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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방 (素花房)

사랑 10

by 차가운와인

"우리 헤어지자"


낮고 담담하게, 오랫동안 생각해오던 걸 겨우 입 밖으로 꺼내놓듯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이유를 말해달라고 했다. 몇 시간의 실랑이 끝에 그녀가 내놓은 이유는 너무나 뜻밖이었다.

간염.

그게 그렇게 무서운 병인지 어떤지 그때는 잘 알지 못했다. 다만 전염성이 있고 쉬 피로해지며 요양하듯 살아야 한다고 의사가 말했다고 한다.

인턴십이 끝나고 정식 채용절차를 거치며 건강검진을 했는데 간염이어서 결국 그 해 여름이 가기도 전에 집으로 돌아왔었다고. 그리고 나와 헤어질 결심을 6개월 동안 한 것.


나는 그런 이유로 그녀와 헤어질 수는 없었다. 내가 곁에 남아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토록 원하던 일도 할 수 없고 몸도 마음도 바닥에 주저앉은 그녀 옆에.

몇 시간의 설득 끝에 우린 여전히 사귀는 사이,로 남기로 했다. 그렇게 우린 '우리'로 남게 됐다.

나는 계속 학교를 다녔고, 그녀는 작은 해운회사에 취직을 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데이트를 했고 주로 송이 덮밥을 먹으러 가거나 한정식집에서 식사를 했다. 그리고 소화방이라고 하는 남포동에 있는 전통찻집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했다. 그것이 그녀를 만나던 9년간의 데이트 패턴이었다. 우리는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아마도 온갖 이야기를 나눴을 것이다. 나와 그녀의 친구들에 대해. 가족들에 대해. 우리가 사는 도시에 대해. 하얀 꽃이 있는 방은 차 향기로 가득했다. 꽃 따위는 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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