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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수

by 돌돌이

유튜브를 자주 보고 있다. 그중 정상수라는 힙합가수의 유튜브를 챙겨보는데 몇몇 클립 위주로 보고 있다. 본인이 운영 중인 유튜브 계정은 20만 명이 넘는 구독자 수를 가지고 있지만 편집 자체가 없어서 유튜브 라이브 영상을 그대로 올리고 있으며 2시간이 넘는 영상들도 올라와 있다. 이 모든 영상을 볼 수 없기에 정상수의 팬들이 만들어 놓은 짧은 클립 영상들을 보면서 만족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팬들이 짤방처럼 모아 편집한 영상의 조회수가 더 많기도 하다.


영상을 보면서도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할 수 없었다. 술을 먹고 욕을 하고 방송사고가 나고 경찰한테 테이저건을 맞고 감옥도 갔다 왔지만 이 사람이 밉지 않다. 그는 신실한 기독교 신자이고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내며 속내를 감추지 못한다. 방송 중에 찬송가를 부르기도 하고 다짜고짜 춤을 추기도 한다. 나이는 38살이지만 소년 같다. 라이브 방송 중에 욕을 하고 싸우기도 하고 곧잘 사과를 하기도 한다. 반말하는 것을 싫어하며 자신이 겪은 트라우마나 상처를 이야기하고 갑자기 방송을 종료하기도 한다. 비굴한 모습도 보이고 욕을 하며 흥분하는 모습도 보이는데 정상수를 보면 내가 잊고 있었던 학창 시절과 치기 어린 20대 초반 모습이 떠오른다. 싫고 좋고의 개념이 아니다. 이 사람은 21세기에 여전히 20세기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가 하는 힙합 스타일과 노래를 들어 보면 과거로 돌아간다. 편집하고 올리는 영상들도 2021년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영상들이 즐비하다. 시대는 바쁘게 변하고 변화의 틈 속에서 허덕이는 나에게 정상수라는 옛날(?) 사람은 힘이 된다. 유명 유튜버와 합방을 하고 인지도가 쌓여가서 기분이 좋다. 이 정도면 팬심이라고 봐야지.


그의 곡들 중에 몇 곡은 좋아서 찾아 듣는 정도다. 힙합 자체를 터부시해버리는(?) 내 성향과 쇼미 더 머니를 전혀 보지 않을 정도로 힙합에 관심이 없지만 정상수의 노래는 찾아서 듣는다. 그의 노래는 영어가 많지 않고 자막을 보지 않아도 가사가 들린다. 요즘 랩이나 힙합 음악은 가사가 들리지 않는다. 자막을 보고 가사를 틀리는지 맞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있어야 할 만큼 자막이 없으면 즐길 수 없다. 물론 흥얼거리며 신나게 즐기면 충분하겠지만 가사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힙합은 잘 듣지 않는다. 하지만 정상수는 올드스쿨의 정박자와 각운을 강박적으로 맞추기 때문에 노래는 귀에 쏙쏙 박힌다. 엄밀히 말하자면 가사가 들리는 것이 아니라 보인다. 그가 부른 몇몇 곡들의 가사들을 보면 그 장면이 눈에 보이는 것이다.


광대 짓거리도 지긋지긋해

찰가닥 거리는 가위질도 비슷비슷해

비가오나 (눈이오나) 늘 엿 팔러 다니지

쪽 팔러 다니지 저 춤 추는 계집애가 바로 내 딸이지

부둣가를 따라 즐비하게 들어선 횟집

동네 코를 찌르는 짠내

물결은 바람을 좇네

흔들리는 불빛 아래 붉게 물들은

얼굴로 게슴츠레 풀린 눈으로

날 보는 어부 아저씨들의 부탁에

한 곡조를 뽑자 숟가락

하나를 집어 술 병에 꽂자

늴리리야 날 다려가소


-달이뜨면(광대) 중에서 발췌


부둣가를 따라 즐비하게 들어선 횟집들과 그 횟집 앞을 지나며 코를 찌르는 짠내는 바닷가의 진한 비린내를 느낄 수 있다. 글에서 향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그 냄새가 단순히 아름다운 향기가 아니라 부산의 일상에 박혀있는 냄새여서 좋았다. 짠내를 맡으면서 부둣가의 물결들을 보니 바람을 좇고 있다는 표현도 시적이다. 사실 바람이 파도를 만드는지 물결이 바람을 만드는지 알바는 아니지만 물결조차 바람을 좇는 것과 같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광대 짓거리를 하며 사는 나와, 항상 무언가를 좇고 있지만 막혀있는 일상. 불빛 때문인지 술 때문인지 풀린 눈과 붉은 얼굴로 술병에 숟가락을 꽂아 노래를 부르는 나. 노래를 듣고 가사를 듣다 보면 그 장면이 떠오른다.


정상수가 더 잘 됐으면 좋겠다. 21세기에 살고 있는 20세기 소년인 그를 보면서 과거의 나를 만나게 된다. 지금의 정상수는 내가 잊고 있었던 과거의 내 모습이었다. 철없지만 순수한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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