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여유시간의 대부분을 웹툰을 보는데 할애한다. 세상엔 너무 많은 웹툰이 있으며 모든 작품을 다 보지도 못하지만 취향에 맞는 웹툰만 찾아서 보더라도 3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시우가 자고 나서부터 웹툰 삼매경에 빠지는데, 오늘도 70화까지 나온 웹툰을 정주행 한 것이다. 그렇게 할게 많고 써야 할 것들도 많은데 내가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다니. 이 글을 쓰는 시간도 새벽 1시 40분이 넘은 시간이다. 책을 읽는 것도 미래를 위한 계획이나 발전도 아닌 웹툰에 이렇게 열정일 줄이야.
웹툰이 딱히 기억이 나거나 내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안다. 주말의 황금 같은 시간을 낭비하고 출근을 준비하는 날 볼 때마다 한심할 따름이다. 그런데 웹툰은 그러한 비난을 이겨낼 정도로 매력적이고 재미있으며 순간의 행복감을 주며 다가올 고통을 잊게 만든다. 오늘 있었던 스트레스와 긴장이 웹툰으로 풀리는 것이다. 글과 그림이 함께 있어서 내용이 술술 읽히며 소설과 다르게 상상하고 사유를 하지 않아도 수용할 수 있다. 단순하며 직관적이고 갈등 구조가 짜릿한 웹툰은 언제나 세상의 조연이었던 나를 웹툰 속 주인공으로 만든다. 실제론 있을 수 없는 일들을 그럴싸하게 꾸며내 만든 이러한 이야기들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비슷하지만 일본은 만화 신간의 대부분이 이세계(異世界) 판타지 물이다. 현실과는 다른 새로운 세상에서 게임처럼 성장하며 기존의 별 볼일 없는 조연과 엑스트라의 삶에서 벗어나 주인공이자 하나뿐인 이세계 전이자가 되어 새로운 세상을 누비는 것이다. 좋은 무기와 동료, 강한 전투력이 주어지며 성장해 가는데 기존의 야근과 주말 근무로 지치고 성장이 더딘 실제 삶과 비교해 봐도 새로운 세계는 상당히 매력 적이다. 현실의 노력으로 받는 일당과 월급에 비해 게임과 만화 세상의 보상은 월등히 높으며 이세계를 구한다는 명분도 있으며 자신을 사랑하는 동료들도 있다.
과도한 근무와 발전이 없는 상황은 일본이나 우리나라와 별 반 다르지 않다. 증가하는 노년 인구를 부양해야 하는 청년 인구는 점점 줄고 있는데 출산율도 낮아지고 있다. 공기업과 대기업의 문은 좁고 주변 일자리는 상상 보다 더 열악하다. 내가 바라고 꿈꾸는 삶을 위한 일이라면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견뎌 낼 수 있겠지만 그렇게 꿈만 좇기엔 현실은 냉혹하다. 이렇게 현실이 암울하니 현실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찾아가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너무 많은 이세계류 작품들 때문에 공모전과 출판사에선 이세계물을 금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신작 웹툰도 마찬가지다. 현실에서 벗어나 과거나 미래로 가고 그 당시를 뒤집는 모습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하지만 웹툰의 다양성이란 측면에서 볼 때 신작의 대부분이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어 웹툰으로 느낄 수 있었던 감동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내가 무협과 이세계 웹툰을 보는 것이 현실이 갑갑하고 답답해서 그런 걸까? 열정이 사라지고 현실에 답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현실 도피를 위해 웹툰을 탐하려는 걸까? 그냥 심심해서 본다고 하기엔 그 중독 정도가 극심해서 하는 소리다. 지금 내 상황과 현실은 충분히 만족스럽지만 사실 아쉬운 면도 많다. 주어진 틀 안에서 최선의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고 하지만 자발적으로 일감을 찾아서 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직장인의 비애이자 장점인 일할 거리가 매일 주어진다는 것이 문제다. 다른 내시경실보다 난이도가 높은 시술을 하고 스텝과 손발이 맞아 즐겁게 일을 하고 있긴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아쉬움이 남는다. 일을 마치고 나면 노곤하고 쉬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지쳐서 마냥 자고 싶기도 하지만 그것이 시간을 낭비하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더 알차고 풍요롭게 내 삶을 채울 수 있음에도 난 그냥 웹툰만 보고 있는 것이다.
고삐를 당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