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만 있었던 그때의 내가 보고 싶다

by 돌돌이

몇 년 만에 가요 프로그램을 봤다. 처음 보는 아이돌 그룹과 이름은 익숙하지만 얼굴은 모르는 그룹들까지. 코미디언이었던 사람들도 방송에 나왔으며 1위 후보들은 음악방송에 나오지 않았다. 무대 위에서 날고뛰는 그들의 모습에 설레거나 흥분하지 않았다. 내가 나이가 들어선지 그들의 퍼포먼스가 우스꽝스럽기까지 했다. 남자 아이돌들은 으레 눈에 스모키 화장을 하고 있었고 여자 아이돌들도 비슷한 안무와 노래로 무대를 채워 나갔다. 대중이 원하고 소비하는 음악의 모습이 이런 것이라면 난 한참 뒤처지고 있는 거다.


예전에 기타 학원을 다녔었다. 그곳엔 나이 지긋하신 어른들과 초등학생들도 있었으며 나처럼 대학생이나 직장인들도 있었다. 모두들 기타를 잘 치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모여 있었고 공통의 관심사가 있으니 쉽게 친해지기도 했다. 학원도 학원이지만 기타 선생님이 기억에 남는다. 전형적인 락커의 모습이었으며 진성 락커가 나이를 먹고 부산의 어느 한 곳에서 기타 학원을 운영하고 있으면 이런 모습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머리는 장발보다 더 길었고 자신이 앉아있는 소파와 책상 위는 기타 물품으로 가득했다. 매일 틀어 놓은 락음악이 옆에 붙어있는 기타 연습실까지 울릴 정도였고 강좌가 끝나고 나면 학원생들과 매일 술을 마셨다.


10년도 더 지나서 일렉기타를 기초부터 배우고 싶어서 다시 학원을 찾은 적이 있다. 대학생이 아닌 직장인의 신분이자 30대의 모습으로 찾게 된 그 공간은 변함이 없었다. 내가 1년이 넘도록 배웠던 어쿠스틱 기타의 악보와 강좌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지만 선생님의 모습은 완전히 변해 있었다. 시끄러운 락 음악소리를 기대하며 학원 문턱에 들어섰을 땐 그 어떠한 음악소리도 나지 않았다. 원생이 기타 연습하는 소리는 있었지만 티브이에는 뉴스가 틀어져 있었다. 나를 보고 반갑게 맞이하는 선생님은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예전의 긴 머리는 온데간데없고 구레나룻도 보이지 않았다.


매일 마시는 술자리는 소주 대신 막걸리를 마셨으며 직장인인 내가 배달 음식을 시켰다. 선생님은 금방 술이 취해서 졸기 시작했다. 매번 하던 부모님에 대한 불만과 밴드로 성공하지 못한 자신의 삶에 대한 후회, 헤어진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여전히 했지만 정치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현실에 대한 힘듦을 토로하고 있었다.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인이 돼버린 10년의 기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선생님은 현실에 완전하게 순응하고 있었고 술자리에서 정치인을 욕하는 아저씨가 되어 있었다. 사실 그가 그대로이길 바라는 것은 내 욕심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이전에 같이 학원을 다녔던 동갑 친구들이 오랜만에 모여 학원에서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냈지만 예전만큼 즐겁지 않았다. 지금은 안주를 마음대로 시켜도 크게 지장이 없는 경제력을 가지고 있으며 당시에 없던 집과 차, 그리고 가정을 꾸린 가장이 되어 있었지만 어렸을 때만큼 술자리가 재밌지 않았다. 그때는 걱정도 없었고 무서울 것도 없었다. 형편없는 기타 실력에 노래도 못하지만 버스킹을 할 수 있다는 깡과 밴드를 하겠다는 객기가 있었던 시기다. 이제는 다들 번듯한 직장에 가정을 꾸린 유부남이 돼버렸고 우리의 대화 주제는 음악이 아닌 부동산과 주식이었다. 예전처럼 언쟁을 하거나 자신의 주장을 끝까지 우기지 않았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길들여져버린 것이다. 기타 선생님과 우리는 어른이 돼버린 거다.


밤새 소리 질러가며 싸우던 그 열정이 그립다. 자존심만 있었던 그때의 내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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