에는 섭섭해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고 제주 신라호텔에 인턴을 가게 된 것에 무척 기뻐하고 있었다.
그해 여름에 호텔 기숙사로 전화를 걸어 그녀와 잠시 통화를 하며 함덕 해수욕장 어디쯤 노란색 텐트를 치고 있겠다고 알린 뒤 친구 둘과 함께 휴가에 맞훠서 여행을 다녀왔다. 제주 함덕의 그 더운 햇살이 그늘져 오고 다시 해가 떠오르려 할 때까지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그리움에 지쳤는지, 서운함에 지쳤는지 깜빡 잠이 들었고 부스럭거리는 인기척에 잠에서 깼다. 바다를 앞세우 채 떠오르는 햇살을 등지고 그녀가 서있었다. 나는 별말 없이 텐트 한자리를 내주었다. 그녀는 너무 피곤했는지 텐트에 앉아 안녕~ 하고 인사하고는 잠이 들었다. 한두 시간이 흘렀을까. 땀을 흘리며 자는 그녀를 나는 무릎을 팔깍지로 끌어안고 앉아 가만히 내려다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우리는 겨울까지 서로 연락이 닿지 않았다. 기숙사로 전화해도 그런 사람은 없다 했고 그녀의 집으로 전화해도 통화를 할 수 없었다.
그 해가 다 가기 며칠 전 그녀로부터 연락이 와서 우리는 어느 카페에 마주 앉았다. 마침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