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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민턴

by 돌돌이

우리 아파트 단지 내엔 배드민턴을 치는 공간이 있다. 네트는 없지만 조명이 밝아서 밤에도 밝고 놀이터가 근처에 있기 때문에 아이들과 부모님들이 종종 찾는다. 비어있는 코트를 보며, 언젠간 배드민턴을 치고자 마음먹은 지 몇 달째. 우유를 사러 갔다가 충동적으로 배드민턴 채와 공을 사게 되었다. 단지 내 헬스장은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5월까지 문을 닫았고, 집에서 하는 홈트레이닝을 위해 산 요가 매트 위엔 먼지가 쌓이고 있었다. 홈트레이닝은 재미도 없거니와 헬스장처럼 러닝을 할 수도 없었다. 그에 비해 배드민턴은 재미와 운동 효과 두 가지를 만족시켜 주었다.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에 지겹지 않을뿐더러 운동효과도 좋았다. 몸을 계속 움직이는 전신 운동이고 배드민턴 채를 휘두를 때엔 팔 근육도 단련되었다. 여자친구와 30분 동안 주거니 받거니 하며 코트를 누볐다. 어느덧 이마엔 땀방울이 맺혔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라켓에 배드민턴 공이 제대로 맞았을 때 나는 경쾌한 사운드와 어딘가 비스듬히 맞았을 때 나는 소리의 갭이 크다. 비스듬히 맞은 공은 원치 않는 방향으로 갔기 때문에 상대방이 받기가 어려웠다. 방향을 급격히 바꿔가며 공을 따라가길 수십 번 하다 보니, 이제는 삑사리 소리만 들어도 웃기게 된 것이다.

우리는 초보이고 즐거움이 목적이기 때문에 마냥 하늘 높이 공을 띄우며 상대편 코트로 넘겼다. 코트의 빈 공간으로 공을 넣어 득점을 하는 시스템이 아닌, 누가 더 멀리 하늘 높이 공을 띄우는지 대결을 하게 된 것이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공의 방향이 바뀌는 것도 재밌었고 의도치 않게 땅으로 내리꽂는 스매싱이 나올 때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공을 주고받기 위해 넘긴 것이지만 발은 따라가지 못했고 그에 걸맞게 팔도 헛스윙을 자주 했다. 배드민턴을 치는 행위는 대화와 같다. 내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상대에게 내 의사를 담아서 공을 전달한다. 부드럽게 건네기도 하고, 장난 섞인 구석 샷, 천천히 하늘 높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는 공은 우리의 대화를 더 길고 높게 이어가길 바라는 것이다.

정신건강의학과의 병동엔 탁구대가 있다. 내가 가보았던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이나 병원에는 항상 탁구대가 있었다. 정말로 장소가 좁고 가능한 운동거리가 탁구뿐이 였을까? 그렇기도 하겠지만, 탁구는 한 사람이 공을 전달하면 다른 사람이 공을 받아야 게임이 성립한다. 나 혼자서 마냥 놀 수 있는 게임이 아니며 상대가 없으면 게임이 되지 않는다. 상대가 있어도 실력과 수준이 맞아야 게임이 진행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관계와 같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탁구는 그러한 관계를 정립하는 데 도움이 된다. 탁구를 치는 방법을 배우고 상대가 넘기는 힘과 방향에 맞춰서 공을 넘기는 모습은 우리가 인간관계를 맺을 준비를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서로의 랠리가 진행되고 길어지면서 의사소통을 연습하게 되는 것이다. 혼자가 아니라 둘이서 서로를 이해하고 탁구공을 공유하면서 인간관계를 조금씩 정립해 나가는 것이다. 관계에 일 방향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에선 대부분 일 방향 커뮤니케이션이 나타나는 것처럼 보여도 모든 것은 쌍방으로 작용한다. 그 작용에 대해 대처법을 배우고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은 배드민턴이나 탁구가 해결해 주는 것이다. 상대의 배려와 친절, 공격 성향, 수비 패턴 등을 통해 상대를 알아 가고 나 또한 상대에게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는 배드민턴을 통해 한층 더 가까워질 것이다. 말로는 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배드민턴 공에 실어 보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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