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

by 차가운와인



우리에게 인생은 끝없는 평원이 아니라
우리가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네 개의 벽이 있는 공간일 뿐이야.

나에게 있어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는 고전 중에서도 고전이다.

오래되었지만 문체도 세련되고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힘과 속도도 현대문학에 비해 뒤지지 않는다. 그 안에 가득 찬 인생을 꿰뚫는 글귀들은 시대의 변화와 상관없이 지금의 사람들에게도 신선한 울림이 있다.


이십 대 후반이었나 30대 초반이었나. 지금은 분간하기 힘든 어렴풋한 그 시절에 내 가방 속에 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책이다. 버스에서도, 매주 한 번씩 올라갔던 서울행 KTX에서도 수시로 내 가방 속에서 들려 나와 휘리릭 아무 페이지고 넘겨 읽혀내려간...


그 당시에도 저 문구가 나에게 어떤 신선한 허무함을 줬던 걸까. 밑줄도 쳐져 있고 한쪽 귀퉁이가 접혀져 있다.

인생이란 게 마음껏 걸어 다닐 수 있는 평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린다. 사회 초년생 즈음 불현듯 깨달을 수도 있고 깨달았다는 사실을 모른 체하다 더 이상 모른 체하기 힘든 나이쯤 돼서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도 있다. 실은 그리 어려운 깨달음은 아니라서 모른 체하지만 않는다면 간단하게 깨닫게 되는 사실이다. 인생은 네 개의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일 뿐이라는 거.

한때는 위안이 되기도 했다. 그러하다는 것이.


네 개의 벽 안의 인생이라니, 안전하다는 느낌도 받았던 때도 있다.



최근 몇 주간 우울에 시달렸다. 적당한 우울감을 즐기는 편이긴 한데 요 몇 주간의 우울은 즐길만한 것이 아니었다.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우울이라기 보다 뭔가 알 수 없는 내면으로부터 아니 신체적 변화로부터의 우울이랄까. 이런 게 갱년기인가.


엄마는 어느 날 이불이 가득 쌓인 옷장 한쪽 문을 열고 그 안에 얼굴을 파묻은 채 하루를 꼬박 울었다고 한다. 알 수 없는 슬픔에 사로잡혀서 그렇게 눈물이 났었다고. 생각해 보면 그게 갱년기였던 거 같다고 하셨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니 당신의 갱년기는 간단하게 끝이었다나...


나도 집에 돌아와 이불장을 열어 차곡차곡 쌓인 색색깔의 이불을 보며 울어볼까도 했지만, 나는 나의 찬란한 갱년기를 그렇게 간단히 끝내고 싶진 않아 이불장을 닫아 버렸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이렇게 똑같은 하루를 반복하는 것이 루이제린저가 말한 생의 한가운데라면 나의 인생은 어떤 의미따위를 가지기엔 힘든 것인가 하는 사춘긴지 갱년긴지 무엇이 만들어내는 허무함인지 모를 이 의문을 나는 더 이상 의문시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평원 위를 걷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더 이상 모른체하지 않기로.. 원래 생은 네 개의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일 뿐이고 나는 이 지랄맞은 생이 다할 때까지 그저 이렇게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으로, 나는 내 인생과 합의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나를 몇 주간 괴롭히던 우울감을 떨쳐낼 수 있었다. 뭐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래서 같은 책에서 역시 밑줄이 그어지고 한쪽 귀퉁이가 접혀진 아래 구절.

내가 사랑하던 이 글귀들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또 합의를 해본다. 땅땅땅!


대부분의 사람들은 운명을 갖고 있지 않아. 그건 그들의 죄야.
그들이 원하지 않는 거니까.
커다란 한 번의 충격보다 자잘한 백 번의 충격을 받아들이는 거지.
그 작은 충격들은 우리를 조금씩 비참으로 몰아넣지만 아프진 않거든.
커다란 충격만이 우리를 앞으로 끌어가는 걸 사람들은 몰라.
게다가 작은 충격에서 오는 타락 쪽이 더 편하니까.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건 마치 파산 직전의 사업가가 여기저기서 돈을 꾸어다가 간신히 파산을 모면한 다음 평생 동안 그 이자를 갚아나가느라 전전긍긍하는 거나 다름이 없어.
난 언제라도 당당히 파산을 선언하고 새로 시작하는 편을 택하겠어


태어나 지금까지 맨발인 내게 평원이 허락되지 않더라도

그것을 묵묵히 받아들인다.

네 개의 벽 속에 갇힌 채 마르고 닳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도 내 생은 충만한 것임을 믿는다.

그러나

파산과 죽음이 동시에 나에게 왔을 때

벽이 무너지고 평원을 느릿느릿 맨발로 걷는 나를 볼 수 있기를...

그리고 그것이 내 생에 대한 복수처럼 여겨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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