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뽀대 나는(?) 곳에서 일하면 다 해결될 줄 알았지?
"전공자라면 누구나 일하고 싶어 하는", "전 세계 사람들이 방문하는", "최고의 컬렉션을 가진" 곳에서 근무를 한다는 것은 확실히 많은 것을 얻고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세상을 크게 보는 눈, 최선을 다 하는 프로들의 자세, 거대한 기관을 운영하는 방식,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곳에서 일한다는 자부심까지..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포함한다면 분명 난 이곳에서 셀 수 없이 많은 가르침을 얻었다.
흔히 어른들은 첫 직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직장 생활을 해보기 전까지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어린 나의 눈에는 위계서열, 성장, 경쟁을 좋아하는 어른들의 조바심 어린 조언처럼 보였다. 하지만 영국박물관에서의 짧고도 강렬했던 시간은 이후 나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고, 그 변화에는 뚜렷한 명과 암이 있었다.
영국에서 경험했던 모든 것들은 장차 나의 많은 선택들의 기준이 되었다. 앞으로 내가 일할 곳은 적어도 이곳에서 보고 느꼈던 것만큼 나에게 가르침을 주는 곳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조금 극적으로 표현하자면) 현실을 모른 채 이상만 높았던 나에게 비극은 떼어놓은 당상이었다.
나는 현실을 몰랐다.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주요 업계가 아닌 소수가 몸 담은 분야에서, 많은 요소가 진일보해있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었다. 그러나 나는 나의 경험을 적당히 걸러내어 활용하는 법을 몰랐고, 곧이곧대로 원하는 이상향만을 좇아갔다.
"왜 한국은 그만한 기관이 없지?"
"왜 다 제대로 안 하지?"
"왜 이렇게 하지?"
늘 의문이 가득했다.
만족하지 못한 만큼 불평과 불만이 쌓여갔다. 그리고 나만의 기준도 없이 존재하는지도 조차 모르는 '최적'의 기관에 가겠다며 고군분투했다. 각종 채용 과정에 지원했고 필기시험을 보기 위해 공부했으며, 그놈의(?) 토익과 토익 스피킹, 토플은 꼭 필요할 때 만기가 되어 지난 3년 간 몇 번이나 시험을 치러야 했다. 내가 준비되면, 준비된 만큼 좋은 곳에 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식하게 준비만 한 것도 아니었다. 업계에 많이 포진해 계신 선생님들께 양해를 구하고 각 기관마다 성격에 대해 여쭤보고, 또 나와 잘 맞을 것인지 고민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평가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고, 부서의 성격이 회사의 성격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땐 미처 몰랐다.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난 굉장히 좋은 곳에서 일을 해왔다.
분명 그 안에도 배움이 있었고 영국에서 배운 것과는 다른 차원의 유익한 경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내 기준에 만족하지 못한다 하여 온 몸으로 이를 거부했고, 궁극적으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걷어찬 셈이 되었다.
사실, 직업을 바라볼 때 '나의 기준'이라 할 것조차 그땐 정립되어 있지 않았다. 때문에 어디에서 일을 하더라도 모든 측면에서 완벽하길 바랬고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가차 없이 비난을 했다. 조직이 탄탄하길 바랬고, 사업 규모가 크길 원했으며, 전문가들로 이루어져 있고, 업무 환경, 복지, 급여 등 모든 분야가 내 성에 찰 만큼 우월했으면 했다.
이는 명백히 성급한 판단이었다. 그리고 사안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에 나에게 정립된 기준은 고작 영국에 한번 다녀온 것뿐이었음에도 이것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평가하려 했다. 그러나 그때는 무엇을 평가하기에 아직 나의 경험과 역량이 한참 부족했다는 사실을 나는 몰랐다!
다시 말하지만 영국에서 난 정말 무수히 많은 배움을 얻었다. 그리고 이는 내가 지닌 소중한 자산이자 역량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장점과 단점이 동전의 양면처럼 따라붙듯, 많음 배움 속에서 난 자만이라는 나름 치명적인 부작용을 얻었다.
그리고 이러한 자만심이 치료(?)가 되기까지는 2-3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 당시에도 꾸준히 스스로를 의심하기는 하였으나, 진정으로 객관적인 관점을 가졌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영국에 다녀온 것은 타이밍과 운이 좋았던 감사히 여겨야 할 기회 중 하나였을 뿐인데, 마치 그 한 번의 경험이, 그리고 영국박물관이라는 곳의 이름이 나의 실력을 대변한다는 오만한 생각이 있었다! 영국박물관은 2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쌓아온 것을 난 마치 몇 개월 만에 그 노고를 훔쳐가려고 했던 것이다. 그건 아마도 오랫동안 해외 박물관을 경험해보고 싶었던 나에게만은 그 경험이 아주 소중하고 세상의 모든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시간이 지나 점점 나를 더욱 객관화하여 바라보는 능력이 성장하면서 그때 당시의 오만방자했던 내 모습이 보다 선명하게 보였다. 내가 대단하다고 여기는 것을 사람들도 똑같이 생각하지 않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나의 경험과 결실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분명 난 대한민국에 몇 안 되는 경험을 보유한 것이 맞고, 누구보다 값진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다만, 이처럼 사실에 입각하여 보다 객관적인 판단을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자 할 뿐이다. 완벽해진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고, 난 앞으로도 꾸준히 배우고 성장하고 깨닫고 부끄러워하겠지만 그러한 과정을 받아들이고 지속해 나갈 생각이다.
2018년 이후 3년이 지난 2021년에 이르러서야 이러한 다짐을 하게 된 배경에는 그간 스쳐 지나온 많은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스타벅스, 미술관, 문화재단, 갤러리 등 크고 작은 곳에서 사람들을 일을 배우고 사람들을 만나며 세상 속의 나를 확인해왔다.
끊임없는 이직 여정의 시작은 '좋은 회사'를 찾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각 기관이 지닌 성격들을 깨달았다. 이는 내가 이 업계에 발을 디딜 때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내가 미술사를 시작한 계기와 방향에 맞는 회사 내지는 조직이 있다는 것을 조금 더 빨리 알았더라면 덜 방황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면서도 나의 지난 시간들이 제공해준 업무 외의 가르침이 있어 전혀 아깝지는 않다.
다만, 나처럼 이 업계의 화려한 겉모습에 이끌려 내막은 모른 채 시작을 끊으려 하는 누군가에게 나의 길이 일종의 사례연구(?)가 되길 바라며 앞으로 이어질 내용에서 각 기관 별 내가 느낀 성격들을 읊어보고자 한다. 물론 눈치를 보느라 단점보다는 장점을 더 많이 얘기하게 되겠지만...
끝.
※ 본 글은 철저히 작성자의 경험과 상황에 입각하여 쓰인 글로, 주관적인 시각이 반영되어 주어진 현상에 대한 절대적 정답이 아닙니다. 저와 같은 길을 걷고자 하는 분들은 참고용으로만 봐주시고, 재미로 봐주시는 분들께서는 부족한 글이지만 어여쁘게 봐주시기 바랍니다. 생산적이고 유용한 피드백에 열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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