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3km

by CHO


"그날 밤은 되돌지 않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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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한강으로 나가 철교 앞까지는 4km. 언제나 철교를 마주 보며 잠시 쉬어 간다. 가방에서 물병을 꺼내 물을 들이켠다. 오늘은 오른쪽일까, 아니면 왼쪽일까. 그날은 오랜만에 왼쪽 길로 들어갔다. 왼쪽으로 뻗은 길은 시작부터 오르막이다. 그 길을 따라 달리다 보면 또 하나의 철길이 나온다. 그리고 그 근처에 한강에서 빠져나가는 샛길이 있다. 집에서 그곳까지의 거리는 약 10km. 거기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 약 20km 정도다. 그동안 같은 길을 여러 번 달렸다. 그러다 어느 날 그 샛길이 눈에 들어왔다.


집으로 돌아와 지도를 살펴보니 그 샛길은 탄천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어느 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한강에 닿는 곳, 그 길은 용인까지 이어져 있었다. 총 길이는 약 35.6km. 왕복을 한다면 71.2km나 되는 거리였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반환점을 정하지 않고 갈 수 있는 데까지 가 보기로 했다. 바로 다음 날, 작은 배낭에 지갑과 필름 카메라, 자전거 라이트와 보조배터리, 포켓 휴지 등을 넣었다. 헬멧을 쓰고 집을 나섰다.


익숙한 한강 길에 금방 이르렀다. 언제나 끝이던 종착지가 오늘의 시작점이 되었다. 한강과 탄천이 만나는 지점으로 들어서자, 가을의 옅은 초록을 간직한 버드나무 잎이 수면 가까이 늘어져 있었다. 그 아래 새들이 모여 앉아 날개깃을 정리하고 있었다. 날개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수면 위에 튀자, 물결이 잔잔하게 번졌다. 12월의 볕이 마른 나뭇가지와 갈대 사이로 스며들었다. 이런 겨울 풍경도 싫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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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거슬러 하천을 올라가는 동안 어릴 적의 기억이 떠올랐다. 언젠가 물줄기의 끝을 찾아가 보고 싶었다. 종이 지도와 나침반을 들고 사라진 물길을 찾는 모험. 집 앞에는 개천이 있었는데 그 물길에서 우리는 뛰어놀았다. 여름에는 징검다리를 만들며 없는 길을 건넜고, 겨울에는 꽁꽁 언 물 위에서 스케이트를 탔다. 얼음이 깨지면 누군가는 물에 빠졌고, 도망치다 미끄러지기도 했다. 나의 오른쪽 뺨에는 차가운 얼음에 긁힌 상처가 크게 남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모험은 개천의 하수구를 탐험하는 일이었다. 지금은 철판으로 막힌 그 벽은 어릴 적 우리에게 큰 터널이었다. 일렬로 줄을 지어 들어가다가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한두 명씩 울며 도망가곤 했다. 끝까지 남은 아이는 학교에서 훔쳐 온 분필로 터널의 벽면에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장지동에서 방향을 틀었다. 장지동은 어릴 적 한 번 가본 동네였다. 그곳에는 군인 가족들이 거주하던 기숙사가 있었고, 주변은 갈색의 황무지였다. 그러나 지금의 장지동은 나의 기억과는 전혀 다른 낯선 장소가 되어 었었다. 낯선 길에서 낯설지 않은 길로 들어서자, 다리의 힘이 점차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무거운 페달링이 오래된 기억을 흐리게 만들었다. 차가워진 공기가 뺨을 스쳤고 나는 계속해서 페달을 밟았다. 페달을 밟는 다리에 모든 감각이 집중되었다. 라이트 불빛이 비추는 몇 미터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파트 단지 안에 들어섰을 때 비로소 안도감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날 나는 24.34km를 달렸다.



나뭇가지에 보름달이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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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너머 산 물 건너 물I〉은 각 회차가 순차적으로 이어지는 연작 시리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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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